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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엔 '비과학 DNA'가 있나?

    우리나라 사람만 믿는 '혈액형' '한의학'

    기사입력시간 2016-02-11 05:56
    최종업데이트 2016-02-11 11:49

    한국인의 열 몇 번째쯤 염색체엔 '비과학에 관대한 유전자'가 있는 게 확실하다.

    그게 아니고선, 이 정도 문명국에서 이 만큼의 비과학이 만연한 상황을 설명하긴 힘들다.
     
    나라님들이 무당을 일하는 곳까지 불러 굿판(재수굿을 하려 했다니 단순 문화행사는 아닌 듯싶다)까지 벌이는 나라니, 우리는 참 비과학에 관대하다.



    <사진 출처 : JTBC>

     
    기자와 같은 '과학 신봉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혈액형 성격학'이다.

    A형인 기자는 혈액형을 발설하는 순간부터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

    정도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소심함은 갖고 있다.

    그래서 혈액형 성격학은 바넘효과(Barnum Effect)로 설명되기도 한다.

     
    혈액형 성격학의 근원은 이렇다.

    1970년대 일본의 한 방송작가는 본인이 취재 중 만났던 인물의 성격을 혈액형과 연결해 '혈액형으로 알 수 있는 상성'이란 책으로 정리했다.
     
    과학을 전공한 적 없던 한 작가의 주관적 정리가 일본 황색 잡지에 실려 인기를 끌었고, 이게 80년대에 국내까지 건너와 황당한 믿음이 퍼져나갔다. (항간에는 민족 정론지인 '선데이서울'이 들여왔다고 알려졌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유명 중매 회사의 프로필 기입란엔 '회피하는 상대 혈액형'이란 항목까지 있다고 하니, 현재 대한민국에서 혈액형 성격학은 단순히 재미로 웃고 넘기는 수준 이상이다.



    혈액형 성격학의 가장 우려되는 점이 바로 요거다. 자신의 성격을 규정지어 거기에 맞춰버리는 것.


    의학적 관점으로 풀자면, ABO 혈액형은 혈액 속에 떠다니는 적혈구라는 세포의 표면에서 발현한다.

    아쉽게도 이 세포는 BBB(Blood–Brain Barrier, 뇌혈관장벽)라는 특수한 구조에 차단돼 신경조직에 닿지 못한다.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 뇌의 신경조직은 정작 자신의 혈액형이 무엇인지 감지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골수이식을 받은 일부 환자에선 치료 후 ABO 혈액형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성격 이식'까지 의학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혈액형 성격학은 현재 일본인과 한국인만 믿고 있다.
     
    꽤 많은 서양인은 본인이 무슨 혈액형인지 평생 모른 채 살아간다고 하니, 그들과의 국제 연애에 이런 '비과학적 스탠다드'를 들이밀지는 말길 바란다.



    이 사진은 본 기사와 딱히 관련이 없음.
     

    물론 세상 모든 일에 있어, 이성과 과학적 판단이 다는 아니다.
     
    점쟁이들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비과학을 여유 있게 바라보는 게 삶에 재미를 주기도 한다.
     
    사실 남녀가 처음 만났을 때 '혈액형 성격학'만큼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할 주제도 없긴 하다.
     
     
    관대함의 주체는 누구인가?
     
    한의학은 비과학이다.
     
    이런 명제엔 어김없이 "침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네!"라든가, "한의학의 일부 사례가 유명 학술지에 게재되었네!"라든가 하는 일부 사례로 전체 성격을 규정하는 댓글이 반론으로 제기된다.
     
    반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시장경제적인 요소를 '일부' 도입한 38선 이북의 김씨 왕조도 자본주의 국가다.
     
    근본이 바뀌지 않는 한 기와 혈, 음양오행이 과학이라고 불릴 일은 없고, 그래서 한의학은 비과학이다.
     
    의료이원화란 말 역시, '의학과 한의학'이 아닌 '과학과 비과학'의 공존을 의미한다.
     
    의료이원화가 당면한 문제도 "한의학을 의학에 포함할 것이냐?"가 아니고 "비과학을 의료에 포함할 것이냐?"가 돼야 한다.
     
     
    비과학에 대한 관대함을 의료까지 확장할 것인지는 고민 좀 해봐야 한다.
     
    비과학적인 의료에 관대해진다는 건, 기자가 소심한 A형으로 오해받는 것과는 차원이 완전 다른 문제다.
     
    게다가 비과학적인 의료의 공존은 대한민국 정부가 직접 나서 공인까지 해줬다.
     
    그런 이유로, 의료계 입장에선 비과학적 의료에 현혹되는 환자를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정부가 정말 나쁜 건, 이런 공존의 문제를 '관대'하게 내버려두다가 '정치적 선택'이 필요한 상황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현재 의료일원화를 포함한 모든 의료의 결정은 '비과학 의료 집단'의 동의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메르스나 지카처럼 바이러스 유행만 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면서,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바로 그 집단 말이다.
     
    덕분에 이 시대의 대한민국 환자들은, '과학과 비과학 의료가 뒤섞인 의료이원화'라는 과도기에 살아야만 한다.
     
     
    영국이나 미국에선 불가능한 '비과학 의료의 공존'이, 도대체 왜 한국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영국인이나 미국인엔 없는 '비과학에 관대한 DNA'가 정말 한국인에만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