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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후보 "모가 나도 찌르지 않고 빛이 나도 눈부시지 않게…더 큰 미래를 위해 화합과 상생"

[의협회장 후보자가 살아온 삶⑥] 영·호남 결혼해도 부모님 반대 안해...작은 성과가 의료계 봉사 계기

기사입력시간 21-02-23 05:18
최종업데이트 21-02-2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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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기호 6번 김동석 후보
제41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온 이들일까. 어린시절 꿈은 무엇이었고 왜 의사가 됐을까. 의사로서의 삶에서 언제 가장 보람있고 또 힘들었을까. 그리고 어떤 계기로 의협회장 출마까지 결심하게 됐을까. 메디게이트뉴스는 후보자 6명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성장배경과 가치관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①임현택 후보 "부당함 해결에 말보단 행동, 권력자에 더 강하게"
②유태욱 후보  "세상을 더 크고 넓게 바라보는 의사”
③이필수 후보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24시간 열려있는 리더"
④박홍준 후보 "환자뿐만 아니라 상처 입은 동료 의사들 치료하고파"
⑤이동욱 후보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의료계 바꿀 것"
⑥김동석 후보 "모가 나도 찌르지 않고 빛이 나도 눈부시지 않게"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료계를 위해 발 벗고 나선지 15년, 불투명한 미래가 걸음을 멈추게 할 때도 많지만 '의사 김동석'은 오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제는 더 큰 희망의 메시지를 위해 그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제41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기호 6번 김동석 후보는 봉사와 화합의 정신을 항상 마음 한켠에 넣어두고 산다. 그는 검찰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남을 돕고 봉사하는 삶에 익숙했다. 어려운 이웃을 살리고 헌신하고 싶은 마음에 초등학교 이후 줄곧 의사라는 꿈을 꿨다. 

의사가 된 후, 처음 환자의 사망을 목격하고 그의 인생은 많이 달라졌다. 김 후보가 인턴 당시 심한 화상를 입은 아이가 입원했다. 소독약을 바르고 드레싱을 마쳤지만 당시 그가 아이를 위해 물리적으로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붕대를 칭칭 감고 있던 아이가 그의 눈에 계속 밟혔다.

얼마 뒤 일요일에 당직을 서고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심상치 않은 콜이 들어왔다. 화상환자가 위급한 상황이었고 결국 김 후보는 그날 첫 사망 환자를 경험했다. 그는 "화상을 입은 아이 환자를 잃었던 경험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며 "그 사건 이후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사명감과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김 후보는 화합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다. 이런 부분은 그의 부모님을 닮았다. 그가 결혼할 당시만해도 선거과열로 인해 영호남 지역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항상 지역감정과 같은 편견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더 큰 미래를 위한 화합과 상생에서 멀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전라도 출신인 김 후보가 경상도 아내를 데리고 왔을 때도 그의 부모님은 사람 자체를 봐주셨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그때는 영호남 간에 차 기름도 안넣어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 편견과 갈등이 많았을 때였다. 부모님의 올곧은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다"며 "편견없이 화합을 중요시 했던 성격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서울시의사회 의무이사를 시작으로 그는 의사회 회무에 입문했다. 시작은 우연한 계기였지만 일을 하다보니 합리적인 방향과 다른 꽉 막힌 규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불합리한 현실 앞에 대충 일할 순 없었다. 그의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당시는 소견서와 진단서 개념이 혼동되던 시기였는데 이 때문에 보험회사에서 비용이 드는 진단서 대신 소견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에 김 후보는 직접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을 요청, 소견서라도 보험회사 요청이 있다면 진단서와 마찬가지로 비용 청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했다. 

당시 사건은 김 후보가 본격적으로 의료계를 위해 봉사를 시작하게 된 시발점이 됐다. 그는 "관례처럼 내려오던 부당한 일들이 나로 인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스스로 노력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해 맡은 회무에 더 충실하게 됐다. 고통받는 동료 회원들을 위해 더 봉사하게 됐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김 후보는 '모가 났어도 남을 찌르지 않고 빛이 나되 눈부시게 하지 말라'는 모토로 살고 있다. 자유의지에 따라 다양한 생각, 여러가지 일들을 수행할 순 있지만 그로 인해 부정적 결과를 도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러나 현재 의협은 회원들에게도, 국민에게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정부 여당에게도 정책의 파트너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즉 과정이야 평가가 갈릴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흡족하지 못한 성적표가 나왔기 때문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의협이 자꾸 정치 편향적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 때문에 신뢰도 잃고 정책 전문가로서 힘도 잃었다"며 "화합과 상생을 중시하는 만큼 회원과 국민, 정부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의협을 꼭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관점에서 그는 리더가 항상 신뢰를 기반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리더는 회원들이 믿고 따라가기 힘들 뿐아니라 화합을 이끌어내기도 불안하다는 취지다. 

그는 최근 '시 읽는 CEO'라는 도서를 읽고 있다고 소개했다. 20여편의 시를 통해 배우는 지혜에서 경쟁보다 창의적인 사고의 방법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성공한 세계적 CEO들은 이 때문에 시집과 철학, 역사서를 선호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는 "책을 읽으며 비관적인 생각보단 세상을 바라보는 희망적인 메시지들에서 힘을 많이 얻었다"며 "많은 책을 읽었지만 작은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이는 고등학교 은사인 서재생 선생님과 노원을지병원 홍서유 교수다. 특히 그는 같은 산부인과 의사인 홍 교수의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철두철미한 모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의 신념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항상 걱정이 많다. 이런 고민 때문에 현재 맡고 있는 회장직이 끝나면 의료계 회무를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김 후보는 "가까운 지인들은 알겠지만 의료계 일이 굉장히 힘들고 개인적으로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 그림과 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개인적 욕망을 포기하고 회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라며 "그러나 너무나도 망가진 의협의 모습에서 나라도 나서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족에겐 항상 미안하지만 또 나를 적극 응원해주는 모습에서 항상 고맙고 감동을 받는다. 가족은 내 삶의 원동력이고 항상 힘든 나를 치유해주는 의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