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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부작용 책임까지 떠안는 의사들

    최근 3억 배상 "의사는 누가 구제하나요?"

    기사입력시간 2017-05-30 06:36
    최종업데이트 2017-05-30 06:37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의약품 부작용과 의료과실이 겹쳐 환자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우 의사에게 약화사고로 인한 책임까지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무법인 세승의 현두륜 변호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현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사업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서울고법이 A병원에 대해 3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K씨는 2000년 1월 28일 저녁 무렵 감기, 몸살 기운이 있자 약국에서 일반약 ‘스파맥’을 사서 이틀 동안 복용했다.
     
    ‘스파맥’은 복용시 주의사항으로 ▲두드러기, 부종, 가슴 답답함, 숨 가쁨 ▲고열을 수반하며 발진, 발적, 화상 모양 수포 등의 격렬한 증상이 전신 피부, 입 및 눈의 점막 등에 나타날 수 있다고 제품안내서에 기재하고,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즉각 복용을 중지하고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하라고 안내했다.
     
    K씨는 A병원 응급실에 내원해 당직중이던 인턴에게 이틀 전부터 근육통과 얼굴 주위 붓는 경향, 인후통, 무릎 안쪽 발진 등의 증상이 있으며, 며칠간 감기약을 복용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K씨의 체온은 38.1℃, 혈압은 120/80㎜Hg, 호흡은 분당 20회, 맥박은 분당 88회였다.
     
    그러자 응급실 당직중이던 인턴은 급성 상기도 감염으로 보고, 스파맥과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소염진통제 ‘타세놀’과 항생제 등을 처방하고 귀가토록 했다.
     
    K씨는 다음날 오전 증세가 더 악화됐다며 A병원 응급실에 다시 내원했고, 의료진은 검사 결과 스티븐 존슨 증후군이 의심된다며 D대학병원으로 전원 시켰다.
     
    스티븐존슨증후군(SJS)과 독성표피괴사용해(TEN)는 급성으로 나타나는 피부 점막 질환인데, 대개 홍반성의 반점으로 시작해 수포가 형성되고, 광범위한 피부 박리가 일어나며, 점막을 침범해 심한 전신증상이나 내부 장기 침범을 동반하기도 한다.
     
    1년에 1백만 명당 각각 1.2~6명, 0.4~1.2명 정도의 환자에게 이들 약물 부작용이 보고되는 매우 드문 질환이다.
     
    K씨는 D대학병원에서 양막이식술을 받았지만 양안 모두 실명되는 영구적 장애가 남았다.
     
    그러자 K씨는 A병원뿐만 아니라 ‘스파맥’를 제조한 제약사, 해당 약을 판매한 약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A병원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책임을 물었다.
     
    재판부는 “해당 제약사는 ‘스파맥’의 제품안내서에 스티븐 존슨 증후군 내지 독성 표피 괴사용해증의 위험성을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재해 표시상 결함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약국와 관련 “약사가 일반약을 판매하며 약제의 매우 예외적인 부작용까지 자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약 구매자가 개별 약제에 첨부된 제품안내서를 참조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재판부는 A병원의 과실로 인해 환자가 장애에 이르렀다고 결론 내렸다.
     
    법원은 “의료진은 K씨가 응급실에 내원해 발열과 얼굴 주위의 붓는 경향, 발진을 호소했고, 감기약을 복용한 바 있다고 말한 이상 약물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적어도 환자가 복용한 약에 대해 자세히 문진했어야 하는데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의료진은 환자의 증세만으로 스티븐 존슨 증후군 내지 독성 표피 괴사용해증을 진단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하더라도 아세트아미노펜의 부작용일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어 약물 투여를 중지하고 경과를 관찰하거나 적어도 스파맥과 주성분이 동일한 계열의 약제를 처방하는 조치를 피할 수 있었다”고 환기시켰다.
     
    병원 의료진이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에 대한 문진의무를 소홀히 해 스파맥과 주성분이 같은 약제를 처방했고, 이 때문에 조기에 독성 표피 괴사용해증을 치료하지 못해 이 사건 장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두륜 변호사는 “약화사고와 의사의 의료사고가 중첩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의사에게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악결과 손해까지 부담하도록 한 것은 문제가 있고, 이런 경우 의사도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약처는 현재 환자가 의약품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진료비, 장애일시보상금, 사망일시보상금, 장례비 등을 지원하는 피해구제사업을 하고 있지만 의사는 구제대상이 아니다.
     
    현두륜 변호사는 “현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사업은 환자와 그 유족만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어 의사는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손해까지 모두 배상하더라도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면서 "손해배상으로 인한 의사의 경제적 손실까지 일부 보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