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n번방 사건 등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는 가운데 최근 붉어진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A씨의 성추행 사례로 성범죄 의료인에 대한 의사면허 관리 문제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해 9월 A씨는 수술 도중 여성 환자의 신체를 반복적으로 만지는 등 강제추행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한 함께 일하는 간호사에게도 수 차례 성희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병원에서 정직 처분에 더해 지난 7일 결국 수련 취소 처분까지 받았지만 이와 별개로 의사면허가 그대로 존속된다는 점이 사회적 공분을 키웠다.
1일 A씨의 면허를 취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1주만에 6만2000여명이 동의를 표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2일 성명서를 통해 "해당 병원은 형사고발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 복지부도 A씨의 의사면허 관련 행정처분을 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병원은 A씨에 대해 초기에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리고 환자를 대면하지 않는 비임상과에서 수련받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최근 다시 A씨의 수련을 취소하게 됐다. 현재 A씨는 병원에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 성범죄 검거 늘고 있어…법 개정 통한 면허 제한 필요
실제로 의료인 성범죄 관련 검거 수도 늘고 있는 추세로 2014년 83명에서 2018년 163명으로 늘었다.
경찰청의 '최근 5년간 전문직 성범죄 검거현황'에 따르면 5년간 성범죄로 입건된 전문직 4760명 중 의사는 611명으로 12.8%를 기록,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중에 ‘강간‧강제추행’으로 검거된 의사는 539명으로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57명,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14명 순이다.
성범죄 의료인의 면허취소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2019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선 여당 의원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당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료법상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할 수는 없고, 자격정지는 가능하나 그마저도 협소해 실효성이 낮다”고 말했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성범죄로 인한 의료인 징계는 지난 5년 동안 4건에 그쳤다. 그마저 징계는 모두 자격정지 1개월 뿐”이라며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에 대한 자격관리는 보다 엄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법안 발의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2018년부터 2019에 발의가 집중됐는데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성범죄 등 중범죄에 따른 의사면허 취소 범위 확대와 면허 재교부 기간을 늘리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손금주 의원 2018년 10월, 인재근 의원 2019년 7월, 장정숙 의원 2018년 12월, 윤일규 의원 2019년 2월, 권칠승 의원 2019년 8월).
독일은 면허를 취득한 의료인이 성범죄를 저질러 형사재판을 거쳐 실형을 선고받게 되면 연방의사규정에 따라 해당인의 의사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형이 확정되지 않더라도 일단 면허를 정지시키고, 형이 확정되면 면허를 취소한다. 특히 이렇게 면허가 취소되면 재취득이 매우 어렵다.
김주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재 의사면허와 관련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의료법 개정안이 있다”며 “의사가 성범죄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면허를 취소하거나 재교부를 제한하는 내용의 선진 사례를 참고해 개정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이중규제 될 수 있어…내부 자율징계 시스템 강화가 해답
반면 의료계는 법을 통한 면허규제는 자칫 이중규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현행 의료법에 의해 규제받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의사 면허규제법이 만들어지면 과중한 행정처분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1호에 따르면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하는 행위를 할 시, 면허 자격정지를 통해 의료인을 제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미 의료계 자체적으로 의사 자율징계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법 개정보다는 기존 시스템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게 의료계 주장의 골자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이번 성추행 전공의 사건은 당연히 윤리적 차원에서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며 징계가 필요하다"면서도 "의료계가 의료인의 품위손상이나 불법행위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법 개정을 통한 면허박탈 논의는 과중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미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제에서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이며 8일 의협 중앙윤리위원회에도 해당 사건이 회부됐다"며 "현 시스템 내에서 조사를 통해 문제가 있다면 자체적으로 면허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전했다.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은 이번 사건에 대해 조사 중이며 사실관계에 따라 최대 행정처분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박명하 전문가평가단 단장은 "현재 해당 사건과 관련해 대전협 등 2건의 민원이 접수된 상태로 오늘 아침에도 관련 회의가 진행됐다"라며 "무면허 의료행위 등에 대한 형사고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메뉴얼 상 이번 건은 의사 품위유지 손상으로 최대 행정처분까지 갈 수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의사관리, 교육, 모니터링 등과 관련해 개선사항이 모색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전평제나 중윤위 등 시범사업의 권한이 좀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게 의료계 중론이다. 실제로 중윤위의 경우, 최고 징계 수위가 회원 자격정지 3년에 불과해 실질적인 징계가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특히 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의뢰해도 피드백이 거의 없고 징계 대상자가 반발하거나 비협조적일 때 징계 절차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전평제도 시도의사회의 독립성 문제와 역할, 범위에 관한 합의가 충분치 않다는 한계가 있다.
박 단장은 "현재 상황에서 전평단이나 중윤위에서 의사 회원에게 후속조치를 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라며 "행정처분을 한다고해도 처분이 끝나고 해당 의사가 개원을 하던 봉직을 하던 막을 길이 없다. 이번 기회에 전평제, 중윤위 등 기구의 권한을 강화하고 독립된 면허기구를 설립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도 "현재 의료계는 비윤리적 행위를 자율 규제하는 전평제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지만, 적절한 처분을 내리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며 "자율규제 권한을 강화해 사법 체계가 보지 못하는 비윤리적 행위를 직장 동료와 같이 일하는 전문가가 선제적으로 적발하고 면허를 박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모든 것을 법으로 할 수는 없다. 내부적으로 전문가들이 자율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는 방향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권한 강화로 가기 위해선 현재 진행 중인 (전평제)시범사업이 어떻게 신뢰를 얻고 성공사례로 남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