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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에 1/3을 쉬는 꿀보직 봉직의

    세브란스 정윤빈 입원전담전문의의 일과

    기사입력시간 2017-06-22 13:17
    최종업데이트 2017-06-22 14:22

    연세암센터 외과 입원전담전문의인 정윤빈 임상교수. ⓒ메디게이트뉴스

    "막상 9일간 쉬려니 내가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병원에 가봐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더라."

    연세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외과에서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로 근무중인 정윤빈 임상교수는 이달 초 첫 오프 때 당황스러웠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암센터가 최근 2개 외과병동에서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입원전담전문의는 일단 정윤빈 교수를 포함해 3명으로 출발했고, 앞으로 5명까지 늘릴 예정이다.

    정윤빈 교수는 올해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직후 입원전담전문의 세팅 작업에 합류했다.

    현재 근무 방식은 이들 중 2명이 2주간 평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주말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각각 25~30명의 입원환자를 관리하고, 나머지 1명이 1주일 오프한다.  
     
    인원이 충원되기 전까지 나머지 시간은 불가피하게 전공의들이 맡는다.
     
    오전에 출근하면 환자 진료기록을 살피고 회진을 돈다. 수술을 집도한 교수와 상의할 게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만날 뿐 같이 회진하지는 않는다.
     
    교수와 전공의처럼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 집도의는 수술을 하고, 수술전, 수술후 환자 관리는 이들이 전담한다고 보면 된다.
     
    낯선 제도이다 보니 하루하루가 새롭다.
     
    그는 "수시로 병동을 돌면서 환자 상태를 살피고, 약을 처방하고, 검사결과를 설명하다 보면 하루에 7~8번 정도 환자와 대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입원전담전문의제도를 시행하면서 변한 것 중 하나는 '무의촌' 해소.

    오전 회진이 끝나면 교수도, 레지던트도, 인턴도 모두 수술방에 가고, 병동에서는 의사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을 '무의촌'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응급상황이라도 발생해야 전공의가 뛰어왔는데 입원전담전문의가 상근한 뒤로는 이런 게 싹 사라졌다.
     
    그는 "레지던트 때를 생각해 보면 수 십번 채혈해 가면서 결과를 설명해 주지 않으니까 환자들은 '이러다 빈혈 생기겠다'고 마땅찮아 했는데 지금은 수술결과, 검사결과, 앞으로 일정 등을 의사가 하나하나 설명해 주니 너무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환자들과 라포르가 너무 돈독한 나머지 집도의에게 눈길 한번 안주고 자신만 쳐다보고 말할 때는 미안할 정도라고.

    심지어 다인실 자리가 났는데도 병동을 옮기면 입원전담전문의가 없으니까 그냥 1인실에 있겠다거나, 왜 집도의만 외래진료를 하느냐고 따지는 환자까지 있었다고.
     
    전공의와의 관계도 원만하다.
     
    그는 "전공의들이 윗분만 더 생기고 일은 일대로 늘어날 것이라고 반발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게 없다"면서 "우리가 체계적으로 환자관리 교육을 해주니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세브란스병원 제공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 여유가 생겼다.
     
    그는 "전공의 시절 교수님과 회진을 돌기 전에 5시 30분부터 일어나 셀프 회진하고, 컨퍼런스, 수술 준비를 하느라 자는 환자를 깨우기도 하고 청진도 못하고 정신없이 보냈던 게 습관이 되다보니 입원전담전문의 초기에는 출근하고 30분 만에 후다닥 회진을 돌았던 기억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시간이 좀 지나서야 이렇게 해선 안되고, 이렇게 할 필요 없이 여유있게 해도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래서 환자를 대하는 방식을 바꿔가는 중"이라고 전했다.
     
    매일 빡빡한 일정에 쫒기다보니 첫 번째 9일 오프 때는 무척 난감했다. 
     
    그는 "정말 가만히 있었다.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뭘 해야 할지 몰라 2~3일 병원에 나가 이런 저런 일을 돕기도 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처음 세브란스병원 교수로부터 입원전담전문의 제안을 받았을 때 콜이 오면 응대하는 '전공의 5년차'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그에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두가지를 이야기했다.

    정윤빈 교수는 "입원전담전문의가 전공의 5년차라는 선입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영양, 창상관리, 감염 등 일반외과의 총론적인 역할을 정립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또 하나는 수술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힘들 게 외과 수련을 마쳤고, 한창 실력에 물이 오르고 있는데 수술을 하지 않는 외과의사라는 게 아쉽다"면서 "가벼운 수술 정도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시범사업이 끝난 뒤에도 입원전담전문의를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더니 머뭇거림 없이 답이 돌아왔다.
     
    그는 "수술을 못한다는 것만 빼고 모든 게 만족스럽다"면서 "너무 멀지 않은 시점에서 수술만 할 수 있다면 평생직장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단언했다. 
     
    특히 그는 "외과의사들이 바쁘다보니까 수술후 입원환자 영양, 창상 등은 여기저기 떠넘긴 상태"라면서 "이런 분야를 입원전담전문의들이 도맡아 발전시키고, 한국형 외과 입원전담전문의제도의 표준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정윤빈 임상교수의 생각일 뿐 다른 병원의 외과입원전담전문의들이 동일하게 느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는 이번 주말 두 번째 꿈같은 9일짜리 오프를 맞아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