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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국문화 이젠 달라져야…환자안전과 직결된 수련교육에 국가지원 투입돼야 ‘전공의법’ 완성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기사입력시간 2019-08-06 05:54
    최종업데이트 2019-08-06 05:5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그동안 전공의교육이 지나온 역사를 보면 배우는 입장인 피교육생의 신분과 어엿한 의사면허를 갖고 의업에 임하는 피고용 의사로서 두 분야 양쪽 특성을 지니는 이른바 ‘이해충돌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공의 교육의 과정은 어느 나라든 순탄치 않아 보인다.

    현대의학에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의 전공의제도는 보수가 책정되지 않은 ‘무급’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한 해 동안 전공의 양성을 위해 1인당 1억60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고 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전공의들의 안정된 근무 여건이 곧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인식과 함께 전공의 교육에 대한 개념 자체가 크게 변화하면서 과거보다 근무시간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주당 최대 80시간을 허용하고 있어서 주 48시간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유럽의 기준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전공의 유급 전환 이후 1인당 연간 1억6000만원 규모 정부 부담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미국식 전공의제도를 모방해 ‘레지던트’라는 외래어를 통해 수련과정에 있는 의사의 신분을 세상에 알리게 됐다. 우리나라 전공의제도 역시 초창기에는 무급이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960년대 전공의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아픈 과거가 있었다. 당시 국가도 가난했고, 성인의 피교육생으로서 무급 생활이 때론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견디기 힘들었을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가족의 기본 생계를 위해 너무나 기본적이고 당연한 요구를 했을 당시 전공의들 중에서 일부는 과에서 퇴출당하는 최악의 사태로까지 내몰렸다고 전해진다.
     
    이런 사태가 있고 나서 전공의에 대한 급여가 지급되기 시작했으나 액수 자체가 워낙 미미했고, 그 봉급 수준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힘들었던 전공의 시절의 실제 상황을 들려준 선배 교수님은 당시 월급을 타면 병원 근처 국수집으로 달려가 비용 부담이 적은 국수를 실컷 사먹었다는 위트 섞인 이야기로 씁쓸한 추억을 반추하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에 인턴 생활을 한 필자로서도 당시 상황에서는 믿기 힘든 전설 같은 사실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급 전공의를 경험한 선배의 말대로 당시에 대다수 국민들은 무척이나 배고픈 시절로 회상된다. 그나마 값싼 국수 값도 한 두 주가 지나면 금방 소진됐다며 당시의 아쉬웠던 상황을 기억했다. 이런 애달픈 사연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일부 빈곤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일제 잔재 의국문화 우리나라 전공의 양성체계 아직도 약제선정에 지대한 영향
     
    급물살과도 같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국가 경제 규모가 급팽창하면서 전공의에 대한 처우도 무급에서 유급으로 바뀌었다. 국민들의 의료수요 또한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의업과 함께 제약업계는 눈부신 성장세를 기록하게 됐다.

    전공의를 양성하는 수련병원의 수석전공의는 의국에서 사용하는 약제 선정에 지대한 권력을 부여받았으며, 제약회사의 영업사원들은 개인과 회사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의국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느라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영업사원들과 임원들은 막연한 출세가도에 올라타기 위해 자신의 고귀한 삶을 내던지듯 과감한 희생을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제약사간의 혈투와 같은 매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속칭 제살 깎아 먹기 식의 ‘눈먼 돈’이 돌아다녔고, 이 자금으로 식민시대 일본식 의국제도의 살림을 비정상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근본 없는 기형적 시스템이 여기저기 뿌리를 뻗치게 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의료계에만 국한 된 사안은 아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산업계 전 분야에 걸쳐 관과 민의 합작에 의한 적절치 못한 공생관계로써 매우 활성화됐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전 국민 건보 시행에도 미래 의료 기둥인 전공의교육에는 관심조차 안 둬

     
    당시로써는 우리나라 경제력에 비해 매우 파격적이고, 무모할 수 있는 ‘진보 정책’이라 칭할 수 있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의사양성과 이 분야 관련 교육에 대해서는 보사부 등 해당 정부 부처는 물론 담당 공무원들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의료수요와 이에 대한 공급의 예상 격차가 뚜렷해도 일단 전문의가 되면 황금알을 낳을 수 있다는 어설픈 기대감 때문에 비록 전공의 기간이 인간으로서 버텨내기 힘든 극한의 상황일지라도 전문의 자격만 따면 꿈처럼 좋은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이성적이지 못한 교육체계였던 것이다.
     
    전공의를 위해 제공되는 야식은 물론 입국식과 퇴국식, 의국 단위의 회식 후 2차로 이어지는 찬란한 음주 가무와 과별 교실별 회식, 과장 주임교수 등 주요 보직자의 생일 축하연 등의 행사에 속칭 의국비인 리베이트가 조달되며 큰 역할을 했다. 정치인은 정치자금을, 공무원은 회식비와 생활비 조달을, 의사는 의국비 조달을 통해 합법적이지 못한 비공식 자금이 난마처럼 얽히며 세상이 운영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정치자금, 의국비 문제가 정부의 생각과 방침대로 말끔히 근절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명쾌히 이뤄질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애처로운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지금도 수석 전공의나 전임의 직무 중 하나는 의국유지에 필요한 비용 조달이다. 이제 제약회사의 리베이트는 쌍벌제 시행으로 과거보다도 더 무거운 법적용을 받게 됐고,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암행, 기획 등 다양한 형태와 수법의 단속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처벌 받은 기업과 임직원, 그리고 의사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전공의 교육비용 양성화 없이 리베이트 복마전 근절되기 어려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 방침대로 리베이트가 일거에 근절되리라는 판단은 너무나 가설적 희망사항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베이트에 대한 강력한 법적용에도 리베이트는 여름철의 무성히 자라는 잡초와 같이 끄떡 없이 살아남을 것처럼 보인다. 직설적으로 표현해 정부가 전공의교육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는 한 리베이트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감히 단언해본다.

    그 이유는 리베이트의 싹이 돋아날 수 있는 근원적인 뿌리를 뽑아 제거하지 않으면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되풀이해서 자라나는 잡초와도 같은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수련병원은 전공의에게 일정 급여를 지급하는 것 이외에 전공의교육에 필요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일부 약삭빠른 경영자는 이미 전공의 급여에 교육비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부의 입맛을 미리미리 알아서 잘 맞춰주는 일부 관변학자는 의료 상대가치에 다 녹아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설파하고 있다.

    의학계 전체가 알지 못하는 전공의교육에 대한 정부와 수련기관의 깊은 배려와 뻔뻔한 주장에 성은이 망극할 지경이다.
     
    이런 눈물 나는 배려는 지금도 리베이트가 사라지지 않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사회는 구조적으로 젊은 전공의나 의국 운영을 담당한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받도록 유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전공의를 위한 교육비를 산정해 본적도 없고 전공의교육에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전공의 담당 주무부서는 지금도 전공의 교육비에 대한 입장이 사회적 합의와 타 직종과의 형평성을 운운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상투적인 수법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의료수가에 대한 협상에도 자주 등장하는 메뉴다. 정부나 관변단체의 주장은 의료의 공공성을 운운하며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할 수 없는 영역으로 관주도 임금착취인 의료보험 수가라는 이름의 노동 가치를 고집한다.
     
    조선시대에 관아에서 일했던 아전들에게는 급여가 없었다고 한다. 대신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음성적인 거래를 통해서 받은 민원성 청탁 자금으로 당시 상황에서 일반 백성들에 비해 떵떵거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컨대, 곤장 맞을 일이 있으면 되도록 아프지 않게 살살 쳐달라는 청탁성 민원과 함께 곤장을 대신 맞도록 주선해주는 이른바 ‘알선 업무’ 등은 지금 듣기에도 상당히 인간적인 수고비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렇다 할 마땅한 급여가 없는 상태에서 각자 개인이 알아서 생존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만들어 낸 삶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역사 문화적 전통인지 병원이나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급여를 주는 현재의 제도로 만족하는 것 같고 질 높은 전공의교육과 환자안전을 위한 교육적인 투자에는 별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알아서 뜯어먹는 조선시대 아전 문화 양상, 전공의 교육체계 환자 안전 위협
     
    우리나라의 의료계나 전공의교육 주무부서인 복지부에도 전공의 교육에 필요한 직접비와 간접비나 국민의 생명을 위한 필수 교육의 개념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2000년 들어 정부가 지급하기 시작한 연구비와 석, 박사 지원의 혜택으로 드디어 우리나라도 공공의 장학금으로 고등교육이 이루어지는 혜택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의학 연구로 우리나라의 차세대 먹거리를 창출해 달라는 경제 관료나 사회의 부탁은 역시 과거부터 음성적으로 내려오는 손안대고 코푸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요구처럼 들린다.

    이 정도의 연구자를 배출하려면 의대시절부터 정부나 공공이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전공의 과정과 연구박사의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과거 순진하고 말잘 듣던 전공의는 적은 급여에도 학문적 성장을 위한 석, 박사 취득에 교수님의 말씀을 잘 따랐다. 상대적으로 처우가 개선된 급여를 받는 오늘날의 전공의는 석, 박사 취득에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얼마 전 까지도 의국이나 교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전공의에게 박사학위를 주문하고 급여를 등록금으로 다시 선(?)순환 시키는 구조도 매우 훌륭한 제도로 현재 우리나라 의학계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연구비가 없던 1990년대 까지 의학계열의 석, 박사 과정은 우리나라 의학계의 성장을 위해 크게 기여한 사실은 엄청난 수의 의사가 전문의와 박사를 동시에 취득했고 덕분에 대학의 교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연구와 논문작성에 대한 실비용도 교실과 시가로 합의에 의한 정산을 해 그야말로 학생의 기여도는 그 어떤 나라보다 높았다. 이런 눈물겨운 사연으로 기초의학 임상의학 모두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비록 질 낮은 기여박사와 같은 의학박사를 많이 만들기는 했어도 고등교육기관으로 생존은 한 셈이다.
     
    환자 진료 중심에 전공의 역할 뚜렷해도 간호사 양성 비용 국가 지원과는 역차별
     
    돈 안들이고 무엇이던 해냈던 마치 불패의 신화와 같았던 우리나라 의학계에 정부는 아직도 전공의 교육 현대화에 대한 정책에 대해 꿈도 꾸지 못하며 어떤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미 복지부는 간호사의 양성을 위한 교육지원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골반이 골절된 손녀와 할머니가 서울로 전원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도 외과계열 전공의에게 외상환자 처치에 대한 고비용 교육이나 전공의로서 반드시 습득해야 할 역량강화는 좀처럼 무관심해 보인다. 이런 무관심은 곧 또 다른 사망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과 좋은 의사 양성의 사회적 혜택은 도저히 이해 못하는 답답한 집단으로 보인다.

    리베이트에 관한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리고 리베이트를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리베이트로 처벌 받은 의사의 수도 많이 늘었다. 그럼에도 제약회사와의 리베이트를 중심으로 한 의국과의 친근한 관계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법적 규제를 피한 리베이트는 지속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유난히 공식적인 회식문화가 발달한 의국제도에서 아직도 의국이나 교실 차원의 회식에 제약회사의 협찬은 쉽게 사라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주 80시간 근무체계를 유지하는 험한 근무형태와 공식적인 의사소통의 자리보다는 비공식적 회식문화에 의한 의사소통이 익숙한 의국문화에서 리베이트 근절은 허공속의 메아리로 보인다. 회식은 보이지 않는 잠재성 교육과정이다. 이것을 대치하는 것은 교육 간접비 투자에 의한 다양한 의국의 학술이나 교육적 행사로 전환되어야 하는데 병원이 이런 고위 교육에 예산을 사용할리는 전무해 보인다.
     
    전공의법 시행 이후 양성 비용 공공 지원 없으면 바퀴 없는 자동차 신세
     

    전공의나 전임의 혹은 그 이후에도 지속되는 의사의 또 다른 역량인 의국비 조달 능력은 우리나라나 이웃 주변 국가 전공의 교육의 특징이다. 최소 북미나 선진유럽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기막힌 역량인 것이다.

    정부가 진정 리베이트를 근절하겠다면 잠재적이고 보이지 않는 숨은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의 회식문화와 전공의가 갖춰야 할 의국비 조달역량과 경쟁할 수 있는 공공적 전공의교육의 간접비라도 최소한 투자해야 사라질 것이다. 전공의 때 터득한 의국비 조달 역량은 나쁜 의료 환경에서는 더욱 발전된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부도 병원도 전공의 교육비를 지원하지 않을 때 의국 스스로 역사적 생존 방식을 고수할 개연성은 너무나도 크다.
     
    법으로 리베이트에 관한 모든 것을 처단하겠다는 법치주의는 전공의교육에 대한 사회적 투자 없이는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매우 좁고 근시안적인 방법이다. 이 보다는 적어도 전공의 교육에 대한 사회적 투자의 시작이 리베이트를 줄여가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의 출발로 보인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