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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분명 처방제, 그 허와 실

    [칼럼] 여한솔 공보의

    투명한 의료체계 확보가 선결돼야

    기사입력시간 2017-09-25 05:00
    최종업데이트 2017-09-25 05:00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대한약사회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이 단체는 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에 편승해 건강보험의 재정 절감 필요성을 언급하며 약사의 진료권을 주장하는 한편, 성분명 처방제 또한 정치권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그 기세는 드높지만, 성분명 처방제를 주장 하는데에 명확한 근거 없이 국민들에게 정당성이 결여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판단해, 그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성분명 처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대한민국 의료체계와, 부정한 세력과 결탁해 이윤 좇길 꾀하는 왜곡된 사회구조를 고려할 때 성분명처방 시행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약제 생동성 실험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

    제약회사들의 약제 생동성 실험은 주로 위탁업체에 맡겨 시행했는데, 이 위탁업체들은 대부분 제약회사로부터 비용을 받고 시행한다. 따라서 실험과정이 제약회사의 편의에 맞게 구성 될 것이 뻔한 현실이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실험과정과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다. 이 부분을 제약업계가 개선하지 않고, 대한약사회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약사가 임의 조제 하겠다는 것은 환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기에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이다.

    두 번째,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품이 빈번하게 바뀌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제네릭 약은 오리지널 약의 80~120%의 효능 정도만 갖추면 식약처에서 인정 받아 의사의 처방에 의해 유통된다. 이처럼 성분이 똑같다 하더라도 약의 효능은 환자 개개인별로 발현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약사들은 간과 하고 있다.

    임상경험이 없는 약사가 성분명이 같다고 해서 함부로 약을 선택해 투약했을 때 약의 효현 정도가 달라 환자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누가 책임져야 할 일인가?
     
    세 번째, 처방을 내리는 의사가 투약하는 약이 어떤 상품인지 모를 때 생기는 문제가 있다.

    의사는 환자가 어떤 제약회사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환자의 질병 호전 정도가 미미할 때, 약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 때문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의사는 환자가 복용하는 약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성분명 처방을 시행하게 되면 어떤 약이 쓰여 지는지도 모르고 환자를 보게 된다.
     
    네 번째, 환자들이 약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문제가 있다.

    환자들은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오리지널 약을 선호할 수 있다. 하지만, 성분명 처방제가 시행되면 환자가 선호하는 것과 다르게 약국에 있는 한정된 약으로 조제하게 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

    적절한 약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의사의 의학적 지식에 의한 판단이고, 그 다음으로 의사가 처방내린 성분에 대한 환자의 선택권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대한약사회가 언급한 약품비 절감효과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에 포함된 약품비는 2014년 기준 14조 8천억 원으로 건강보험 총 재정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약품비가 이처럼 과다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의사들이 비싼 오리지널 약제를 많이 처방해서가 아니라, 제네릭 약을 제조원가 대비 터무니없이 비싸게 책정하도록 한 심사평가원과 제약회사의 문제이다.

    실제로 지난해 신약의 건강보험급여 등재와 약값 결정 과정에서 뇌물수수로 기소된 심평원 상근위원과 모 대학교 임상약학대학원장의 부당거래 적발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국민들은 의사가 약값을 결정한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약제비를 결정하는 공공기관의 일부 적폐세력들이 건강보험재정을 갉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선한 국민들의 건강보험료를 축내고 있는 이들이 적폐가 아니면 누가 적폐인가.
     
    대한약사회는 성분명 처방을 시행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이유를 들어 성분명 처방의 합리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물 타기 논법이다. 의료선진국들을 보면 아직도 성분명 처방만큼이나 제품명 처방을 시행하는 곳도 많아 제도 자체의 우월성을 따지기는 쉽지가 않다.

    성분명 처방이 국민 의료비 부담 경감에 도움 된다는 뜻을 살리려면 의료체계의 개선이 선결조건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네릭 약이 오리지널 약에 비견할 수준의 안정성과 효능을 갖추려면 인증절차인 생동성 시험이 보다 투명하게 진행돼야 하고 약제비를 산정하는 기관들과 제약회사 업계의 청렴의 정도 또한 국민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대한약사회는 의료접근성 강화와 건강보험재정 절감을 성분명처방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대체조제 활성화와 함께 약품주도권을 의사로부터 빼앗으려는 속내가 아닌지 되묻고 싶다.
     
    국민의 생명권이나 건강권 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논리가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힘을 얻고 있는 이 위기의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약사들은 약학 전문가로서 올바른 보건의료 체계를 만들기 위해 의사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아야 한다.

    재정 절감을 명분으로 국민건강을 저질 의료에 맡기는 것은 의사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전문가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값싼 이익만을 좇는 행태로부터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