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멀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AI)이 의료 현장을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13일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DHP 2025’에서 발표에 나선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 전문가들은 AI를 중심으로 한 의료 혁신이 진료·연구·산업 생태계 전반을 재정의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DHP 최윤섭 대표는 이날 행사의 키워드로 ‘AI 네이티브 메디슨(AI Native Medicine)’이란 단어를 꼽았다. 이는 AI가 기본 전제처럼 당연하게 활용되는 의료 시스템을 뜻한다.
의료 분야서도 AI가 기본 전제될 것…의사 능가·대체하는 AI도 등장
최 대표는 ‘AI 네이티브 메디슨’의 구체적인 5가지 징후로 ▲슈퍼 휴먼 AI닥터 ▲멀티 에이전트 의료 AI ▲자율연구 AI ▲AI 가상 세포 ▲자율 수술 로봇 등을 제시했다. 인간 의사의 능력을 뛰어넘는 AI들이 협업하면서 진료는 물론이고 연구, 수술까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해낸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 같은 AI 네이티브 메디슨의 시대가 올 경우 의료∙진료∙의학 분야가 크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AI를 통해) 의사의 인지적, 물리적 역량이 크게 증강되고 효율과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며 “의사를 대체하는 AI가 증가하고,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의료 AI도 등장할 거다. AI가 의료에 수단에 그치지 않고, 의료의 주체이자 인터페이스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이어 “새로운 의학적 발견 및 임상 연구 결과가 쏟아지며 임상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AI 도입에 따른 의료인의 고숙련화, 탈숙련화, 미숙련화 고민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AI 네이티브 의료인을 위해 의대 교육과 수련 방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AI 네이티브 메디슨을 위한 규제와 보험의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AGI(범용 인공지능) 구현 이후에는 현재의 규제 프레임워크를 적용할 수 없는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의사의 판단과 다르지만 더 정확한 의료기기,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의료기기, 사용 목적을 특정할 수 없거나 변화하는 의료기기를 어떻게 평가할지 등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행위별 수가제는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모든 보험 기준이 의사의 행위가 기준인데, 앞으론 현행 기준으로 정의할 수 없는 AI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AI가 자율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때 행위 주체, 지불 대상 등도 어떻게 변화할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AI 기반 자율형 수술 로봇 주목…우리나라 가진 강점 살려야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정규환 교수는 “AI가 인식을 시작으로 추론, 행동 영역까지 적용되고 있다”며 의료 AI 역시 이 같은 흐름에 따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의료 AI는 초기에 주어진 의료 영상에서 질환을 찾아내는 ‘인식’ 기능이 조명됐고, 이후 ‘추론’을 통해 복잡한 문제에 대해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는 모델들이 등장했다. 정 교수는 향후에는 인식과 추론을 통해 내려진 결론을 실제 현장에서 물리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AI의 시대가 올 거라고 내다봤다. 대표적인 것이 자율형 수술 로봇이다.
정 교수는 “최근에 수술 로봇이 돼지 대상 담낭 절제술을 완전히 자율적으로 수행하면서 화제가 됐다”며 “이를 시작으로 향후 더 복잡한 수술에도 로봇이 적용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 대상의) 완전 자율형 수술은 아직 언급하기 이르지만, 덜 위험한 수술 보조 로봇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며 “(자율형 수술 로봇에 대한) 임상 현장에서 수요는 크다. 어렵고 다양한 수술이 많이 이뤄지는 서울과 그렇지 못한 지방의 격차가 점차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한국은 의료는 물론이고, 로봇, 컴퓨터 비전, AI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우수한 나라”라며 “이 분야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공감대 속에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제언했다.
루닛 "바이오메디컬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할 것"
루닛 유동근 이사는 루닛이 향후 ‘바이오메디컬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간 회사가 집중해 온 의료 영상∙병리 분야 파운데이션 모델을 넘어 의과학 전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유 이사는 “의과학 분야에는 영상 외에도 분자, 단백질, 오믹스, 약, 임상 지식, EMR 등 다양한 도메인이 있고, 각 분야에 특화된 예측형 AI 모델들이 있다”며 “루닛은 이처럼 의과학 모든 주기에 있는 여러 툴을 하나로 엮은 에이전틱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동안은 각 분야의 지식 체계가 단절돼 있었다. 표준도 다르고 같은 개념에 대한 용어, 표현 방식도 다르다”며 “그런 지식을 하나의 언어 모델이 학습할 수 있게 표준화할 수 있을지가 이 시도에 핵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이사는 “이 에이전트 시스템은 의과학 연구개발, 임상 연구 등에서 가설 생성과 검증을 도와줄 수 있고, 병원 현장에서 임상 의사결정을 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까운 미래에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의 에이전틱 시스템이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며 “각 도메인에 있는 로우 데이터를 통합 학습하면 증거 기반의 도움뿐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예측까지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