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2013년 11월 9일부터 방영 시작한 40부작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놓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오은수 역의 이지아와 오현수 역의 엄지원 때문에 더 드라마에 몰두했다. 2011년경 엄지원은 필자가 '1002호 아저씨'로 바로 옆 집에 살았던 이웃이다. 이지아는 친구의 딸이다. 친구의 딸과 이웃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주말마다 놓칠 수가 없었다. 평범한 집안의 두 자매를 통해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부모세대와는 또 다른 결혼관과 달라진 결혼의 의미, 나아가 가족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만든 드라마였다.
이혼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여자들이라면 다음 결혼에 관심이 없는데 왜 오은수는 세 번 결혼하는 것을 결정했을까? 가정과 교회는 신이 만들어준 단지 두 개의 기관이다. 평범하지만 좋은 부모를 통해 가정의 중요성을 몸에 익혔기에 오은수는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됐다.
왜 필자는 세 번 떨어지는 남자가 됐을까? 첫 직장 쉐링프라우(S-P)부터 한국에 와서도 제약사에서만 근무해 신약개발사업을 몸에 배웠기에 그것밖에 할 줄 몰랐다. 내가 꼭 사업단장이 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개발사업에 관여하고 싶어 첫 도전에서 물러나지 않고 계속 도전한 것이다.
2011년 3월 29일 코리아나호텔에서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Korea Drug Development Fund, KDDF) 공청회 및 사업단장 공모 설명회'가 열렸다. 필자도 참석했다. 여러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삼양사에 재직중 S-P에 라이센싱 차 방문해 만났던 이동호 박사, Society of Biomedical Research라는 단체를 워싱턴에 만들어 한국-미국 제약사 신약개발 종사자들 모임에서 몇 번 만났던 정재준 박사가 그날 주 강연자였다.
패널토론의 좌장은 추진위원장 권영근 교수를 포함한 학계의 방영주, 김성훈 교수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묵현상 메디프론 대표, 조정우 SK 연구소장(현 SK 바이오팜 사장), 김성수 한국화학연구원 선임본부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특별히 사업을 돕는 3개 부처 과장도 포함됐다. 지식경제부 강명수 과장, 교육과학기술부 이은영 과장, 보건복지부 정은경 과장(현 질병관리청장)이었다. 산-학-연-관의 쟁쟁한 패널이다.
KDDF사업은 '국내 신약개발 사업현황 및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이다. 당시 연구주체간 협력 부족과 R&D 프로세스의 비효율을 시정하기 위해 신약개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9년간의 장기적인 사업이다. 역량, 경험, 투자 모두 글로벌 기준에 비교해 미흡하지만 당시 국산 신약 18종의 경험을 가졌기에 대한민국이 신약개발 가능한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은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상시지원 시스템 부재로 신약연구개발 재원의 지속적인 투자가 미흡했기에 긴 호흡의 투자로만 가능한 신약개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국가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역사적인 사업이었다.
사업단장을 중심으로 운영을 하지만 사업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투자심의위원회가 신약개발프로젝트 투자의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사업이었다. 경직적인 예산집행제도로 인한 무분별한 R&D재원의 투입을 예방하고 투자형 신약개발 사업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사업예산의 집행잔액을 30%까지 이월 사용가능한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사업단장 신청 자격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의관리등에의한규정' 제27조에 의거 참여제한을 받지 않는 자 및 '국가공무원법' 제33조 각호의 1에 해당하지 않는자 ▲글로벌 신약개발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을 보유한자 ▲글로벌 감각, 미래지향적 비전과 비즈니스 마인드 등 경영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자였다. 사업단장 근무조건 중에 첫 임기는 초기 3년이지만, 평가에 따라 2년 단위 연임 가능했다. 연봉은 3억원 내외이며 성과급까지 별도로 지급하고 해외거주자의 경우 이주비 지원 가능하다고 명시됐다. 외국인도 지원 가능한 정말 듣보잡(job)이었다.
2011년 4월 29일이 신청 접수 마감이었다. 당연히 지원했다. 신청 요건에 대한 결격사유 및 제출 자료의 미비를 점검한 1차 평가에 필자도 합격했다. 5월 31일 구두 발표 2차 평가가 진행됐다. 4명이 선정돼 발표했다. 발표 전 대기실에서 만나 서로 전공이 다르니 누가 되더라도 서로 돕자고 의견을 모았다. 필자가 발표 1번 타자가 됐다.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가 제목이었다. 중세 연금술사들의 좌우명이다. 연금술사들은 화학자로 결국 약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말이 논리적으로 모순이지만, 서두르지만 전후좌우를 따져보면서 서두르라는 말이다. 신약개발은 천천히 빨랑빨랑 가야 하는 그런 것이기에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
초대단장으로 이동호 박사가 결정되자 2차 평가 때 나눴던 약속대로 KDDF의 운영에 관여하게 됐다. 현 차약학대학의 김애리 교수는 사업단에 속해 초대 연구개발본부장을 맡았고 필자는 투자심의위원회의 일원으로 2년 동안 투자 결정하는데 도움을 드렸다. 아직도 세 사람은 언제나 반가운 동료이며 만나면 즐거운 사이로 지낸다.
2014년 10월 23일 KDDF 2기 단장 응모 필자의 발표 제목은 'BACK to BASIC'이었다. 2016년 11월 15일 KDDF 3기 단장 응모의 발표 제목은 '답답 답은 Back to BASIC'이었다. 얼마나 정부주도의 신약개발사업이 답답했으면 '답답 답'을 앞에 붙였다. "요새처럼 나라 안팎으로 답답할 때 답은 Back to Basic입니다"가 첫 마디였다. 아마 마음 속에는 'You Stupid!'가 존재했다.
"신약개발은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신약개발은 과학(Science)입니다." 경쟁 후보가 라이센싱 아웃과 비지니스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에 의도적인 외침이었다. "현재 시점의 정보를 가지고 15년 후에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흘러가나 트렌드(Trend)를 잘 읽어내야 합니다." 지금도 필자가 세미나 때 사용하는 영화 'Westside Story'의 시작 부분을 보이면서 "답은 1961년 뉴욕 맨하튼 남부 상공에서 찍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신약개발에 성공하려면 맨하튼 남부가 점점으로 보일 때 미리 예측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2018년 6월 2일 메디게이트뉴스에 '질병 타깃으로 부상한 미토콘드리아'라는 제목으로 첫 칼럼이 게재됐다. 내가 할 줄 아는 신약개발에 대해 동료와 후배들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매 금요일 오전에 게시되는 것에 맞춰 매주 하나씩 올렸다.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존경하는 이O규 대표는 "저도 한 달에 한번 써보았는데 그것도 무척 힘들던데 어떻게 매주 하나씩 쓰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칼럼을 모아 2019년 3월 29일 책이 발간됐다. 제목은 물론 KDDF 2기, 3기에서 발표한 '신약개발 BACK to BASIC'이었다. 그러나 그 앞에 '사람을 살리는'이 들어가 신약개발의 목적을 분명히 포함시켰다. 그 해 5월 22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참석자들에게 같은 제목으로 비록 8분이지만 강의할 기회까지 가졌다.
2, 3기 심사위원을 담당한 후배가 “선배님은 경험도 능력도 출중하시지만 관(官)과의 연결이 가장 약하신 게 약점입니다.”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들린다. 신랑의 들러리(Best Man)는 결혼식과 이어진 파티에서 신랑을 도와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기에 ‘세 번 떨어진 남자’보다 파티를 즐기는 ‘세 번 들러리 선 남자’가 맞을 것 같다. 다만 필자는 오늘도 대한민국이 글로벌 신약개발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 신약개발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이 칼럼을 쓴다. 더 업그레이드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2021년 1월 1일에도 칼럼은 계속될 것이다.
두번째 KDDF가 2021년부터 GlobalDDF로 출범한다고 한다. 신약개발 스타트업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사업이다. 지난 9년간 대한민국 신약개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보다 GDDF가 7배 이상 더 좋은 역할을 감당해줬으면 하는 진정한 바람이다. 업계 동료들이 농담조로 "선배님 한 번 더 지원하시지요?"라고 물었다. '네 번 떨어지는 남자'는 가능하지 않다. '펜트하우스'에서 열연하는 내 친구의 딸 이지아가 '네 번 결혼하는 여자'에 출연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