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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병원 스승과 제자의 'PA' 설전

    "의사 업무 일부 이관" "불법수술 늘 것"

    기사입력시간 2017-05-13 07:06
    최종업데이트 2017-05-17 22:09

    왕규창 교수의 강의가 끝나자 전공의협의회 김현지(붉은 원 안) 부회장이 질의하는 모습. ⓒ메디게이트뉴스

    서울의대 왕규창(신경외과학교실) 교수는 의학계를 이끄는 지도자 중 한명이다. 서울의대 학장, 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 회장,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 대한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2011년에는 일정한 교육을 이수한 전문간호사들을 '의사보조인력'으로 활용하자는 연구보고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의사보조인력은 PA(Physician Assistant)와 유사한 제도인데, 왕 교수는 의사의 업무 일부를 의사보조인력에 이관, 전공의들이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
     
    PA에 반대하고 있는 전공의협의회가 12일 대한병원협회 정기총회 겸 학술세미나에서 왕 교수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왕규창 교수는 이날 '의사보조인력(소위 PA) 제도: 전공의 수련에 독인가, 약인가?'를 주제로 강의했다.
     
    왕 교수는 이날도 일관된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의사를 근접 지원하는 의사보조인력이 필요하다"면서 "(전문)간호사를 교육하고, 역량을 확인한 후 일부 의사 업무를 이관하도록 제도화하고, 이들을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왕 교수는 "전공의 수련교육에 있어 의사보조인력제도 도입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면서 "PA의 음성적 운영을 근절하고, 전공의 업무 경감을 통해 수련교육 여건을 개선하면 약이 되겠지만 전공의 교육기회를 박탈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독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왕 교수의 강의가 끝나자마자 전공의협의회 김현지 부회장이 질문을 던졌다.
     
    김현지 부회장은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병원 내과 레지던트 4년차. 왕규창 교수의 제자이자 지도전문의와 수련의 신분이지만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김 부회장은 "PA와 관련한 강의를 듣고 당황스럽다"면서 "지난해 9월 전공의협의회가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수련병원 66개 중 52개에서 PA가 수술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PA를 합법화하면 불법행위가 만연할 것이다. 대책이 있느냐"고 따졌다.  
     
    이어 김 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의사보조인력제도를 도입하면 국민이 동의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왕규창 교수가 "현 PA는 불법이라고 생각하고, 감독과 단속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다"면서 "의사보조인력제도를 만들고 평가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김현지 부회장은 "수술장에는 CCTV가 설치되지 않아 단속이 어려울 것이다. 의사보조인력제도가 도입되면 단속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했다.
     
    논쟁은 세션이 끝난 이후 플로어로 이어졌다.
     
    왼쪽부터 왕규창 교수, 김현지 부회장, 기동훈 회장. ⓒ메디게이트뉴스

    왕 교수는 김현지 부회장에게 다가와 의사보조인력제도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고, 김현지 부회장은 스승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듯 내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경청했지만 할 말은 다했다.
     
    ⓒ메디게이트뉴스

    전공의협의회 기동훈 회장도 논쟁에 가세했다.

    기동훈 회장은 "PA 실태조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보조인력 정책을 수립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면서 "무엇보다 이런 논의에서 국민이 빠져있다"고 꼬집었다.
     
    기 회장은 "전문간호사 일부를 의사보조인력으로 합법화하면 환자들이 받아야 할 간호서비스가 더 축소될 수 있고, 이들이 의사 업무를 대신할 경우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전문의)가 정착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메디게이트뉴스

    병원간호사회가 최근 발간한 '2016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PA 간호사는 2921명에 달한다. 그것도 매년 증가 추세다. 

    대학병원들이 PA를 늘리는 방식으로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전공의들은 이들이 의사 업무를 잠식하면서 수련 받을 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호스피탈리스트 정착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수련병원들도 할말이 없는 게 아니다.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주80시간 근무제가 의무화되면서 전공의 업무를 분담할 의사를 대폭 늘려야 하지만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한푼도 하지 않고 있어 편법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전공의협의회는 정부가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방식이 아니라 PA 합법화를 통해 의사 부족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이날 자정 무렵 병원협회의 학술 세미나에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는 입장을 긴급히 발표했다.

    전공의협의회는 "환자 안전과 전공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PA와 의사보조인력제도에 찬성할 수 없다"면서 "전공의법 안착과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성공이 우선 순위"라고 대못을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