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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출산에 코로나19로 '소아청소년과' 존폐 위기...빅5 병원마저 미달 예상에 전공의 지원 담합 움직임까지

    "미달 병원에서 힘들게 일하느니 한 병원으로 지원 몰자"...수가 가산‧수련기간 단축‧개원가 활성화 등 필요

    기사입력시간 2020-11-12 10:21
    최종업데이트 2020-11-12 19:30

    많은 수련병원에서 내년 소청과 전공의 미달 사태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저출산 문제에 코로나19 장기화 사태가 겹치면서 대표적인 기피과 중 하나인 소아청소년과가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많은 병원, 심지어 빅5병원에조차 소청과 전공의 미달 사태가 예상되자 일부 인턴들은 특정 대형 수련병원으로 단체지원을 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대책에 목매기보다는 수가지원과 더불어 소청과 개원가를 살릴 수 있도록 근본적인 의료체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청과 전공의 기피현상에 일부 인턴들 지원담합 현상까지
     
    12일 메디게이트뉴스 취재 결과, 소청과 지원 기피현상으로 일부 소청과 인턴들의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이 빅5병원마저 미달이 예상되자 빅5병원 중 한 곳으로 지원 담합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턴들이 단체로 지원을 고민하는 이유는 올해 소청과 전공의 대규모 미달 사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해진 인원보다 모집된 전공의 수가 부족할 경우 부족한 일손을 나머지 전공의가 책임져야 한다.

    모병원 전공의는 "소청과 기피 현상이 심각해지자 그나마 소청과를 지원하려는 소신 있는 인턴들이 특정 병원으로 단체지원을 하려고 한다"라며 "나머지 빅5병원도 미달될 수 있을 정도로 소청과 지원이 매우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소청과 위기의 극단적인 현상이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소청과의사회에서 조사해본 결과 지난해 주요거점 지역국립대학에서 굉장히 큰 미달 사태가 발생했고 1명도 지원자를 받지 못한 병원도 많았다”며 “윗 연차가 없게 되면 그만큼 업무로딩이 과중하기 때문에 올해 소청과 전공의 미달 사태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어린아이들을 돌보겠다는 소신에 의해 소청과를 지원하는 이들도 대부분 대형 수련병원에 집중돼 있고 그나마 레지던트 과정에서 다른 과로 옮기는 사례가 많다”고 강조했다.
     
    소청과 전공의 미달, 미리 예견됐다…개원가 상황도 심각
     
    실제로 최근 주요 수련병원별 소청과 전공의 모집 결과를 보면 내년도 소청과 대규모 미달 사태는 어느 정도 예고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9년도(전기)의 경우, 빅5병원 중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정원 13명 중 9명이 지원해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충북대, 전남대, 단국대, 경상대병원 등도 소청과 정원 미달 사태를 맞았다.

    지원자가 한명도 없었던 병원도 많았다. 한양대구리병원과 강원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제주대병원 등은 1명의 소청과 전공의도 지원하지 않았다.
     
    2020년도(전기)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소청과 전공의를 모집한 수련병원 48개소의 평균 경쟁률은 69%에 그쳤다. 빅5병원 중에서도 가톨릭중앙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이 소청과 전공의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그동안 소청과 전공의 지원이 줄어드는 이유로는 지속되는 저출산으로 인한 불안정성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등 늘어나는 의료분쟁에 대한 부담 등이 지목돼왔다. 그러나 올해는 이에 더해 코로나19로 인한 소청과 환자의 급감이 핵심 이유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도 상반기에 비해 2020년도 상반기 병원급 소청과 수진자수는 14.6%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세서건수를 기준으로 하면 28.7%가 줄었다. 소청과는 명세서건수 기준 결핵과에 이어 두번째로 감소율이 많은 과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같은 현상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두드러진다. 소청과의원도 2020년 상반기 수진자수와 명세서건수가 지난해에 비해 각각 17.5%, 36% 감소했다. 의원급에서는 명세서건수 기준 소청과가 2위(-24.5%)인 이비인후과에 비해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환자 감소율을 보였다.
     
    병원급 진료과목별 2020년 및 2019년 상반기 명세서건수와 수진사수 비교. 사진=건강보험심사평가원

    또한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에만 소청과 의원 89개소가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년간 폐업한 전체 의원의 수가 98개소라는 점을 감안할 때 코로나19로 인해 소청과의 미래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대 소청과 의국 출신 개원의 A씨는 “교수로 남는다면 상관없지만 대부분의 병원들은 소청과 수가가 낮은 탓에 수익을 고민하고 있다”며 “그나마 코로나19 이후로 소청과 봉직의와 개원 시장도 얼어붙어 전문의 자격을 따고도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후배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에 위치한 수련병원 소청과 교수 B씨는 “병원으로서도 특단의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상태고 반대로 인턴들을 욕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하루 빨리 악재가 겹친 소청과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기 대책보단 제대로 된 수련‧개원 환경 마련하기 위해 방안 찾아야
     
    현재 이 같은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소청과 전공의 지원을 늘릴 수 있는 대책과 함께 기피과 지원 전공의들도 제대로 수련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소아청소년학회 은백린 이사장은 “수가지원 등 단편적 대책으론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라며 “소아가산 개편 등 수가체계 정상화와 더불어 제대로 수련받을 수 있는 환경, 철저히 망가진 소청과 개원가를 살릴 수 있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 이사장은 “장기적으론 현재의 급성기질환 치료 중심의 진료체계에서 지역사회중심 만성질환관리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학회에서도 내‧외과처럼 수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이는 방안 등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도 “적어도 현재 소청과 관련 수가를 3배 이상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례로 우리보다 일찍 저출산 문제를 고민했던 일본의 경우 높은 수준의 수가 지원이 이뤄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