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국내 2000여명의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각종 사건사고로 어느 때보다 불안한 시기를 보냈다. 툭하면 응급실 폭행, 응급실 의사 구속, 그리고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까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응급의학과 의사들을 위해 밤낮없이 탄원서를 돌리던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대한응급의학회 섭외이사)가 최근 제57주년 소방의 날을 맞아 국가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이 교수에게 수상소감을 묻는 동시에 그동안 응급의학과에서 있었던 사건사고를 돌이켜봤다.
응급실 폭행, 의사 구속…1년 내내 탄원서 모으는 중
지난해에는 유독 몇 차례에 걸쳐 환자가 특별한 이유 없이 응급실에서 진료를 하던 응급의학과 의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7월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응급실 폭행사건은 의사의 코뼈가 부러지는 등의 후유증을 남겼다.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15만명으로 아쉽게 20만명 달성에 실패했지만,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는 충분했다. 응급의학회는 전국 403개 응급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 없는 안전한 응급의료 환경 조성을 위한 전국 응급의료종사자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 교수는 “당시 1만명 이상 의사와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서명한 탄원서를 모았다. 전국 의사들이 홈페이지에서 참여하고 우편으로도 참여했다. 이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명연 의원(자유한국당)에게 전달하고 응급실 폭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횡격막 탈장을 진단하지 못한 응급의학과 의사를 포함한 의사 3인이 구속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에는 구속된 의사를 찾아가 위로하고 의사 3000명의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올해 5월 대법원 판결에서 끝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응급의학회는 오는 19일 형사소송 항소심을 앞두고 또 한 번 의사 1000명의 탄원서를 모았다. 이번에는 응급실에서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환자에게 민사소송에서 5억원을 배상했는데, 또 한 번 형사소송을 겪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를 구하기 위해서다. 탄원서에 계속 나서다 보니 탄원서를 써달라는 부탁이 수차례에 걸쳐 오기도 했다.
이 교수는 “엑스레이에서 이상소견을 발견하지 못하고 응급처치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젊은 의사에게 탄원서를 써달라는 스승의 요청이 또 왔다. 탄원서는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고의가 아닌 선의의 의료행위였다면 형사처벌에서는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응급의학과는 진료과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응급의학과에서 일하기 싫다거나, 지원하기 싫다는 이야기마저 들려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응급의료법, 응급실 폭행 줄었지만 여전한 과로사 우려 아쉬워
다행히 올해 1월 응급의료법이 시행됐고 응급실 폭행이 많이 줄어들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됐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최소 1000만원의 벌금형, 중상해 이상의 피해를 입힌 경우 무조건 징역형에 처하도록 처벌 규정이 강화됐다.
이 교수는 응급의료법 통과를 위해 대한의사협회가 마련한 궐기대회 연대사에 나서고 국회를 찾아다녔다. 이 교수는 “응급실 의료진이 피를 흘리고 쓰러졌을 때 응급실에 있던 다른 응급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은 과연 누가 돌봐줄 수 있는가. 응급실에 있던 다른 응급 환자들의 안전과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생과 사가 오가는 급박한 현장에서 꺼져가는 생명에 대한 마지막 소생술을 시행하는 긴장의 현장인 응급실은 응급 환자를 위해 최상의 안전과 보호가 담보돼야 한다”라며 응급의학과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이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어야 응급 환자들의 진료는 더욱 빠르고 안전해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응급실 폭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응급실 폭행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응급실 폭행이 사라진 것은 아닌데 체감적으로 국민들의 학습 효과에선지 응급실 폭행이 상당히 개선됐다”고 밝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여전한 과로사에 대한 우려다. 올해 1월에는 윤한덕 고(故)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 사건이 있었다. 밤낮 상관없이 당직을 서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하루가 멀다고 연락하고 도와주겠다는 말을 했지만 특별한 후속조치는 없었다.
이 교수는 “윤한덕 센터장과 관련한 법안이 자꾸 발의됐다. 응급의료기금 관리 권한을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주려는 등 많이 챙겨주려고 했다”라며 “갑자기 국회에서 너무 찾아도 실제로 이뤄진 것은 없다. 관심을 갖겠다고 하다가도 관심이 사라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안타깝다"라고 했다.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확대 법안 통과, 응급의학회 대안 마련 필요
응급의학과는 현재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를 두고 또 하나의 난관에 부딪혀있다. 응급상황에서 매번 의사들이 구급차를 타고 이동할 수 없는데, 응급구조사들이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대원이 제대로 된 병원을 찾는 것도 문제지만 응급구조사의 응급처치가 이뤄지지 않아 병원 전단계의 사망률이 늘 문제돼왔다.
이에 따라 이 교수는 올해 대한응급의료지도의사협의회 이사장을 맡아 '119구급대원 업무 범위 확대 시범사업'에서 전국적으로 의료지도의사를 조직하고 교육, 관리를 총괄하면서 응급구조사의 응급처치 교육에 나섰다.
그러던 중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응급의료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응급구조사 업무법위에 대한 적절성 조사를 5년마다 실시하고 중앙응급의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조정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응급구조사 업무범위는 16년 전인 2003년 2월 개정된 것으로 급속히 발전 중인 응급의학 기술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15가지로 한정하고 있어 응급구조사가 응급환자에게 필요한 응급처치를 시의적절하게 시행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응급처치를 시행한 응급구조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발생해 응급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적절한 처치를 제공하는데 한계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 교수는 “심정지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더라도 그 자체가 불법이 되고 무면허 의료행위가 된다. 환자가 잘못됐을 때 해당 응급구조사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보완한 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부 의사들은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를 반대한다며 많은 비판을 했다. 응급의학회도 원칙적으로 해당 법을 반대해왔다. 응급의학회는 어디까지나 의사의 지도에 한해서만 응급처치가 가능하도록 주장했다”라며 “일부에선 마치 음모론이라며 학회가 법 개정을 추진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응급의학회 내에서의 현실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남을 비방하지 않는 대신 학술적 근거를 갖고 토론을 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할 때”라며 "앞으로도 응급의학과의 안전과 권익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