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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차3법’ 망령이 의료에도 출현…국민·의료기관 모두에 파탄 부를 공·사보험 연계법 절대 반대한다

    [칼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전라남도의사회장

    기사입력시간 2021-01-09 08:51
    최종업데이트 2021-01-09 08:52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보험업계의 탐욕으로 유발된 문제를 국민건강보험에 전가
    개인건강정보 유출로 피보험자 역선택, 사보험사 배불리고 환자만 피해
    코로나19 전선에서 악전고투 중인 의료인의 사기를 꺽는 일


    [메디게이트뉴스]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가 7일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간 연계와 협력’(공‧사보험 연계)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법'과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을 오는 2월 16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공‧사보험연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이미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돼 많은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다. 그런데 21대 국회에서 절대 다수당이 된 여당은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를 통해 각각 ‘국민건강보험법’과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해 또 다시 공‧사보험연계를 시도하고 있다.
     
    정부는 연계법안의 제안이유로 ‘국민 의료비 및 보험료 부담 적정화’를 꼽고 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법안은 국민건강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을 서로 연계해 관리하는 ‘공‧사의료보험 연계심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연계위원회가 요구하면 진료정보나 요양급여비용 지급에 관한 정보 등을 일체의 사용료나 수수료도 없이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의 법안은 결과적으로 의료현장을 왜곡해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어 매우 우려가 크다. 다음 다섯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사보험회사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인 의료정보를 무더기로 유출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사보험회사의 업무 편의를 위해 국가 기관의 빅데이터를 제공해 공익에 위배된다.
    셋째, 과중한 행정업무로 인해 번아웃 상태인 의사들에게 사보험회사의 수익성까지 챙기도록 강요하는 부당성이 있다.
    넷째, 사보험회사가 축적된 피보험자의 의료정보를 바탕으로 추후 보험 가입시 역선택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
    다섯째, 저수가로 인해 진료량을 아무리 늘려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의료기관들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한 비급여가 크게 줄어들면서 의료기관의 경영난이 가중돼 연쇄 파산의 우려가 크다.

    실손보험은 과거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수요에 비해 보장성이 낮은 국민건강보험의 문제점을 파고들어 생겨난 사보험상품이다. 맨 처음 실손보험이 도입되었을 때만 해도 실손보험에서 보장해 주는 비급여 항목의 수와 단가가 높지 않아서 사보험회사들이 큰 수익을 얻게 됐고, 이에 사보험사들이 무분별하게 실손보험 상품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료 기술의 발달과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의 증대로 인해 비급여 뿐만 아니라 급여 분야의 비용도 증가되면서 점차 실손보험에 부담이 가중되다가 급기야 문재인케어의 건강보험보장성 강화정책의 영향으로 인해 의료 이용량이 급증하자 실손보험에 적용되는 진료비용이 늘어나면서 실손보험사의 지급 부담이 늘어나게 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험업계는 지난해 의료계의 비급여 진료비 때문에 실손보험 상품 손해율이 증가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부가 의료계의 비급여 관리에 나서줄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한참 전도된 일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정부는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손보험사가 지급해야하는 금액이 줄어들게 되는 것으로 예상되자 실손보험료를 인하하려고 공사보험연계법안까지 제정하려 했다. 그러나 문재인 케어의 영향으로 의료 이용량이 급증하면서 오히려 실손보험사의 손해가 발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정부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공사보험정책협의체’를 개최하고 실손보험사의 주장에 동조해 건강보험 비급여 관리 강화 계획을 세우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은 자유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의료비 급증을 억제하는 기제로도 일부 작용하고 있다. 특히 상급병실 차액과 같은 필수 의료분야가 아닌 비용에 대해서 모든 국민에게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의료계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는 의료계의 지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급종합병원의 상급병실을 급여화하는 등 시장기제를 파괴함으로써 의료수요가 급증하는 것을 자초했다. 거기에다 실손보험으로 환자 본인부담금까지 지불해 주니 마치 불섶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다. 실손보험이 필수 의료분야가 아닌 항목에 대해까지 환자 부담을 줄여줄 경우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염려할 지경까지 몰고 갔다.
     
    지난 2016년 A대학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건강보험 일산병원 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결과 현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이 78%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운영되는 것은 비급여 비용이 적자를 벌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비급여 진료는 한국 의료의 아킬레스건이자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비급여 진료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비난의 소지도 있지만, 과거 우리나라가 의료보험제도를 도입되는 과정에서 열악한 보건의료 재정으로 인해 자칫 붕괴될 수도 있었던 한국 의료를 떠받쳐준 소중한 역사적 유산이다. 한국의 의료가 오늘날 이처럼 성장하는 과정에 상당한 동기를 부여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처럼 공과가 있는 비급여 진료비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도 없이 실손보험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애꿎은 건강보험과 의료계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매우 부당한 처사다.
     
    비급여에 의존하지 않고는 운영이 되지 않는 저수가는 그대로 둔 채 사보험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공사보험연계를 통해 의료계를 압박하고 건강보험청구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요양급여비용 지급에 관한 정보나 진료정보를 아무런 사용료나 수수료도 없이 연계위원회에 제공하도록 하고 있는 개정안의 내용은 입법폭력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지난 해 7월 국회는 임차인의 권리 향상 및 보호라는 명분으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를 주요 골자로 하는 소위 '임대차3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전월세가 폭등하는 등 시장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급기야 12월에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경질되기까지 했다.
     
    지금의 ‘연계법안’ 뒤로 '임대차3법'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만일 정부가 기존의 저수가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공‧사보험연계만을 밀어붙이면 머지않아 실손보험 제한에 따른 피보험자인 국민의 강력한 저항운동이 뒤따를 것이다. 이와 함께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인해 경영이 매우 힘든 의료기관들이 수입 급감으로 인해 의료기관의 파산과 대량실업 사태를 보게 될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악전고투 중인 의료인의 사기를 꺾는 문제 투성이 연계법안 추진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만으로도 운영될 수 있도록 적정수가 보장과 함께 실손보험 제한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증진토록 하는 진지한 노력을 기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만일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우리는 법적 행정적 사회적 수단을 동원해 연계법안의 통과를 끝까지 저지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