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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부인과 의사 구속, 지역의 산부인과가 사라진다…전국 71개 시군 지난해 분만건수 '0'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기사입력시간 2019-07-19 13:00
    최종업데이트 2019-07-19 13:00

    #57화. 산부인과 의사 구속 사건

    지난 6월 27일, 대구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경상북도 안동시의 개인 산부인과 의원에서 사산아의 유도 분만을 시행하다 태반조기박리에 의해 산모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의료진의 부주의로 산모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산부인과 의사에게 금고 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회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면서 20일 궐기대회를 예고한 상태다.

    태반조기박리란 태아와 산모를 이어주는 조직인 태반이 태아가 나오기 전에 산모에서 떨어져 버리는 것으로, 대량의 출혈을 동반해 산모에게 위험한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은폐형 태반조기박리'일 경우 출혈이 산모의 복부 내 빈 공간에 축적되기 때문에 위험도를 의사가 예측하거나 상태를 확진하기가 매우 어렵다. 산모를 보는 산부인과 의사는 누구나 언젠가는 마주할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위험이다.

    이런 시한폭탄이 하필 이 의사와 산모에게 터졌고, 재판부는 과실에 대한 책임을 엄하게 물어 의사를 구속시켰다. 그런데 이 사고를 단순히 1인 의사의 의료 사고, 과실 문제로 보기가 어려운 이유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순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 157개 시.군 중 무려 71곳(45%)이 지난해 분만이 단 한 건도 없었고, 이 중 30곳(19%)는 자동차로 1시간 거리 안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었다. 

    그야말로 분만 인프라의 대붕괴다. 의사들이 산부인과를 지원해도 분만은 하려 하지 않고, 지방의 분만 병원들은 속속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저출산 문제와 지역 양극화 문제를 악화시킨다.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에는 출산이 있을 수 없고, 젊은 부부들은 그 지역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언제 양수가 터질지 모르는데 분만병원이 없어서 병원에 도달하기까지 1시간이 걸리는 지역에 사는 것은 단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건 도박이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결정은 합리적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고의성이 전혀 없는 사고에 대해 현재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대한민국에서 지역 분만 의사의 역할에 대한 일말의 배려가 있었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과실에 대한 책임과 배상에 대한 문제를 굳이 '구속'이라는 엄한 처벌까지 동원해서 해결해야 했을까. 

    이 사태를 수많은 예비 의사들과 소명의식으로 버티고 있는 지역 분만 의사들이 보고 있고 구속된 의사가 진료해 오던 산모들도 보고 있다. 이 일이 초래하게 될 결과들이 너무 뻔히 보여서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