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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에 삶의 질을 포기해야 뇌수술 신경외과 선택 가능...의사수 늘린다고 해결 안돼

    [칼럼] 박지용 신경외과 전문의,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 대표

    기사입력시간 2022-08-08 06:17
    최종업데이트 2022-08-08 06:17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달 24일 정말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 출혈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결국 사망한 것입니다. 신경외과 입장에서 보면 '코일색전술'이 실패해 차선책인 '뇌동맥류 클립결찰술'을 진행하려는 상황이었는데, 해당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됐습니다. 온라인 기사 댓글을 보면 네티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직원 하나 지키지 못하는 병원에 실망했다는 평입니다. 

    하지만 아산병원 의사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발성 지주막하출혈은 주로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뇌동맥류가 파열돼 뇌출혈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때 핵심적인 처치는 출혈이 멈춘 뇌동맥류의 재파열을 막는 것입니다. 재파열이 발생할 경우 생존율이 절반 이상 감소하기 때문에 최대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방법은 허벅지의 대퇴동맥을 통해 뇌혈관까지 접근하는 코일색전술, 그리고 두개골을 열어서 수술하는 클립결찰술 두가지입니다. 아산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코일색전술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차선책인 클립결찰술을 시도하기 위해 환자는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됐습니다.

    흔히 인식하기로 개두술이 필요한 클립결찰술을 못해서 코일색전술을 대신 시행한것 같지만, 사실 해당 환자의 경우는 뇌동맥류의 위치상 코일색전술이 클립결찰술보다 우월한 치료에 해당된 것으로 의료진은 판단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클립결찰술 없이 코일색전술만으로 최선의 치료가 이뤄집니다.

    고인처럼 어려운 경우가 아니었다면 클립결찰술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코일색전술이 클립결찰술을 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시행한 시술처럼 비춰지는데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또 한국에 의사가 부족해서 벌어진 사건이란 것도 사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인구대비 신경외과 의사 수는 전세계에서 제일 많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신경외과학회연맹WFNS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대비 신경외과 의사 수는 10만명당 4.75명으로 5.89명인 일본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위입니다. OECD 가입국 중 3위인 그리스의 2.51명의 2배에 달하며 압도적인 의료비를 투여하는 미국도 1.61명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습니다.

    저는 올해 초까지 4년간 신경외과 수련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뇌출혈, 뇌질환, 중추신경계질환 등에 대한 전세계 여러 논문과 텍스트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의료가 열악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신경외과 치료들이 소위 선진국으로 꼽히는 여러 나라에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뇌하수체 종양의 비대로 인해 발생한 경색이나 출혈을 의미하는 뇌하수체졸중의 경우입니다. 뇌하수체졸중이 발생하면 뇌하수체종양이 시신경 등 주변 구조물을 압박하며 극심한 두통, 안검하수, 의식저하 등 여러 증상이 발생합니다.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수일 내로 응급수술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 뇌하수체졸중에 의한 안검하수 등이 발생할 시 약물치료와 수술적치료의 효과를 비교한 논문이 있습니다. 저는 이 논문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수술적 치료의 효과를 약물 치료와 비교하려면 수십, 수백명 이상의 환자를 약물로 치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수술해야 하는 환자에게 수술은커녕 약물만 주고 치료효과를 분석할 수 있다니요. 

    두번째는 뇌동맥류파열 환자의 처치 시간입니다. 뇌동맥류 파열시 제일 중요한 것은 재파열 방지입니다. 뇌동맥류가 파열되면 계속 출혈이 되는 게 아니라 출혈이 멎어있는데, 재파열이 발생할 경우 생존율이 절반씩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신경외과 의사들은 뇌동맥류 파열이 발생하면 말 그대로 '최대한 빨리' 코일색전술이나 클립결찰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의 경우는 어떨까요? 유럽뇌졸중학회(ESO)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뇌동맥류 파열시 '72시간 내에 치료(intervene)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돼있습니다. 72시간이라는 숫자를 보고 잘못 읽은줄 알고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제가 겪은 제일 오래 걸린 시간이 12시간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너무 늦어지는 듯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뇌동맥류 환자가 24시간 내에 코일색전술·클립결찰술을 받지 못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클립결찰술을 시행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 소위 '개두술도 못하는'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느낍니다. 4년간 신경외과 수련을 받은 저는 현재 척추를 전문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응급개두술을 수십건 진행해봤던 만큼 저도 응급 개두술 집도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클립결찰술의 난이도는 수준이 다릅니다. 클립결찰술은 개두 뿐만 아니라 뇌손상을 최소화하며 뇌엽을 젖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뇌를 일부 절제하고 정확한 혈관을 클립으로 결찰해야 합니다. 다른 과정을 다 잘 해도 클립으로 조금만 잘못 물려놓으면 뇌경색으로 의식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심지어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하게 진행됐는데도 사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만약 손상된 뇌조직의 출혈이 조금이라도 심하면 밤새 진행한 수술이 끝난 직후라도 즉시 재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클립색전술의 난이도는 높습니다. 일반적인 개두술의 난이도와 비교가 불가합니다. 참고로 코일색전술도 클립결찰술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한 고난이도입니다.

    이런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두 부류입니다. 수백병상 이상 중 대형병원 교수급 의료진, 그리고 교수급 의료진이 되기 위해 박봉과 삶의 질을 포기한 펠로우(이공계로 비유하면 포닥)들 뿐입니다. 아무리 의사를 늘려도, 심지어 신경외과 의사가 늘어도 클립결찰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절대 늘어날 수 없습니다. 간호사직군과 비교하면 아무리 간호대 정원을 늘려도, 처우개선을 해서 베테랑 간호사를 늘려도 수간호사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번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의대정원이 해답이라는 여러 단체들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져있는 것입니다.

    같은 의료진으로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간호사 분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의사일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의사들이 이번에 벌어진 이 비극적인 일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몇 번의 고민을 했는지 모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