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우승 인턴기자·울산의대 본3] 최근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으로 대변되는 지방 필수 의료의 붕괴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뼈아픈 현실이다. 현 정부는 이 위기를 타개할 방안으로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을 내세웠다. 국가가 전액 세금으로 의대생을 길러내고, 졸업 후 10~15년간 의료 취약지나 필수 의료 분야에서 강제로 복무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지방 필수 의료를 살리려는 정부의 절박한 심정과 취지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미래의 의료 현장을 책임질 의학도의 관점에서 이 법안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공공의대법은 필수 의료 붕괴의 근본적 원인을 철저히 외면한 채 ‘의사 수’라는 표면적 지표만 억지로 채워 넣으려는 근시안적 조치에 불과하다. 공공의대법은 학생의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하고 진로를 획일화할 뿐만 아니라, 기존 의료계에서 이미 알려진 모순점들을 다시 반복하는 무책임한 정책 실험이다.
공공의대법이 왜 지역 의료를 살리는 해결책이 될 수 없는지를 기본권 문제, 설립 자체의 현실적 한계, 그리고 제도의 실효성 측면에서 짚어보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공공의대법은 학생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며, 임상 의사로의 획일화된 루트만을 강요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결정하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자신의 적성을 완벽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적성이 맞지 않음을 깨닫거나 학업적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음에도 이를 ‘지원금 환수’라는 징벌적 제재로 묶어두는 것은 국가의 무리한 접근이다.
나아가 의학 교육 과정을 마친 이후 10년에서 15년에 달하는 긴 세월의 거주지와 직업을 국가에 담보 잡히는 것은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거주 및 이전의 자유’를 심하게 침해한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학업 중 연구에 뜻을 품고 ‘의사과학자’로 성장하거나 의료 AI, 바이오 헬스케어 스타트업 등 국가 경쟁력에 기여할 인재로 나아갈 가능성마저 원천 봉쇄당한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삶의 기반을 다져나가야 할 20대와 30대의 황금기를 ‘국가가 지정한 특정 지역’에서의 ‘임상 진료’에만 강제로 묶어두는 것은 헌법적 기본권을 훼손하는 것을 넘어, 미래 의학 발전의 싹을 자르는 행위다.
둘째, 공공의대는 설립하는 것 자체에 현실적인 한계가 뚜렷하다. 급조된 공공의대는 제대로 된 교수진과 수련 병원 인프라를 갖추기 어려우며, 이는 치명적인 교육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현대 의학 교육을 위해서는 모든 임상 분과를 아우르는 전문 교수진이 필수적인데, 과연 지방에 위치한 신설 공공의대가 이를 어떻게 유인할 것인지 대책이 부족하다.
일각에서는 국립중앙의료원 등의 공공의료진을 활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훌륭한 임상 역량과는 별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지도해야 하는 ‘의학 교육자’로서의 시스템적 지원과 환경이 온전히 보장돼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기존 의과대학들이 오랜 시간 구축해 온 고도화된 연구 시설마저 부재한 실정이다.
이처럼 교육 및 연구에 특화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단순히 진료 현장만을 경험하게 한다면, 학생들에게 의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사고력’과 ‘비판적 검토 능력’을 길러주기 어렵다. 체계적인 학술 연구 및 수련 인프라가 부족한 환경에서 양성된 인력이 과연 현대 의학이 요구하는 고도화된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
셋째,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제도를 시행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만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공공의대는 기존 병폐인 ‘필수 의료 기피 현상’과 ‘낙후 지역 기피 현상’을 내부에서 그대로 답습해 정책적 실효성을 상실할 것이다. 공공의대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학생들은 결국 결국 힘든 필수 의료를 기피하고, 상대적으로 삶의 질이 보장되는 분과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의무 복무 기관을 배정받는 과정에서도 조금이라도 업무 강도가 낮고 인프라가 나은 ‘더 편한 지역’으로 가기 위한 눈치싸움이 똑같이 벌어질 것이다. 국가가 그토록 살리고자 했던 필수 의료 분과와 의료 환경이 가장 열악한 취약지역은 또다시 소외되고 무시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공공의대의 인기과를 수련하고 가장 복무가 편한 지역을 선택해 10년간 시간을 때우듯 채워낸 인력들은 의무 복무가 끝나는 즉시 수도권 로컬 시장으로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결국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하고도 지역 사회는 10년마다 떠날 날만 기다리는 의사들로만 채워지는 구조를 감내해야 한다.
지방 환자들 역시 단순히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 아니라 ‘인프라가 뛰어나고 실력 있는 병원’을 원한다. 억지로 의사를 지방 곳곳으로 분산시킬 것이 아니라, 환자와 훌륭한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모여들 수 있는 지역 특화 거점 의료원을 구축해야 한다. 일본의 최고 심혈관 전문 병원인 ‘국립순환기병연구센터(NCVC)’가 도쿄가 아닌 오사카 권역에 위치하여 전국의 엘리트 의사와 중증 환자를 흡수하는 것이 훌륭한 예시이다.
우리나라도 지역별로 뇌혈관, 희귀암 등 특정 분야에 압도적인 인프라를 갖춘 특화 센터를 육성해야 한다. 나아가 최고 수준의 의료진이 기꺼이 지방으로 향할 수 있도록 특화 센터 설립에 걸맞은 강력하고 본질적인 유인책이 동반돼야 한다. 고위험, 고난도 진료에 대한 파격적인 수가 인상이 이뤄져야 하며, 의사들이 진료에만 매몰되지 않고 학자로서의 성취를 이어갈 수 있도록 고도화된 연구 시설이 뒷받침돼야 한다.
공공의대법은 지방 의료 붕괴라는 구조적 모순에 ‘10년간 의무복무’라는 미봉책으로 대응하는 격이다. 국가가 진정으로 지역 의료를 살리고자 한다면 헌법적 가치와 의학 교육의 질을 훼손하는 정책이 아니라, 압도적인 인프라를 갖춘 특화 병원을 설립하고 의료인력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정당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