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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분쟁 '잘못' 아닌 '피해 회복' 중심으로…김경수 변호사 "무과실 의료배상제 단계적 도입"

    분만 중심 현행 제도, 고위험 필수의료로 단계적 확대해야…스웨덴·뉴질랜드 전 진료과 적용, 일본·대만 산과 위주서 점진 확대

    기사입력시간 2026-05-07 15:36
    최종업데이트 2026-05-07 15:36

    법무법인 바른 김경수 변호사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법무법인 바른 김경수 변호사가 7일 열린 의료 정책포럼에서 '무과실 의료배상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변호사는 현행 의료분쟁 해결 구조가 과실책임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환자는 의료인의 주의의무 위반과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고 의료진은 민·형사상 사법 리스크에 노출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의료분쟁 대응 체계를 과실 규명 중심에서 신속한 피해 회복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무과실 의료배상제도는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의료인의 고의·과실 판단을 보상 단계의 전제로 삼기보다, 피해를 신속하게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제도다.

    그는 의료분쟁의 장기화 문제를 주요 근거로 들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의료분쟁 조정 신청은 최근 5년간 약 1만건에 달했으며, 이 중 조정 불성립 또는 각하 비율은 32~33% 수준으로 나타났다. 조정이 성립된 경우 평균 보상액은 약 1000만원 수준이었다.

    법원 절차 역시 환자에게 부담이 크다. 의료소송 1심 평균 처리 기간은 24.6개월로, 일반 민사 1심 평균 처리 기간인 7.4개월보다 3배 이상 길다. 김 변호사는 "실제 의료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3~5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 입장에서는 과실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고, 변호사 비용과 감정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무과실 의료배상제도가 도입을 제안했다. 해당 제도가 도입될 경우 환자는 과실 입증 부담을 덜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사고에 대해 보다 신속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모든 의료사고를 자동으로 보상하는 방식은 아니며, 적용 범위와 결과, 인과관계, 회피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보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의료진 측면에서는 사법 리스크 완화와 진료환경 안정화 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봤다. 의료분쟁이 장기화되고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구조는 방어진료를 유발하고, 고위험 진료 분야 기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변호사는 "의료진의 사법 리스크가 줄어들면 고위험 시술 회피나 과잉검사 등 방어진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산부인과, 외과,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진료환경을 안정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형 무과실 의료배상제도 구축을 위한 정책 방향으로 ▲단계적 적용 범위 확대 ▲보상한도 추가 인상 및 보상 대상 다양화 ▲재원의 다층적 분담 ▲독립적 심사기구 운영 ▲민·형사 책임체계 정비 등을 제시했다.

    현재 국내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는 분만 관련 사고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최근 보상한도가 3억원 수준으로 상향됐지만, 여전히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분만 영역에서 출발해 중증 외상, 응급, 중증 소아 등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해외 사례도 언급했다. 김 변호사는 스웨덴과 뉴질랜드 등은 비교적 포괄적인 무과실 보상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일본과 대만은 산과 영역을 중심으로 제한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경우 무과실 사고에 대한 보상과 중대한 과실에 대한 책임 추궁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보면 처음부터 모든 진료과와 모든 사고를 대상으로 하기보다, 일정 범위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접근이 많았다"며 "한국도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면 단계적 확대가 현실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재원 마련과 관련해서는 국가 일반회계, 건강보험, 의료기관 책임보험료, 국민 또는 피보험자 부담 등을 조합한 다층적 분담 구조를 제안했다. 특정 주체에 부담이 집중될 경우 제도 도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사회 전체가 의료 위험을 나눠 부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도덕적 해이 우려에 대해서는 보상한도, 심사위원회 통제, 고의·중과실에 대한 구상권, 면허관리 및 행정처분 등을 통해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무과실 보상이 의료진의 주의의무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경우 별도 책임을 묻고, 필요할 경우 구상권 행사와 면허관리 체계를 병행하면 책임 회피 우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심사기구 구성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부와 별도 보상심의위원회가 단계적으로 판단하는 구조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상심의위원회에는 의료계뿐 아니라 법조계, 환자단체, 시민단체 등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해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심사기구가 의료계에 편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법조계, 의료계, 시민단체 등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면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불복 절차에 대해서는 기존 민사소송 중심 구조보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통한 다툼 구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보상 결정이 공적 심사기구의 처분 성격을 갖게 되는 만큼, 이에 맞는 절차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무과실 의료배상제도가 환자와 의료진 중 어느 한쪽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환자에게는 신속하고 충분한 권리구제를 제공하고, 의료진에게는 불확실한 사법 리스크를 줄이며, 사회적으로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는 안전망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과실책임 구조에서는 결국 누가 잘못했는지를 계속 따질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의료사고 이후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는 신속하고 충분한 구제를 받고, 의사는 사법 리스크를 줄여 필수의료 회복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사회 전체가 의료 위험을 함께 분담해 어느 한쪽에 과도한 부담이 쏠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