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HLB그룹의 미국 세포치료제 개발사 베리스모 테라퓨틱스가 고형암 CAR-T 시장 공략 전략으로 NK세포 기반 멀티체인(multi-chain) CAR 플랫폼 'KIR-CAR'을 제시했다. 기존 CAR-T의 한계로 꼽히는 T세포 탈진(T-cell exhaustion)을 줄여 고형암에서도 장기 지속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HLB그룹 바이오링크팀 이지환 상무는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상용화된 대부분의 CAR-T는 단일 체인(single-chain) 구조 기반"이라며 "베리스모는 NK세포의 자연 면역수용체(KIR) 구조를 차용한 KIR-CAR 플랫폼으로 차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리스모는 HLB그룹 계열사 HLB이노베이션의 자회사로, HLB그룹은 베리스모를 통해 차세대 세포치료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기존 항암제 중심 포트폴리오를 세포치료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CAR-T는 환자의 T세포를 채취한 뒤 유전자를 조작해 암세포를 인식하도록 만든 세포치료제다. 2017년 노바티스의 '킴리아'가 처음 허가를 받으며 혈액암 분야에서 상업화에 성공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허가된 CAR-T 치료제는 총 7개다.
현재 CAR-T는 주로 혈액암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고형암에서는 아직 뚜렷한 상업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상무는 그 원인 중 하나로 기존 단일 체인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토닉 시그널링(tonic signaling)'을 지목했다. 토닉 시그널링은 항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T세포가 약하게 활성화되는 현상으로, 실제 T세포가 종양에 도달하기 전부터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상무는 "자동차 시동을 계속 켜둔 상태로 연료를 소모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 T세포가 먼저 지쳐버리는 구조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CAR-T 한계 넘는다…"항원 있을 때만 작동하는 KIR-CAR"
베리스모의 KIR-CAR는 NK세포의 자연 면역수용체 구조를 기반으로 한 멀티체인 플랫폼이다. 항원 인식 부위인 KIR2DS2와 신호 전달 부위인 DAP12가 분리돼 있다가 암세포 표적을 만났을 때 결합해 활성화되는 방식이다.
이 상무는 이를 'natural on/off switch' 개념으로 설명했다. 기존 CAR-T가 항원 유무와 관계없이 활성화 신호가 새어 나갈 수 있다면, KIR-CAR는 항원이 있을 때만 작동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이 상무는 KIR-CAR가 NK세포 기반 신호전달 구조와 T세포의 항암 기능을 결합한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CAR-T에서 발생하는 만성적 활성화와 T세포 탈진 문제를 개선하고, T세포 기능 유지와 장기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이 상무는 고형암 CAR-T의 주요 난제로 면역억제적 종양미세환경(TME), 항원 이질성과 항원 회피, 정상조직 독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온타깃·오프튜머(on-target/off-tumor) 독성, 그리고 T세포 탈진을 꼽았다.
그는 "CAR-T가 고형암 부위까지 가지 못하는지, 가더라도 항원을 인식하지 못하는지, 또는 도달한 뒤 기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지가 고형암 CAR-T 분야의 핵심 과제였다"며 "최근 연구에서는 CAR-T가 종양에 도달해 초기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지속성 문제가 재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베리스모는 메소텔린(MSLN) 양성 고형암을 대상으로 한 'SynKIR-110' 임상 1상(STAR-101)과 CD19 표적 혈액암 대상 'SynKIR-310' 임상 1상을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SynKIR-110은 난소암, 중피종, 담관암 등을 대상으로 개발 중이다.
이 외에도 SynKIR-210과 SynKIR-410 등 후속 파이프라인도 전임상 단계에서 개발 중이며, KIR-CAR 플랫폼을 기반으로 고형암과 혈액암을 포함한 다양한 적응증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 상무는 "기존 CAR-T는 사실상 혈액암 중심 시장에서 경쟁해 왔지만, 고형암은 아직 승인 사례가 거의 없는 미개척 영역"이라며 "고형암 CAR-T를 개발하던 회사도 상당수 사라진 상황이라 사실상 경쟁자가 많지 않은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CAR-T 개발사들은 기존 구조에서 일부 변형을 주는 방식으로 접근해 왔지만, 베리스모는 완전히 다른 플랫폼 구조로 접근하고 있다"며 "현재 독성 없이 용량 증량을 진행 중이라는 점도 차별성 중 하나"다. 고형암에서 의미 있는 효과가 확인된다면 빅파마들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KIR-CAR, 낮은 용량으로 더 오래…독성 줄이고 적응증 확장 가능"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도널드 시걸 교수는 KIR-CAR의 확장 가능성을 강조했다. 시걸 교수는 베리스모 공동창업자 중 한 명으로, 항체와 세포치료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KIR-CAR 플랫폼 개발에 참여했다.
시걸 교수는 "베리스모의 기술은 CAR-T 세포가 처음부터 탈진되는 경향을 줄이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든다"며 "이는 암뿐 아니라 다른 적용 분야에서도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낮은 용량 투여 가능성에 주목했다. 시걸 교수는 "세포가 환자에게 투여되기 전부터 탈진돼 있지 않다면 반드시 많은 세포를 투여할 필요가 없다"며 "더 적은 세포로도 효과를 낼 수 있고, 독성 발생 가능성도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KIR-CAR가 장기 지속성이 중요한 암 치료뿐 아니라, 지속성이 반드시 핵심이 아닌 질환에서도 유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걸 교수는 "장기 지속성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낮은 용량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KIR-CAR 기술의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CAR-T의 높은 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치료법과의 비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골수이식도 입원과 여러 치료 절차를 포함하면 CAR-T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며 "자가면역질환이나 혈우병처럼 기존 치료비가 높은 질환에서는 CAR-T 비용을 현재 치료 옵션과 함께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라 존슨 CSO는 혈우병처럼 기존 치료 비용이 높은 질환에서는 단회성 치료 가능성이 비용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에 시걸 교수는 "일부 혈우병 환자는 응고인자에 대한 면역반응이 생겨 치료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런 경우에는 단순 비용을 넘어 치료 가능성 자체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CAR-T는 몸 안에서 원하지 않는 것을 제거하는 기술"이라며 "처음에는 암 치료 기술로 여겨졌지만 자가면역질환, 심장섬유화 등 다양한 질환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빅파마 기술이전·파트너링 예고…"전임상 발표부터 관심 증가, 개념입증 이후 본격 추진"
로라 존슨 CSO는 베리스모의 개발 전략에 대한 질의에 "타깃 발굴부터 중개연구, first-in-human 임상, 임상적 개념입증까지가 회사의 핵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베리스모는 매우 혁신적이고 민첩한 디스커버리 바이오텍"이라며 "후기 임상 개발과 상업화 단계에서는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력을 고려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KIR-CAR 기술이전 전략에 대한 질의에는 이지환 상무가 "회사의 가장 본질적인 에셋은 KIR-CAR 플랫폼"이라며 플랫폼 전체 이전은 사실상 회사 핵심을 넘기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개별 파이프라인에 대해서는 공동개발이나 라이선스아웃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부연했다.
HLB그룹 차원에서도 베리스모는 차세대 항암 파이프라인 확보 전략의 한 축으로 평가된다. 이 상무는 "그룹 차원에서는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검토하고 있다"며 "좋은 파이프라인이 확보되면 그동안 축적한 임상 개발, 글로벌 개발, 상업화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CAR-T는 전체 암 시장의 일부인 혈액암 중심으로 경쟁해 왔지만, 고형암은 훨씬 큰 시장"이라며 "베리스모의 KIR-CAR가 고형암에서 효과를 확인한다면 그룹 차원에서도 중요한 에셋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상무는 빅파마와의 기술이전 및 파트너십 논의 진행에 대해 “전임상 데이터를 발표했을 때부터 빅파마의 관심은 있었다”며 “다만 실제 사람 몸에서 작동하는지, 임상적으로 유망한 데이터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단계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AACR 발표는 KIR-CAR가 사람 몸에서도 작동 가능성을 보일 수 있다는 초기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미국에서는 관련 접촉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