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교도소 담장을 걷고 있는 중증의료 의사들
지난 수개월간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이어져 왔다.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가 계속돼 갈등은 아직 완전히 봉합되지 않고 있다.
이 첨예한 갈등에서 서로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적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필수의료·중증의료’를 살리자는 것이다.
이 같은 목적을 두고 정부가 추진하는 방법이 미봉책에 지나지 않아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진행 과정조차 지나치게 섣부르고 급진적이기 때문에 의료계가 반발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9월 10일 한 소화기내과 교수가 형사 1심에서 법정구속됐다.
지난 2016년 뇌경색이 있는 노인 환자에게 대장암이 의심돼 대장 내시경을 하기로 했는데, 해당 교수가 사전 준비 과정에서 장 정결제를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다.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의사들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더욱이 중증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현장의 의료진은 환자 생명을 두고 매일 그 기로에 서게 된다. 교도소 담장을 걷고 있다는 중증의료 담당 의사들의 푸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매일 순간마다 선택을 하지만, 환자를 죽이려는 선택을 하는 의사는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의사의 선의와 최선의 치료가 매번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재판이 있던 당일 아침, 두 딸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한 ‘대한민국 필수의료 중증의료 담당 교수’는 집으로 귀가하지 못하고 구치소에 수감됐다. 대학병원 교수이자 두 딸의 어머니가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과실 여부와 도주의 우려를 이유로 구속까지 한 건 과한 처사라는게 의료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중증의료 영역의 의사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판장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이번 판결이 중증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들의 사기를 위축시켜 더욱 소극적인 의료를 하게끔 만들고,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의대생들의 희망을 꺾어 기피과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 수년간 이와 비슷한 여러 건의 판결이 그런 결과를 계속 만들어 왔기 때문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본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정말로 ‘필수의료·중증의료’를 살리고 싶은 것일까. 위험한 선택을 해야 하는 의사의 실수에 모든 책임을 물어 엄벌하는 것이 이를 살리는 길일까.
공공의대를 졸업하고 필수의료·중증의료를 전공하는 의사들이라면 소명의식이 매우 강해서 도주 우려가 없을지, 아니면 고의가 아닌 과실로 교도소에 수감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