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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의사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의협 집행부·산하단체 임원·대의원들의 8월 총파업 참여 여부부터 공개하자

    [칼럼] 좌훈정 대한개원의협의회 기획부회장·대한의원협회 의무부회장

    기사입력시간 2020-10-08 07:00
    최종업데이트 2020-10-22 10:02

    27일 임총장 입구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일반 회원들.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9월 27일 의협 회장 및 주요 임원 불신임과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위한 임시대의원총회(임총)가 아무런 성과 없이 파장됐다. 이번에는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걸었던 회원들은 역시나 실망하고 말았다. 지난 여름 의사들의 뜨거운 투쟁 열기를 뒤로 하고 강행한 이른바 ‘날치기 의정합의’로 깊은 상처를 받았던 전공의나 의대생 후배들에게 더욱 면목이 없어졌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 건 9.4 의정합의 후 한 달이 더 지나도록 젊은 의사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의대 졸업반 학생들 대다수가 아직 의사국가고시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8월 23일 범의료계 4대악저지 투쟁위원회(범투위) 제1차 회의 때 기억을 떠올려본다. 당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파업 중이었으며, 의대생들은 국시 및 수업 거부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정합의 후 정부여당이 불이익을 주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스런 의견에 의협 집행부는 자신 있게 "의정합의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전공의, 의대생들이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 필자 역시 그 말을 믿었기에 범투위에 적극 참여했고 9.4 의정합의에 대해 매우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후배들의 피해가 덜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어떤가. 이번 투쟁에 앞장섰던 전공의들은 망연자실한 채 패배감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또 의대 졸업반 후배들은 의사국시를 보지 못하고 자칫 1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날리기 직전이다. 범투위에서 호언장담하던 얘기는 공수표가 되어 날아갔지만 의협 임원들 중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 정도 상황이면 굳이 불신임안을 제출하지 않아도 회장이든 임원이든 이번 의정협상과 합의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자진 용퇴해야 하는 게 아닌가.

    더욱 어처구니없는 건 이번 임총의 운영과 진행이다. 의협의 주인은 의사 회원들이며, 총회에 참석하여 방청을 하고 의사를 표시할 권리가 있다.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방역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그 안에서 얼마든지 운영의 묘를 살려서 회원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수 있다. 그럼에도 대의원회는 회원들의 권리를 강압적으로 제한했다. 접수장소인 3층에서 총회가 열리는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조차도 경비 인력을 동원해 막았다. 대의원회 운영규정에서도 보장된 회원들의 방청을 원천 봉쇄하고 총회장의 문까지 잠갔던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대의원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책임한 집행부, 계획 없는 대의원회

    회원들 대다수가 찬성한 회장이나 임원들 불신임을 대의원회가 부결시킨 것은 대의원들의 권한이라고 인정한다 해도(그만큼 일반 회원들의 정서와 유리된 채), 지금껏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답이 없다. 여태 의협 집행부가 주도해왔던 범투위가 회원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는데, 이를 대체할 투쟁체인 비대위 설치까지 부결시켜버리면 도대체 어쩌겠다는 것인가.

    지금 당면 현안은 의대정원 증원, 공공의대 설립 등 소위 ‘4대악’만 있는 게 아니다. 자고나면 쏟아지는 수많은 의사 죽이기 악법, 규제들을 의협 집행부나 범투위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게 명백해졌는데도, 대의원회는 모든 안건들을 다 부결시켜버린 채  손을 놓고 있다. 이는 대의원회가 안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회장 등 임원에 대한 불신임은 개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미흡한 9.4 의정합의를 반성하고 나아가 정부여당을 향해 약속 이행과 의대생 구제에 나서라는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이번 임총 결과는 정부여당이 오히려 사과를 요구하는 등 적반하장의 빌미를 주고 말았다.

    이제 의사국시 필기시험 접수마저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의협 집행부는 물론이고 정관상 최고 의결기구인 대의원회의 대안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차세대 주역인 의대생들 다수가 국시를 보지 못하거나, 본다고 해도 피해자가 적잖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임총은 대의원회가 집행부에 책임을 준엄하게 물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대의원회가 공동 책임을 떠안은 것인지는 알고 있는가.

    설령 의사국시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된다고 해도 지난 한달 여 동안 뒤로 홀로 남겨진 채 가슴을 쳤던 의대생 후배들의 상심을 어떻게 달랠지 답답하다. 사흘간 휴·파업이 진행되던 8월 27일 걸려온 어느 전화가 떠오른다. 자신이 치과의사라고 소개하시는 의대생 어머니의 연락이었다. 통화 내내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에 목이 메어 뭐라고 얘기하기 어려웠다. 그저 최선을 다 하겠노라고 통화를 마치면서 무거운 빚을 하나 더 안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저녁 휴·파업을 마감하면서 열렸던 범투위 제2차 회의에서 매우 부진했던 개원가의 참여율을 반성하고 향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의협 및 산하단체 임원과 대의원들의 참여 여부를 조사해서 발표하자는 나의 제안이 기각됐다. 그리곤 며칠 후 뭐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반대하는 전공의들을 외면한 채 의정합의가 이뤄졌고, 그 책임을 묻기 위한 임총에서는 회장 및 임원들 불신임안과 비대위 설치안이 모두 부결됐다. 이 모든 것이 단지 우연이었을까.

    바야흐로 공은 기사회생한 집행부와 공동 책임을 떠안은 대의원회로 갔다. 의정합의 후 오히려 더 거세어진 의사에 대한 비난 여론과 각종 악법, 규제들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또 지난 여름 투쟁의 전면에 나섰던 전공의, 의대생 후배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그 첫 단추로 지난 8월 14일과 26~28일, 총 4일 간의 휴·파업에 의협 및 산하단체 임원과 대의원들의 참여 여부를 조사해서 발표해야 한다(앞으로도 계속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후배들 면전에 떳떳한 선배가 되지 않겠는가. 또 나아가 향후 투쟁이 재개된다면 젊은 의사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가 식후엔 나 몰라라 하는 선배들을 가려낼 수 있지 않겠는가.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