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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日 의사 형사처벌 사례 보니…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행동으로 제한

    [칼럼] 유지원 네바다주립의대 교수·의료정책 및 경제성평가 전문가

    의사 형사처벌 이후 고난이도 진료 회피하고 방어진료·의사와 환자의 불신 초래

    기사입력시간 2018-11-09 05:42
    최종업데이트 2018-11-09 14:4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유지원 칼럼니스트] 의료계는 횡격막 탈장을 진단하지 못해 의사 3명을 구속한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11월 11일 오후 2시에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멀리 미국에 있다 보니 참석하진 못하지만 보건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우선 안타깝지만 미국과 일본의 의사 형사처벌 선례를 보면 앞으로 의료현장의 방어진료가 만연해지고 의사와 환자가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 현상이 심화할 것이다. 

    먼저 일본은 1994년 ‘Article 21법’(Medical Practitioner’s Law)이 제정됐다. 이 법은 병원 등에서 비정상적인 사망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의사를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이 24시간 안에 경찰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 법은 1998년 도쿄 히루(Hiroo) 병원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를 계기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당시 환자는 류마티스 관절염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지만 의료진의 실수로 항응고제 대신 소독제를 정맥주사했고 환자는 사망했다. 그러나 병원 관계자들은 환자 사망한지 11일이 지날 때까지 이를 경찰에 보고하지 않았다. 병원은 몰래 환자의 부검을 실시하고 시체를 화장해버렸다. 그리고 사망원인을 자연적인 것으로 위장하기 위한 증거를 조작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의료법 위반으로 의사가 형사 처벌을 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일본의 의료사고 접수는 18.68% 늘었고 의료진의 형사처벌 건수는 9.21% 늘었다.(Starkey LJ & Maeda S. BMC Health Serv Res 2010)
     
    이에 따라 의사들에 의한 의료사고 보고가 급증했으나 가족 및 다른 사람들에 의한 보고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변화가 없었다. 여기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병원이 고난이도 환자 진료를 회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데 있다. 특히 주말과 야간에 응급진료 회피 현상이 나타났고 각종 검사를 늘리는 등의 의사들의 방어진료 행태가 두드러졌다.(Emergency Transport: O’Malley GF & O’Malley RN. J Emerg Med 2006; Annual report of the Fire and Disaster Management Agency. Emergency transport: Status of admissions to medical institutions)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도가 감소하는 대신 방어진료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Starkey LJ & Maeda S. BMC Health Serv Res 2010) 

    미국 사례를 보면 소송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한 1982년에서 2001년까지 약 30년간 25건의 의료사고에 따른 의료진 형사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음주 진료에 따른 환자 사망에 이른 경우였다.(Filkins JA. J Leg Med 2001) 미국의사협회(AMA)에 2016년 발간된 윤리규정(Code of Ethics)에 따르면, 최근 의사가 형사 처벌된 경우는 진료의 결과가 아니라 절차가 문제되거나 환자와의 관계를 이용한 금품 수수 및 성관계 등의 악의적 행동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횡격막 탈장 사건은 고의에 의하거나 악의적인 행동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이번 형사처벌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정부가 아닐까 싶다. 정부는 소비자인 국민에서부터 정치적 지지라는 이득을 얻을 수 있고, 공급자인 의사들을 형사 처벌을 통해 현재의 건강보험 체계를 통한 경제적 통제에 이어 법적 통제까지 가능한 기전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반면 공급자인 의사는 여러모로 불리한 구도를 벗어나기 위해 환자나 정부에 비용이 더 초래되더라도 방어진료를 선택하고, 그 누구와도 신뢰를 쌓지 않게 될 것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토시오 야마기시(Toshio Yamagishi)는 신뢰(Trust, The evolutionary game of mind and society, 2011)에 대해 불확실하고 모험적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믿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각국 문화와 언어가 보정된 세계 가치관(World Value Survey)에서 지난 30여년 동안 대인신뢰도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대외신뢰도는 1980년대 38%에서 2010년대 27%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한국 사회의 저신뢰 기반을 고려한다면 이번 판결로 의료현장에서의 불신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의사들이 앞으로 펼쳐나갈 의료 현장은 신뢰가 사라진 방어진료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문재인 케어와 커뮤니티케어의 지향점은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단골의사가 중심으로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들과 오랜 기간 신뢰를 쌓으며 불필요한 전원이나 검사를 피하는 데 있다. 궁극적으로 의사는 환자와의 상담 비율을 높이며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결로 정부가 경제적 그리고 법적 정의 측면에서 의사들의 기를 죽인다면 정부 정책 자체가 성립될지 의문이 든다. 

    정부가 의료 시장에서 소수자이며 약자인 공급자(의사)의 팔을 비틀어 절대 다수인 국민의 지지를 얻어낸다면 정의롭거나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