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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가 인상, '집단이기주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면…"저수가 연구결과 SCI에 등재해야"

    [칼럼] 네바다주립의대 유지원 교수

    다양한 측면의 진찰료 연구, 최저임금 등 변수 고려, 임상의사들의 참여, 민간보험 연구 등 필요

    기사입력시간 2018-03-30 08:51
    최종업데이트 2018-03-30 19:47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집회 사진. 사진=대한의사협회 
    [메디게이트뉴스 유지원 칼럼니스트] 지난 23일 선출된 신임 대한의사협회장 최대집 당선인께 축하인사를 드린다. 새로 구성되는 의협 집행부가 의사 회원들이 간절히 원하는 저수가 등의 의료계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

    하지만 시작부터 만만치 않아 보인다. ‘상복부 초음파’ 예비급여 고시 강행 등을 보면 복지부가 의협에 진정성을 갖고 협상 파트너로 대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급기야 29일 의정협상 결렬이 발표되고 30일 최대집 당선인이 4월 중 강한 투쟁을 예고하는 기자회견을 연다고 했다.

    복지부가 의사들을 ‘반사회적 이익집단’으로 몰아가던 2000년 의약분업 때 데자뷔가 떠오른다. 당시 4만여명의 의사가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모였다. 필자 역시 참석해 김재정 의협 집행부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의협은 최선정 복지부 장관, 송재성 차관 등 협상파트너를 상대로한 여론전에서 밀렸다.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라는 여론 프레임에 빠져버렸다.

    인지 심리학자 미국 UC버클리대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교수가 말하는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프레임에 갇힌 것이다. 레이코프 교수에 따르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과연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도대체 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을까?’라는 궁금증이라도 생기면 더욱 코끼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의협 집행부가 아무리 합리적인 반박을 해도 이를 막을 수 없었다. 대다수 국민은 의사들의 파업과 투쟁이 언급될 때마다 머릿 속에 ‘코끼리’(집단이기주의)만 떠올렸다.
     
    필자는 미국에서 최근 10년간 오바마 케어를 중심으로 급격한 의료환경 변화를 겪었다. 2010년 차상위 빈곤층의 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오바마 케어’는 가까스로 대법원에서 합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공화당 의회에 밀려 연방에서 단일화된 의료보험공단을 만들지 못하고, 주(州)별 결정을 통해 진행됐다. 오바마케어는 올해 3월 현재 34개주에 도입됐다. 이는 민간보험회사를 통해 노인층이 아닌 18~64세의 차상위 빈곤층(연방빈곤층의 연간 138% 수입구간)까지 주별 메디케이드 가격으로 건강보험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Medicaid expansion).

    오바마 케어로 인해 보험이 없는 무보험자가 17%에서 9%까지 줄었다. 민간보험회사는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가입자가 늘어나게 됐다. 로버트우드 존슨재단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오바마 케어를 도입한 주는 그렇지 않는 주보다 건강보험 가입율이 4.5% 높았다. 또 건강보험 가입자 일인당 연간 부담하는 의료비가 7.7% 줄었다.

    의협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의협이 손영래 예비급여과장 등 복지부 협상파트너와 다시 한 번 협상테이블에 앉게 된다면 심도 있는 전략을 갖출 것을 당부하고 싶다. 우선적으로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진료과목별, 지역별, 진료 영역별로 새로운 의료원가 연구를 수행해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에 등재된 논문을 게재했으면 한다. 방법적인 측면에서 4가지 고려할 점을 들 수 있다. 

    첫째, 같은 진찰료라도 진료과나 지역마다 체감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연구를 보면, 2016년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의 행위별 원가를 1차 자료(base scenario, 2013년 자료)로 삼은 다음 건강보험 청구자료로 상대가치 산정을 통해 원가보전율을 산출했다. 연구결과는 알려져있다시피 수술, 검사 등 다른 진료 유형에 비해 진찰료가 가장 낮은 원가보전율인 50% 내외로 나왔다. 선행 연구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3년 ‘유형별 상대가치 개선을 위한 의료기관 회계조사’에서는 진찰료가 78.33%였다. 하지만 진찰료가 각 의료현장에 천편일률적일 수는 없다. 이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최저임금 상승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의료원가에 대한 논리를 보완해야 한다. 앞서 의료원가 연구는 두 가지 연구에서 공개된 내용 외에 구체적인 연구방법을 확인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원가보전율 연구는 일종의 비용효과분석(cost-benefit analysis)이다. 최저임금 상승이나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 각종 의료기구의 운송 비용 등 간접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비용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서도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또한 노인인구와 기대수명 증가 등으로 인한 개별 경제적 손실도 고려해야 한다. 선행연구에서 빠져 있는 요양병원 등 장기요양보험 급여 사용도 민감도 분석(sensitivity analysis)에 포함해야 한다.
     
    셋째, 원가조사의 표본은 적어도 2년 이상 의료현장에서 축적한 자료를 이용해야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을 줄일 수 있다. 현재까지 나온 연구는 대부분 진료에 참여하지 않은 예방의학과나 의료관리학과 교수들의 연구가 많아 보인다. 연세대 산학협력단과 보사연에서 실제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 명단을 보면, 의료현장에 있는 임상의사가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최대집 의협 집행부가 유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넷째, 의사 개인을 그저 노동인력으로 바라보는 민간보험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오바마 케어를 통해 민간보험 가입자는 늘었지만 보험회사들은 의사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연방정부가 건강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사회적 응집력(social cohesion)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민간보험회사들은 그들의 힘이 세지는 만큼 의사들의 치료비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사협회(AMA)는 민간보험사들의 인수합병(M&A)을 통한 규모 확장을 반대하고 있다. 

    한국 역시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등으로 의료비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의사의 진료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민간보험회사 시장 진입에 이용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의사들이 원가보다 낮은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두 차례나 적정수가를 보상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8년 전 의약분업 파업 당시 보라매공원 집회에 비를 맞아가며 모인 회원들의 함성이 지금도 변함없이 들려오는 듯하다. 멀리 미국에서 이런 조언이나마 새로운 최대집 의협 집행부에 힘을 보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