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70대 이상 노인 환자가 여러 질병을 이유로 다수의 의료기관을 방문하면 자연스럽게 많은 약을 복용하게 된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 환자가 다른 의료기관에서 어떤 약을 처방받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환자들도 약을 챙겨먹으면서도 문제가 없는지 불안해할 때가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해 의사가 처방전을 발행할 때 병용 금기 등을 안내하고 있지만, 모든 약의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부터 10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올바른 약물이용지원 시범사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환자 대상군을 선정한 다음 2차례 가정 방문해 복약 상태를 점검하고 중복되는 약의 개수를 줄여 부작용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다.
지난해에는 건보공단이 지역약사회와 함께 가정에 방문하는 약사모델만 있었지만, 올해 9월부터 건보공단 서울지역본부와 서울시의사회가 의원급 의료기관의 의사가 직접 참여하는 의사모델로 시범사업을 병행해서 진행했다. 의사모델은 의원의 의사와 건보공단의 약사, 간호사 등이 함께 환자의 가정에 방문하거나 의사가 대상자를 안내하면 건보공단 약사, 간호사 등이 방문하도록 했다.
의사모델의 시범사업은 36개 기관에서 신청했다. 약사모델과 달리 환자들이 다시 의원에 방문했을 때 곧바로 처방을 변경하고 환자들의 중복 약물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했다. 다만 실제로 의원의 의사가 상급종합병원 처방 정보 등을 전부 알지 못해 처음부터 대상 환자를 선정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의사가 건보공단 업무시간에 맞춰 함께 건보공단의 약사, 간호사와 방문하기 어렵거나, 별도의 혜택이 명확하지 않아 직접 가정 방문하기 어려운 한계도 뒤따랐다.
서울시의사회는 올바른 약물이용지원 사업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시범사업 확대 의지를 내비쳤다.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은 “올해 서울시의사회가 했던 여러 가지 사업 중에서 올바른 약물이용지원사업은 국민 건강을 위한 성과가 기대되는 사업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올바른 약물이용지원 사업, 중복 약물 2~3개 정도 줄이는 효과
실제로 약사모델에서 올바른 약물이용지원 사업의 대상자로 선정되고 가정방문이 이뤄지면 약물을 2~3개 정도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지역본부 유승현 건강지원센터장은 13일 ‘올바른 약물이용지원 사업 발전방안’ 정책세미나 발제에서 “시범사업 도입 이후 220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평균연령은 73.5세였다. 70대 이상이 70%에 해당한다. 이들은 1차 방문시 평균 14.92개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시범사업을 실시한 다음 11.21개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유 센터장은 “이용자들은 복약순응도 개선과 약물 조정 등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폐의약품 문제가 41.6%로 가장 많은 문제가 있었고 상호작용 38.6%, 유사효능군 중복 33.33%, 부작용 33.28% 등으로 나타났다”라며 “유통기한 경과, 여러 의료기관 진료로 인한 중복처방, 증상이 나아서 복용하지 않고 쌓아두는 등의 문제로 폐의약품이 발생했다. 약을 잘못 보관하거나 오래 먹을 의도로 냉장고에 보관하는 등 보관 및 사용법에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유 센터장은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횟수가 평균 10.3회였다. 그런데 환자들이 약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이 드러났다”라며 “여러 의료기관을 다녀도 해결되지 않는 증상이 지속되고 이로 인해 또 다른 병원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의료기관에서 약을 중복해서 처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범사업은 이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유 센터장은 “건보공단 서울지역본부는 시범사업을 신청한 의원의 의사가 필요하다는 환자를 대상자로 선정했다. 의사와 공단 약사, 간호사 등이 함께 나가는 방법과 공단 약사와 간호사가 나가는 모델 두 개가 같이 이뤄졌다”라며 “의사가 공단에 의뢰하면 가정방문 이후에 상담내용을 의사에게 전달하면 환자가 의원에 다시 내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건보공단 박향정 건강관리실 건강지원부장은 “10개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환자는 건강에 위협을 주고 건보 재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라며 “시범사업은 지난해 680명으로 시작해 올해 3000명으로 확대했다. 환자들이 약을 먹는 불안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약사 모델은 중복 투약이나 약물 관리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 이에 따라 9월에 서울시의사회와 함께 의사의 주도하에 약사 모델과 서비스를 달리해서 시범사업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36개 기관에서 200명의 환자를 목표로 참여중”이라고 밝혔다.
박 부장은 “의사모델은 내원 환자에 대한 처방전을 신속하게 개선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다만 의사가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보완이 필요한 점도 있었다”라며 “단계적으로 서비스를 확대해서 객관적인 근거가 확보되면 커뮤니티케어나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등에도 반영되면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의사회와 협의를 거쳐 시범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상 환자 선정 어렵고 의사의 가정방문은 더욱 어려워
서울시의사회 유진목 부회장은 “환자를 선택하는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 일단 환자를 고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라며 “환자를 선정하더라도 가정방문을 해야 한다면 거절하는 환자가 생겼다. 그만큼 환자등록 자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유 부회장은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맞는 환자를 찾아주기도 어렵다. 전산으로 가능성 있는 환자를 하나하나 찾아서 들어가야 환자가 복용하는 약이 10개가 넘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유 부회장은 “가정방문 이후에 환자가 다시 병원에 왔을 때 처방 단계에서 중복약물을 교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심평원 DUR에서 걸러지지 않는 부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라며 “상급종합병원에 다니는 환자가 약을 특히 많이 복용하는데, 여기에서의 처방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연계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의원이 약을 많이 먹는 환자를 골라서 지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 부회장은 “의사가 공단의 약사와 간호사와 함께 가정에 방문해야 한다. 진료시간이 있다보니 공단 근무시간 안에 동행을 위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라고 했다.
서울시약사회 여약사위원회 이용화 총무는 “약사가 환자를 찾아가기 전에 환자의 다양한 병력과 복용하는 약물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상 환자에 대한 정보가 6개월 이전의 정보로 한정됐고 그만큼 시간차가 있었다. 완벽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무는 “노인들이 가질 수 있는 특징 때문에 가정방문을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개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문가집단이 환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평원 김동숙 약제정책연구부장은 “DUR은 수천건의 금기항목에 따라 팝업 알람이 발생하면 의사가 차례대로 사유를 기재해서 넘어갈 수밖에 없다. 3분 진료 환경에서는 중복약물 등을 세세히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DUR을 통한 처방 정정비율이 15%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올해 있었던 OECD 회원국의 의약품전문가그룹 회의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논의된 바 있다. 의사들이 진료지침에 따라 처방하지만 환자가 여러 의사를 방문하면서 중복처방이 발생한다.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 다같이 고민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의사와 약사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