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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병원 교수 1명, "X레이 진단 못한 의사들 과실"…법원은 감정결과 그대로 인용

    의료계·법조계 모두 감정제도 문제 제기…감정의사 자격기준 부여·복수감정 제도 필요

    기사입력시간 2018-10-31 10:25
    최종업데이트 2018-10-31 13:4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의료계가 횡격막 탈장을 변비로 오진해 의사 3명을 구속한 판결에 핵심 증거로 쓰인 ‘감정’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감정의사 1인이 내린 판단이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31일 법조계와 대한의사협회 등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사건 의무기록과 감정서를 확인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감정인인 모대학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환자가 A병원에 도착했을 때 찍은 X-레이 검사에서부터 이미 이상이 있었다. 이에 대한 진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한 의사들의 과실이 크다”고 밝혔다.
     
    이 감정은 판결에 중요한 증거로 인용됐고 급기야 의사 3명 전원에게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이 선고됐다. 다만 X-레이 검사기록을 확인한 의사들은 자신도 진단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대해 경기도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해당 교수가 과실이 있다고 감정해 3명의 동료의사가 구속됐다”라며 “감정의사는 자신이 선택한 단어에 의해 동료의사가 억울하게 구속되고 수억원의 배상책임을 지게 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도의사회는 “의료계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1인 의사의 감정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라며 “대한의사협회는 감정의사 교육과정을 의무화하고 감정의사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 해당 지역의사회 임원, 법률가, 2인 이상의 감정의사가 포함된 위원회를 통한 감정을 제도화해야 한다”라고 요청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산부인과의사회를 예로 들면 의사 1명이 감정을 하지 않고, 이사진이 전체 회의를 통해 문구 하나하나를 결정한다”라며 “보통 형사사건이라면 의협을 통해 각 의사회나 학회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병원급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는 개별적으로 의뢰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의협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감정은 의협은 통해서가 아닌 법원이 감정인을 선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채택이 끝난 감정결과 반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의료계 한 변호사는 “감정은 증거자료 중 하나일 뿐이다. 이번 사건의 감정결과를 반박한다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될 수 있고 의사들의 구속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라며 "감정인을 선정하는 등의 절차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감정을 무효화하긴 어렵다”고 했다. 
     
    감정, 판결의 핵심 역할…미국은 별도의 감정의사 자격기준 부여

     
    감정이란 법관이 재판을 진행할 때 판단에 도움을 받기 위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하는 증거수집의 한 방법을 말한다. 특별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제3자에게 지식, 경험을 알 수 있는 법칙 또는 해당 법칙을 적용해 의견을 얻는 것이다.
     
    감정은 법원 직권으로 할 수 있고 소송당사자가 법원에 감정을 신청해 이뤄질 수도 있다. 감정이 진행되면 법원은 감정촉탁기관에 소송 당사자들이 제출한 자료 중 감정에 참고가 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한다.
     
    법원은 진료기록 감정을 주로 등록된 감정기관과 감정의사에 맡기고 있다. 법원이 등록된 감정의사에게 감정을 의뢰하거나 대한의사협회나 학회, 의사회 등에 의뢰하는 절차를 거친다.
     
    2014년 11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의료감정의 현황과 제도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대법원에 등록된 신체감정 진료기록 감정기관은 72개 의료기관이며 진료기록 감정의사 2,091명, 신체 감정의사 2187명 등이다.
     
    우리나라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 외에 감정의사에 대한 특별한 자격기준은 없다.
     
    반면 미국은 엄격한 감정의사 자격기준을 필요로 한다. 같은 의협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AMA)는 2004년 12월 의료 전문가 증인(감정인)에 대해 의료사고가 발생하기 5년 이내의 기간동안 피고와 동일한 분야에서 실무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미국은 의료와 장애를 평가하는 의사들의 단일 기준을 만들기 위한 합동 품질보증기구인 의료감정전문의위원회(The American Board of Independent Medical Examiners, ABIME)를 두고 있다. 감정의사는 15시간 이상의 연수교육을 받은 뒤에 시험에 통과해야 하고, 자격을 갖추면 CIME (certified IME)가 될 수 있다. CIME가 진료심의와 장애평가를 담당한다.

    법관, 감정결과 판단 불가…법원이 전문가 단체와 협력, 복수감정 제도 마련해야 
     
    감정의 한계는 사실상 법관에 의해 감정 결과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에 따라 법원도 전문성·공정성을 갖춘 전문가가 감정인으로 선정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이 2016년 2월 펴낸 '전문가 감정 및 전문심리위원 제도의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소송이나 환경소송 등 전문 지식이 중요한 특정 영역에서는 감정인 판단으로 사실상 사건의 결론이 내려진다. 법관이 할 일은 그저 이를 법적인 문장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법관이 분쟁 대상 분야의 판단을 위한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이에 따라 선정된 감정인의 감정결과가 소송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했다.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의료소송에서는 의사가 감정인으로 지정되는데, 감정인은 한쪽 당사자인 병원 측과 간접적으로나마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불리한 감정 결과가 나오면 그렇게 의심하기 마련이다”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평소 사법부와 전문가 집단과의 긴밀한 협력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현재 1인 감정제도를 복수감정 제도로 변경할 필요성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이 임의로 감정인을 선정하진 않고 소송당사자 양측의 동의를 구한다. 다만 의료계의 범위가 좁다 보니 감정을 맡는 과정에서 선후배나 원래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의사감정이 진행될 때 의사들끼리 서로 편들어주고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도 많다”라며 "환자단체야말로 감정제도 개편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