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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정한 가치에 맞는 적절한 비용으로 환자 피해 없어야"

    "국내 제약회사, 퇴장방지약 '리피오돌' 생산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기사입력시간 2018-06-29 13:00
    최종업데이트 2018-06-29 14:12

    #2화. 리피오돌

    리피오돌이라는 간암 치료제가 있다. 이 약은 게르베라는 외국 회사에서만 생산한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강제로 약값을 5만원으로 책정해 판매돼왔다. 
     
    이 약의 국제적인 수요가 커지자 게르베가 한국의 약가를 25만원, 현재의 무려 5배로 인상해주지 않으면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여러 단체들은 "외국 제약회사가 독점이라는 지위를 무기 삼아 환자를 볼모로 잡고 횡포와 갑질을 부린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여기서 조금 다른 입장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리피오돌이라는 약이 다른 나라에서 얼마에 팔리는지부터 알아보자.

    주요 선진국에서 리피오돌의 평균 약가는 39만원이고 개발도상국인 몽골, 베트남 등에서도 25만원 가량에 공급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5만원에 공급을 해왔으며 이번에 인상해 달라고 하는 가격은 25만원이다. 즉,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만 전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낮은 약가에 공급을 해왔고 인상가도 최저가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게르베가 리피오돌이라는 약에 대한 독점적 제조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리피오돌은 출시된지 60년이 넘은 약이다. 이미 조제에 대한 특허는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나라 제약 회사들이 원료만 수입하면 전문 분야인 ‘제네릭’, 일명 ‘카피약’을 얼마든지 생산 가능하다는 뜻이다.

    만약 게르베가 리피오돌이라는 약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면 다른 제약 회사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그럼 왜 생산을 하지 않을까? 그동안 '퇴장방지약'이라는 제도로 약가를 정부에서 원가 이하로 후려쳐왔기 때문에 이를 잘 아는 국내 제약회사들은 퇴장방지약의 제네릭 생산을 거의 하지 않거나 울며 겨자먹기식으로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퇴장방지약은 만들어 봤자 남기는 커녕 적자만 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약은 안 만드는 것일 뿐, 못 만드는 게 아니다. 
     
    이런 정부의 협상력과 강제력이 외국 회사에게까지 발휘돼 건강보험료의 어마어마한 절약이 이뤄지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감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나칠 정도의 가격 후려치기로 약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볼지는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결국 리피오돌은 퇴장방지약 품목에서 제외됐고 약가 재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의료계에서만 유독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당연시하려는 인식이 있다. 리피오돌 사건은 정부의 잘못된 인식이 낳은 또 하나의 흔한 위기일 뿐이다.
     
    정부는 '적정한 가치에 맞는 적절한 지출'이라는 기본 개념을 생각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