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
심평원과 건강보험공단은 의사가 환자 진료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인가, 아니면 병의원 위에 군림하고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인가?
질문을 조금 바꿔 보자. 환자를 진료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심평원과 공단인가?
전문의가 개원하여 감기치료나 하고 단순물리치료나 하고 피부 미용 성형에 몰리거나 대형병원에서 필요 이상의 과다한 검사와 수술을 하는 등의 우리나라 의료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완장찬 김에 갑질한다고 심평원과 공단이 의사를 힘들게 하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에 금이 가게 하는 활동을 하지는 않는지 우려할 만한 일이 많다.
개원의로서의 필자의 경험 몇가지를 예를 들어보면, 개원하고 몇 년이 흘렀을 무렵인데 공단 직원이라고 하면서 병원에 와서는 대기실에 환자가 있는데도 큰 소리로 부당 진료 신고가 있어서 조사하러 나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용을 들어 보니 공단에서 허위 진료를 조사한답시고 환자들에게 수진자 조회 엽서를 무작위로 보내는데 진료 받지 않았거나 약을 조제받지 않았는데 그렇게 했다고 되어 있는 경우 신고하라는 내용이다.
챠트를 보니 진료 받은 기록이 있고 수납 장부 기록도 있으며 조제한 약국에도 기록들이 모두 남아 있어서 무혐의(?)로 넘어간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수진자 조회가 몇 개월 이후에 오는 경우가 흔히 있어서 사실 나도 진료 기록을 보기 전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내용이었고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기억이 모호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환자는 자신이 진료받은 적이 없다고 회신을 보낸 것 같다.
그런데 많은 환자들은 이런 엽서를 받고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도 이 환자처럼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왜 이런 엽서가 날라오는지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 병원이나 이 약국이 뭔가 부당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하기도 쉬운 대목이다.
비슷한 내용으로는 본인부담금 환급금이라는 것도 있다.
병의원이 진료를 하고 진료비를 청구한 것이 삭감되는 경우 본인 부담금 만큼을 환자들에게 돌려준다는 엽서를 보낸다.
그런데 그 심사를 심평원이 의사 옆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청구서류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기껏 진료하고도 청구서류 작성을 잘못하든지 누락하여 삭감되는 경우도 흔하다.
친절하게도 돈을 돌려준다는 공단의 엽서를 받은 환자는 병원에 대하여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
그 병원이 뭔가 부당한 짓을 했는데 심평원과 공단이 그것을 바로잡아 주는 정의의 사도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병원은 삭감도 당하고 환자에게 불신까지 당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셈이다.
심지어 매달 처방하는 고혈압 약 같은 경우도 고혈압 병명을 깜빡 잊고 청구하면 약제비를 병원 진료비에서 삭감한다. 환자는 고혈압 약을 먹었고 고혈압 약제비는 약국에 지급되지만 병원이 받아야 할 진료비에서 약값을 차감한다. 필자도 매달 몇만원에서 몇십만원까지 경험하는 일이다.
본인부담금 환급금에 관한 우스운 경험은 몇년 전에 어머니가 갑자기 당뇨병이 발생해 당뇨병에 대한 몇가지 검사를 하고 약도 처방하였는데 어머니의 건강보험이 나에게 등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환급급을 지급한다는 공단의 엽서가 우리집으로 와서 받은 적이 있다. 참 씁쓸하면서도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의사들과 병의원의 본연의 역할은 당연히 환자의 진료이다.
공단과 심평원은 그것이 잘 돌아가도록 옆에서 지원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부당 청구를 잡겠다고 선량한 의료인과 병의원까지 저렇게 불신에 쌓이게 하는 일을 해왔던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병의원이 청구업무를 대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도 아니다. 프랑스 같은 곳은 환자들이 진료비를 전액 병의원에 납입하고 서류를 제출하면 일정 비율을 공단에서 돌려 받는다고 한다. 우리처럼 병의원에서 보험 청구한다고 과외 일을 할 필요도 없고, 병의원이 삭감당할 이유도 없고 환자와 의사가 보험 적용 여부를 놓고 실갱이를 벌이거나 불신할 일도 없다.
보험진료라면 일정 비율을 환자가 돌려 받을 것이고 비급여라면 전액 환자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 보험으로 해주느냐 안해주느냐를 놓고 의사와 환자가 싸우는게 아니라 환자와 공단이 싸우는 것이다. 사실 그게 보험자의 역할이다.
심평원과 건강보험공단은 자신들이 해야 할 힘든 일을 의사와 병의원에 미룬 데에 이어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불신을 조장하고 병의원 위에 군림하는 자세로 있지 않았나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행위별수가제와 저수가가 그것을 조장한다면 지불제도 개편까지 포함하여 의사가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의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본질이 잘 돌아가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국민들의 치료비로 쓰여야 할 의료비를 삭감하고 아껴 그 돈으로 호화 청사를 짓거나 공단임직원들 성과급으로 지출한다면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