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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가운을 입은 건달조직 '의국'

    막강 권한, 전공의·전임의 쥐락펴락

    "누구에게도 도움 안되는 조직…수술 필요"

    기사입력시간 2015-05-11 05:46
    최종업데이트 2015-05-11 09:12

    전공의 처우 개선을 놓고 대한전공의협회(이하 대전협)와 병원협회(이하 병협)의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

    일선의 전문의와 전공의는 주 80시간 근무 제한 및 추가 인력 지원을 요구하는 대전협 주장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그 실행 가능성엔 의문을 품고 있다. 설령 병협이 대전협의 주장을 100%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말이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처우와 실무를 담당하는 한 전임의는 "뻔히 수련 병원이 돌아가는 원리를 알고 있는 대전협이 '병원'만을 찍어 항의하는 것은 조금 비겁하다"라며 "수련 병원에서 (새로운 규칙에 대한) 병원 지시가 '그곳'의 허락 없이 전공의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대세에 못 이겨, 병원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이드라인을 받아들이더라도 그것을 다시 판단하고,

    '병원에서 내려온 가이드라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다시 정하는 그곳.
     
    근무와 교육에 대한 전공의의 합리적 요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그곳'의 대한 언급 없이 이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조금 아쉽다는 것이다.
     

    병원과 의국의 밀월 관계
    권력을 주고 의사들의 방패막이로 이용




    대형병원에 있는 여러 전문과를 관리하는 데 있어 의국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다. 의국을 만들어 인사권 등의 권리만 이임하면 의국은 병원에서 발생하는 자기 과에 관한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 의사 결원이 생기면 충원은 병원이 아닌 의국의 고민이 된다. 만약 충원을 못 하면 결국 해당 의국원(주로 전공의와 전임의)은 근무 시간을 늘려서라도 해당 업무를 나눠 맡는다.

    의국원의 과다한 업무를 '의국을 통해 투정부리는 것'은 쉽지 않아, 결국 의국은 의사와 병원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현재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한 전공의는 "4명 몫의 업무를 (결원이 생겨) 3명이 맡으면, 애당초 4명에 맞게 할당되었던 인건비를 3명에게 나눠 주는 것이 맞지 않느냐?"며 "의국은 이런 기본적인 요구조차 병원에 할 생각도 없다. 의국이 의국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이 전공의는 이어 "병원 입장에선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든 의국에서 알아서 책임지는 구조, 즉 '큰 무리 없이 입원 병동은 돌아가면서도 병원 인건비 추가가 없는' 이런 형태가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병원은 결국 전공의 권리와 요구를 스스로 차단하는 좋은 방패막이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의사 인사 및 관리를 담당하는
    '하얀 가운 입은 건달 조직'



    일본 원작 드라마 '하얀 거탑(白 い 巨塔)' <출처 : 후지TV>


    의국원의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의국이 유지되는 것은 병원으로부터 일정 권리를 보장받아 누리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의국은 인사권을 가지고, 교육 수련 관리를 한다. 의국은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임의와 교수 채용에 실질적인 결정권이 있고, 그들의 교육 수준과 업무 범위는 의국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전공의와 전임의는 교수에게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고, '정치 놀이'를 즐기는 교수는 이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세력을 키워 의국의 헤게모니를 쥐려 한다. 이런 구조에서 합리적인 의국원 선발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성형외과 전공의를 지원했다 실패한 한 외과 의사는 "학생대표와 인턴대표를 거치고 내신도 4등급*을 유지하면서 성형외과를 지원했었다"라며 "지원 경쟁자가 병원 외과 과장님의 아들이었지만, 내신 9등급에 유급까지 당한 적이 있던 친구여서 내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회고했다.
    *의대는 성적순으로 10%씩 나눠 총 10등급의 '대학 내신'을 산출하는 데, 여학생이 상위권을 다수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남학생 4등급은 숫자 이상으로 우수한 성적이다.

    이 외과 의사는 이어 "지금 돌이켜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라며 "로얄패밀리*보다 의국에 더 영향력을 발휘할 힘이 없다면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단언했다.
    로얄패밀리* : 의과 대학 교수의 자녀를 비롯한 가족

    전공의를 선발할 때에는 '전공의 시험'이나 '인턴 성적' 같은 객관적 지표가 아무리 높아도 실세의 '면접' 점수 한방으로 당락이 뒤짚힐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이런 구조는 '재수'를 하는 억울한 전공의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막강한 권력이 1인에 의해 완벽한 제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국은 파벌을 만들어 '드라마'에서나 보이던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제 갓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한 신경외과 의사는 의국 경험을 회고하며 "우리 의국엔 실세 교수 A와 그의 선배 B 교수가 있었는데, A는 B를 너무 싫어했다. 전공의들은 실세를 좇아 B가 담당하는 환자를 의도적으로 소홀히 하거나, B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라며 "물론 A 교수가 그런 행동을 직접 지시한 적은 없지만, 그것은 내가 학생 실습 때부터 보고 경험한 우리 의국의 불문율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런 환경에서 A와 B가 각각 담당하는 환자의 병동 콜을 동시에 받으면 먼저 달려가야 할 환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병원 직원 심지어 학생들마저 이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이런 상황을 문제 삼지 않았다. 병원에서 의국이란 원래 그런 존재고 이 사안은 그저 신경외과 의국에서 알아서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맹목적 충성심을 강조하고 파벌을 만들어 선택을 강요하는 이런 모습은 패거리 문화를 자랑하는 '건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력발휘'하는 조직
     

    영화 '범죄와의전쟁' 중 한 장면

    강압적인 권력이 지배하는 곳에서 '왜'라는 질문은 사치이며, 의국원은 '시키는 것을 하든지 나가든지'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지원자가 없어진 일부 의국의 경우 전공의 유인을 위해 입국비나 의국비가 없어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많은 과에서 다양한 액수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한다.


    대학병원에서 성형외과 수련을 마친 한 전문의는 "전공의 1년 차가 되어 본인 신용 카드를 의국에 맡기면, 의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회식비와 식사비를 그 카드로 결제한다"라며 "다른 병원은 입국비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내는 곳도 있다고 하니 나는 좀 나은 편"이라고 전했다.
     

    대부분 전공의는 이런 '조공' 자체를 인기과를 간택 받은 것에 대한 보상 혹은 전문의 취득 후 회수할 수입에 대한 투자 정도로 생각한다고 한다. 따라서 의국에서 요구하는 어떤 형태의 경제적 요구라도 특별한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방에서 전공의를 했던 다른 이비인후과 의사는 "전공의 픽스*받고 (전공의) 윗년 차가 조용히 부르더니, 승용차 차종을 물었다"라며 "내 차는 당시 소형차가 아니었는데도 윗년 차는 상위 차종으로 바꾸라는 눈치를 줬다. 과장님들 학회를 편한 차로 모셔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고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픽스* : 전공의 합격을 담보해 주는 것

    수련 과장의 품위유지를 전공의들이 챙겨주는 셈이다.

     
    이외에도 타 병원에 파견을 나가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의국비로 바치게 하거나, 의국 출신 전문의의 지원금에 의존하여 의국비를 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의국 존재 이유, 냉철하게 비판해야 할 시기
     

    발간 50년이 넘은 일본 소설 '하얀거탑'이 (각색을 감안하더라도) 이질감 없이 다가오는 이유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의국문화의 유사성' 때문이다.



    일본 메이지 유신 때부터 시작한 '의국'이라는 제도는 최근 본토조차 그 폐해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도카이 의대(東海大医学部)를 시작(2003년)으로 폐지가 늘고 있다.
     
    '원산지'조차 거부하기 시작한 이 제도의 순기능에 대해, 이제는 냉철하게 바라볼 때가 왔다.


    그 특출난 도제시스템이 만들어낸 '의료장인'은 수술은커녕 기본 술기도 제대로 못 해 전임의 과정을 거쳐야 의사다워진다. 의국이 주도하는 이런 수련 교육이 제대로 된 의료인을 배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다고 퇴국을 한 전문의에게 '따뜻하고 실질적인 소속감'을 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개원 중인 한 외과 전문의는 "전국의 의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시골구석까지 진출하여 물불 안 가리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의국이라는 바운더리가 특별한 메리트가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집도식, 입국식 명목으로 선배의 의무(경제적 지원)를 강조하면서 의국을 나와서조차 부담을 주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결국 현재 의국은 힘을 가진 소수 몇 명을 제외하면, 의국원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존재"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