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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대석 교수 "연명의료, 의사추정·대리 등 현행 가족범위로 결정 불가능"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5개월, 현장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서 주장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의료진과 가족이 상의해서 결정할 수 있어야"

    기사입력시간 2018-07-18 16:05
    최종업데이트 2018-07-18 16:05

    서울대병원 내과 허대석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권미란 기자]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연명의료 행위 중단 등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5개월을 맞이했지만 의료계 현장에서 적용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의사결정이 어려운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위한 의사의 추정결정은 가족 2명 이상의 진술, 가족의 대리결정은 가족전원의 합의가 필요해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내과 허대석 교수는 1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5개월, 현장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허 교수에 따르면 7월 2일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 등록자는 3만4089명이었고 연명의료계획서(POLST) 등록자는 6042명이었다. 2016년 통계청에서 28만827명이 사망한 것과 비교했을 때 연명의료결정법이 적용된 사례는 10~20%에 불과했고 이 중 본인작성과 의사추정, 가족대리로 이뤄진 비율은 각각 3분의 1 수준이었다.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DNR) 서명은 80~90%에 달했고 대부분 가족에 의한 추정, 대리 결정으로 이뤄졌다.

    또한 현재 연명의료정보 처리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곳은 상급종합병원 42곳(100%), 종합병원 302곳 중 79곳(26.2%), 병원 1467곳 중 5곳(0.3%), 요양병원 1526곳 중 16곳(1%) 등 전체 이행기관 3337곳 중 확인된 곳은 142곳(4.3%)이었다. 

    허 교수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는데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를 결정하는 실제 비율은 통계청의 사망률로 비교, 추정했을 때 10% 미만이다"라며 "이 중 본인작성률이 저조한 것은 환자와 가족, 의료진, 서식, 전산화 등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현행법상 의사추정 결정을 위해서는 현행 가족 2인 이상 받아야 한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 연명의료 중단여부를 아예 결정할 수 없다"며 "가족 대리결정의 경우도 2촌 이내의 직계 존·비속에 이르기까지 전체 합의를 받도록 하고 있어 과정이 매우 복잡한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한국은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해서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말기와 임종기를 어떻게 구분하느냐"며 "심부전과 같은 만성질환 말기 환자의 경우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말기, 임종기를 진단할 지 결정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허 교수에 따르면 대만은 불가역적 혼수상태, 식물상태, 심각한 치매, 현재 의학수준으로 치료법이 없는 질병 등의 환자에 대해 가장 가까운 친척의 동의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은 배우자, 직계 존속 및 비속, 부모, 형제자매, 조부모, 증조부 및 3촌 이내 방계혈족, 1촌이내 직계의 인척 등이 단독으로 행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는 또 "정부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도록 했지만 현실적으로 요양병원에서 전산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홍고만 하고 있지 전산 열람조차 할 수 없고 법적으로 이행할 권한도 없다. 모순적인 법안이다"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자기결정권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현행 규정을 환자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해 의료진과 가족이 상의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패널토론에서도 현행법의 문제점에 공감하고 법안 개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대한병원협회 김선태 대외협력부위원장은 "현행법상 환자 의사추정이 가능해 가족 2인 이상 의견을 따르거나 환자 의사를 알 수 없어 가족전체의 의사표시에 따라야 한다"며 "그러나 가족의 범위가 특정되지 않아 많은 민원과 법적분쟁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족이 1명 있거나 외국에 있는 등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에 의사추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무연고자 등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부위원장은 "연명의료에 대한 국민 이해와 인식변화 없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받는 것은 가족에 의한 의사추정이나 대리적 의사결정에 상당부분 의존하게 돼 각종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라며 "문화적으로 정착되기 전까지 제도적 보완과 함께 국민과 환자가 건강할 때 작성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홍보와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과 이행을 위해 의료기관에 윤리위원회를 설치, 운영해야 한다"며 "그러나 종교·법조·시민단체 등 추천을 받은 2명 이상을 포함해야 해서 소규모 의료기관과 요양병원의 운영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윤리위원회 설치가 어려운 의료기관을 위해 '공용윤리위원회'를 제도화하고 공용윤리위원회 세부 운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단국대 법대 이석배 교수는 "무의미한 의료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돼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며 "특히 무의미한 연명의료라면 중단하는 것이 의료인의 의학적 양심이나 의료윤리에 합치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의사의 직업적 소명에 반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치료를 의사에게 강제할 수 없고 이러한 요구에 의사가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며 "독일은 의사가 의학적 유용성을 판단해 의료행위를 보류, 유보,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종환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형식적인 것이다. 암종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렇게 복잡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연명의료결정법'은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입법되면서 내용적으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가족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법 제정 전과 비교해 연명의료중단의 범위가 넓어지거나 같은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기여할 수 있다면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현재 법에 과거 '김할머니 사건'을 적용하면 연명의료 중단은 불가능해 보인다. 활발한 논의를 통해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할머니 사건'은 2008년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환자 '김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도록 한 가족들의 요구를 인정한 우리나라 첫 사례다. 당시 자녀들은 김할머니의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했고(영양제공 중단은 요구하지 않았다) 재판끝에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후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한 '연명의료결정법', 일명 '존엄사법'이 지난 2월 4일부터 시행됐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최윤선 이사장은 "연명의료법은 어떻게 죽을 것이고, 호스피스는 어떻게 돌볼 것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며 "연명의료결정의 절차적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환자의 의사추정, 합의에 있어 가족 중 직계존비속 범위를 1촌으로 한정한다면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에 대한 절차상 편의가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최 이사장은 "다만 가족의 법적 권리행사 측면에 치중해 접근하고 있어 근본적으로 환자 이익 최우선이라는 법 취지와는 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 환자 상태와 예후를 가장 잘 아는 담당의사가 가족과 상의해 환자 이익의 최선이라는 견지에서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내리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 백수진 부장도 "대리동의의 필요성은 개인적으로도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본다"며 "다만 법제화 과정에서 대리동의에 대한 도입 부담과 우려가 있었던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백 부장은 "환자의 자발성에 근거하지 않고 가족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 등에 대한 우려가 있는 만큼 대만의 법률과 형식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의료적 혜택의 보장에 대한 균형, 국가와 사회의 책임 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등록된 의료기관이 150곳에 지나지 않는다"며 "의료계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환자단체는 가족범위를 완화할 경우 악용될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와 환자가 잘 협력해서 쓰게 만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며 "연명의료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종에 있는 본인의 결정이다. 장기기증처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오히려 가족 2인 이상 진술을 통해 추정결정이 가능한 부분을 삭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경제적으로 상속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안전장치를 두고 몇 년간 지켜보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연명의료의 핵심은 유보가 아니라 중단이다. 사전연명의료계획서 미리 작성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환자가 잘 임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윤리위가 필요하다. 모든 병원은 아니더라도 일정 병상 이상은 윤리위를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무연고자에 대해서는 병원의 윤리위원회만으로 부족하다고 본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과 같은 제3의 기관에서 한 번 더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