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약가와 유통, 공급망 전반에 걸친 의약품 정책 손질에 나서면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도 미국 진출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서동철 럿커스 뉴저지주립대 겸임교수 겸 중앙대 명예교수는 23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미국 트럼프 2기 의약품 정책변화와 국내 기업의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이날 서 교수는 최근 미국 의약품 정책 변화를 단순한 약가 인하 정책이 아니라 보험, 유통, 생산, 연구개발, 안보 등이 결한된 구조 변화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미국 의약품 시장의 큰 변화 중 하나로 공보험 비중 확대를 지목하며 "현재 미국은 약값 지불의 50% 이상을 정부가 부담하는 공보험 체제에 가까워지고 있다. 고령화로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정부의 약가 개입이 불가피한 구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는 미국 정부가 약가 협상에 직접 개입하는 계기가 된 제도로 평가된다. 서 교수는 "정부가 제약사와 직접 가격 협상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는 점 자체가 시장 구조 변화를 의미한다. 향후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경우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IRA 폐기보다 적용 확대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최혜국 대우(MFN) 약가 정책에 대해서는 상징성은 크지만, 실제 영향이 예상보다 제한적일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내 생산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와 허가·심사 우대 등이 기업 전략에 더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 교수는 "MFN이라는 정책 자체보다 실제 시장에서 어떤 가격이 적용되고 어떤 조건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이미 다양한 리베이트와 할인 구조가 존재하는 만큼 단순한 가격 인하만으로 시장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의 역할을 강조하며, PBM 규제 역시 단순히 제약사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서 교수는 "미국에서는 어떤 약이 처방목록에 포함되느냐에 따라 시장 접근성이 크게 달라진다. 제품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고 보험과 유통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규제가 강화되면 PBM이 새로운 방식으로 조건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시장 구조 변화의 방향을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 교수는 미국 내 생산 확대 정책과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국내 기업 전략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국내 기업이 국내 생산 후 수출하는 방식에만 의존할 경우 경쟁력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미국은 의약품 공급망의 해외 의존도를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있다. 생산 거점의 위치 자체가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가격 전략과 생산 전략, 연구개발 전략을 따로 볼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각 요소를 함께 설계하는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서 교수는 미국 시장에서 먼저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미국에서 먼저 출시해 기준 가격을 선점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별 가격과 출시 순서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파이프라인을 재배치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기업 유형별 전략도 제시했다. 신약개발 기업에는 혁신 치료제 중심 전략과 기술수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제네릭 기업에는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 또는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공급망 대응을 강조했으며, 바이오시밀러 기업에는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시장 확대 전략과 PBM 협상 역량 강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CDMO 기업에는 미국 내 생산 기반 확대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서 교수는 미국 시장 접근 방식 역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기술수출, 공동판매, 유통 계약, 인수합병 등 다양한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 환자 접근성과 치료 성과를 반영하는 새로운 계약 방식도 점차 중요해질 것"이라며 "앞으로 미국 시장에서는 기술력만으로 경쟁하기 어렵다"며 "가격과 공급망, 유통과 계약 전략까지 함께 설계하는 통합 전략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