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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Beyond Reasonable Doubts)

    [칼럼] 배진건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상임고문

    기사입력시간 2018-11-09 05:55
    최종업데이트 2018-11-09 05:55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필자는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1981년 2월 미국 시민권을 받게 됐다. 당연히 미국 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법에 따라 시민권자들이 가지는 권리는 미국에서 일하고 생활할 자유가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투표할 권한을 가진다.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지워진 의무로 납세의 의무가 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좀 생소한, 배심원(Jury duty)의 의무를 진다. 배심원과 그 요원으로 소송 절차에 참여하는 의무다.

    배심원이 유무죄를 가리는 배심원 후보자가 돼 법원(Court)에 나갈 때마다 판사가 배심원 후보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는 것이 입증 원칙이며 법원에서의 옳은 결정이라는 점이다. 법률지식에 문외한인 배심원들이 평의 및 평결에 참여하려면, 그 잣대가 되는 근본적 질문이 필요한데, 바로 그것은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는가'라는 것이다. 확실하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Religion is a culture of faith; science is a culture of doubt." ─Dr. Richard Feynman

    종교는 믿음이란 문화가 바탕이고 과학은 의심이란 문화가 바탕이다.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고, 여러 대중적 저작물들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힘쓴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박사의 촌철 명언이다.

    모든 과학적인 결과는 우선 의심의 눈초리로 판단되고 비판되기 때문에, 그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는 설명이나 실험적인 결과를 제공해야 한다. 신약개발을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이를 해석하면, 개발사 입장에서 '입증 책임(Burden of Proof)'을 제공할 필요가 있고 또한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도록(Beyond Reason of Doubts)' 각종 자료와 실험결과를 통해 설명하고 대답하고 증거를 제공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 컨설팅회사 플레인뷰(Plainview LLC)의 애널리스트, 아론 웨들룬(Aaron Wedlun)이 쓴 보고서 하나가 지난 10월 1일 공개되자, 뉴욕의 월가(Wall Street)와 미국 바이오업계뿐만 아니라, 의외로 한국의 바이오 증시에도 충격을 던졌다. 'NKTR-214: Pegging the Value at Zero'라는 제목의 보고서였다.

    전 세계 바이오텍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해 주목을 받고 있던 넥타 테라퓨틱스(Nektar Therapeutics)의 지속형 인터루킨-2(IL-2) 약물 'NKTR-214'의 임상 성공 가능성이 0%라고 주장하는 보고서 내용 때문이었다. 

    이 보고서로 인해, 미국에서는 'BMS와 넥타 간의 대규모 딜이 큰 실수에 해당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야기했을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덩달아 '인터루킨'이라는 이름이 붙은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는 회사들은 위시해 관련된 다른 바이오 업체의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법률지식에 문외한인 배심원들의 입장과 같이, 바이오 관련 주식에 투자한 일반인들은 이 사태를 해석함에 있어 전문적 해석이 불가능한 입장이고, 그로 인해 증폭된 불안감은 주식 매도로 이어졌다.

    갑자기 입증 책임을 떠맡은 회사들은 "넥타의 IL-2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사이토카인이고, 이에 반해 자사의 사이토카인은 전혀 다른 기전을 가지고 있으므로 같은 종류라고 볼 수 없다"고 보도자료를 내기에 이르렀다. 일반인에게는 같은 인터루킨이지만 과학자들에게는 뒤에 붙은 숫자가 다르듯 이름도 다르고 역할과 기전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넥타와 같은 타깃인 인터루킨-2를 대상으로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는 회사에게는 일반인뿐 아니라 전문가에게도 숫자마저 일치하는, 동일한 사이토카인이라는 점에서 염려된다. 그러나 역시 전문가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인터루킨-2의 작용점으로써 그 수용체의 종류에 주목하게 된다.

    수용체의 동형 단백질(isoform)의 구성에 따라, IL-2Rβγ는 CD4+ CD8+ T세포, NK세포에 발현하며, IL-2Rαβγ는 면역을 억제하는 Treg 세포에 주로 발현한다. 따라서 넥타는 PEG가 2개 결합한 형태가 돼 IL-2Rβγ에 주로 결합해 IL-2 variant종류와 마찬가지로 CD4+ CD8+ T세포, NK세포를 활성화하지만, Treg 세포는 거의 활성화하지 않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암의 면역성을 증강시켜주는 방향은 강화하고, 기존의 IL-2에 존재했던 반대 방향을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좀 더 강력하고도 선택적인 면역항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같은 IL-2 제제라고 해도 서로 다른 기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넥타의 페길레이션(Pegylation)에 있었다. 넥타는 약효지속 방식의 일환으로 IL-2에 페길레이션한 결과, 효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혈중 약물 농도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예상보다 훨씬 낮은 약동학적 특성을 보이게 됐다. 그리고 만약 독성이 나타나고 지속된다면 긴 반감기가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약효를 위한 약동학의 목표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입증하고, 지속형 IL-2의 약동학, 약력학 특징이 어떻게 약효로 이어질 지 또한 입증해야 하며, 잠재적 독성 이슈를 어떻게 보완할 지에 대한 보증 책임이 이 보고서 이후 넥타라는 회사에 지워졌다. 

    개발하고 있는 제품을 파트너링 미팅에서 소개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과학은 의심이 바탕이다'는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스카우터들의 여러 혹독한 질문에 답을 하는 것으로 일은 시작된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즈니스 딜을 위한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타깃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약효, 물성, 약동학, 약력학, 독성, 바이오마커, 비임상 및 임상 시험에 대한 자료 등을 계속해서 제공해야 한다. 물건을 제공하는 회사가 입증 책임을 다하고, 구매하는 회사가 합리적인 의심을 극복하게 되면 비로소 라이센싱 계약(딜)이 성사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작이 반이다'고 한다. 그러나 신약개발은 끝이 전부다. 저분자 화합물은 시작한 뒤 다시 구조를 바꿀 수 있을 수 있지만, 특히 바이오의약품은 처음 디자인 한 것에 묶여 꼼짝달싹 못한다. 물론 저분자 화합물도 전임상 후보물질이 선정된 후에는 마찬가지 경로를 겪는다. 후보물질의 디자인에 신약 등록 이후의 미래까지 담아야 하는 셈이다.

    일단 시작을 하면 좋은 출발과 함께 끝까지 잘 가게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물론 중간 경로에서 여러 미래예측 시스템의 가동과 리스크 관리 전략과 백업 플랜의 운영은 필수다. 아니면 단호하게 멈춰야 할 때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신약개발은 끝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