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인간의 몸은 굉장히 정교하게 디자인됐기 때문에 먹는 양(量)에 따라 가장 효율적이게 에너지를 소비하도록 돼있다. 탄수화물은 굉장히 빠르고 급격하게 연소되는 반면에 지방이나 단백질은 느리고 가속도 없이 일정하게 연소된다.
키토제닉 다이어트(Ketogenic Diet)는 탄수화물을 아주 낮은 수준(20g 미만)으로 제한하는 저탄수화물 고지방(LCHF; Low Carb, High Fat) 식이요법으로, 몸을 '키토시스(Ketosis)'라는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탄수화물 섭취를 낮추고 많은 양의 지방과 적당한 양의 단백질을 섭취하면 탄수화물이 아닌 지방을 몸의 연료로 사용해 대사물질로 키톤(Ketones)과 키톤산(Ketoacids)을 생산해낸다. 이 상태를 '키토시스'라고 부른다. 키토시스 상태에서는 몸의 컨디션이 급격히 왔다 갔다 하거나 배가 엄청나게 고파지는 일이 없게 된다. 비밀은 지방은 탄수화물처럼 쉽게 연소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끊임없이 연소시키면서, 식탐과 식욕 또한 줄어들기 때문에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그 자체로 놀라운 체중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인슐린의 저하로 체중감량과 폭식증 치료에 큰 효과가 있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또한 간질이나 치매 등 신경성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뇌 안의 염증과 알츠하이머성 치매나 파킨슨 병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키토제닉 다이어트와 뇌 안의 염증과의 연관성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뇌의 염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알츠하이머성 치매나 파킨슨 병을 일으키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뇌의 면역세포인 미세교세포(microglia)라는 연구 결과는 많이 있다. 전체 뇌세포의 10%에서 15%를 차지하는 미세교세포는 주위 환경을 감시하며 언제든지 손상된 뉴런(신경세포)과 이물질 등이 감지되면 동료들을 불러들여 이들을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뇌와 중추신경계의 면역세포라고 불린다.
쥐를 실험모델로 쓴 여러 연구에서 키토제닉 다이어트와 칼로리 제한(calorie restriction)이 염증을 감소시킨다는 것과 뇌 손상후 회복이 빨리 되는 것, 심지어 수명 연장까지 실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키토제닉 다이어트의 유익한 점을 사람에게서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에게서는 키토제닉 상태를 오래도록 지속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의 스완슨(Swanson) 박사 연구팀은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뇌의 염증을 줄임으로써 신경성질환에서의 병증 완화 효과를 나타낸다는 가설을 세웠다. 스완슨 박사팀은 키토제닉 다이어트의 분명한 결과로 생기는 분자학적인 열쇠(molecular key)를 찾아내 2017년 9월 22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에 발표했다. 최근 뇌 염증을 감소시킴으로써 뇌 질환치료의 효과를 기대하는 연구동향을 볼 때, 이 논문을 기초로 뇌의 염증을 감소시키는 새로운 치료방법을 모색할 수 있겠다.
에너지 대사의 중심 바로미터(barometer)인 NADH/HADH+ 비율은 열역학적으로 해당(解糖)작용(glycolysis)에 연결돼 있다. 그러기에 이번 연구에서 제일 먼저 관찰한 물질이 2-데옥시-D-글루코오스(2-Deoxy-D-glucose; 2-DG)이다. 2-DG는 포도당의 2번 위치 수산기(OH)가 수소(H)로 치환된 포도당 유도체이다. 2-DG는 포도당처럼 포도당 수송체(glucose transporter)의 GLUT1을 이용해 세포 내에 흡수돼 헥소키나아제(hexokinase)에 의해 2-DG-6 인산(phosphate)으로 변환된다. 세포 내에 축적된 2-DG-6 인산은 정상적인 포도당 대사를 저해해 쥐 모델과 사람 세포 모델에서 키토제닉 상태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포도당 대사, 즉 해당작용(glycolysis)을 저해하면 에너지 대사의 중심 바로미터(barometer)인 NADH/HADH+ 비율도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뇌에 존재하는 미세아교세포와 대식세포(macrophage)의 활성도는 2-DG에 의해 저해됐는데, 이 때 NADH/HADH+ 비율이 감소됐다. 그 결과 활성화된 CtBP(C-terminal-binding protein)라는 단백질이 염증유발 유전자들(inflammatory genes)을 억제하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CtBP 자체가 단일체(monomer)로서 p300/CBP20 단백질의 아세틸기전달효소(acetyltransferase) 활성을 억제시킨다. p300/CBP20 단백질은 히스톤(histones)과 염증 전 전사인자(pro-inflammatory transcription factor)인 NF-κB25를 아세틸화 시킨다. NADH/HADH+ 비율이 높아지면 CtBP는 단일체에서 이중화 형태(dimerized)로 바뀌면서, p300/CBP20 단백질의 아세틸기전달효소(acetyltransferase)를 활성화한다. 결국 2-DG에 의한 염증 억제 작용은 대사신호전달 과정 중 CtBP 단백질을 매개체로 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CtBP 단백질이 단일체 활성화 상태에서 이중화 형태의 비활성화 상태가 될 때 작용하는 펩타이드 저해제를 만들었다. 이 단백질이 이합체화(dimerization)하는 중간 부위인 아미노산 125~153 위치에 결합하는 저해 펩타이드를 (N-terminal Tat을 이용해) 세포 내로 전달 시키면, CtBP 단백질은 계속적으로 염증유발 유전자들의 활성을 억제해 키토제닉 상태를 모방(mimicking)하게 된다. 29mer 펩타이드 특성상 그 자체로 약이 될 수는 없지만, CtBP 단백질이 활성화 상태에서 비활성화 되는 것을 막는 저분자화합물을 발굴한다면 키토제닉 상태의 효과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어려운 키토제닉 다이어트 대신 시도할 수 있는 약이 될 것이다.
이번 연구는 뇌의 염증 유발과 축적으로 이어지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뇌 질환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포도당 상승을 보이는 당뇨병과 동맥경화증(Atherosclerosis)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동맥경화증은 실제 염증반응이 진행 중인 질병이다. 또한 간질, 다발성 경화증, 심지어 자폐증이나 편두통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 이 칼럼은 2017년 9월 22일 자 UCSF 연구소식에 실린 기사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