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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 의학교육의 미래와 의학교육개혁 연토회 참관기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시간 2025-04-01 09:19
    최종업데이트 2025-04-01 09:26

    Koo Foundation Sun Yat Sen Cancer Center(和信醫院)

    [메디게이트뉴스] 타이완의 Koo Foundation Sun Yat Sen Cancer Center(和信醫院)는 2024년 2월 타이완에서 암 환자의 생존율과 환자 만족도가 가장 높은 국제적인 의료기관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대만 보건부의 후원으로 대만 국립대 보건대학원이 수행한 환자 입원 경험 조사에 대한 연구로서 대만의 의료센터, 지역병원, 지구병원을 모두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병원에 대한 환자 만족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암병원 설립 후 10여 년이 지나 이 병원의 경영에 관한 자세한 분석이 지난 2009년 하버드 경영대학에서 출간된 바 있다. 우리에게 ‘가치 기반 의료’로 잘 알려진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가 저자이고, 당시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병원이 유방암 치료에서 통합팀 접근 방식의 모델로 타이완은 물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암센터로 어떻게 도약했는지를 상세히 기술돼 있다.
     
    병원 설립자 황달부(黃達夫) 교수는 타이완 국립의대 출신으로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듀크대학의 내과 교수로 활동했다. 이후 타이완으로 귀환하여 타이완의 전통적인 의료문화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감각으로 혁신적 병원 운영에 성공한 Koo Foundation Sun Yat Sen Cancer Center(和信醫院)를 설립하여 현재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황달부 교수는 현재 85세가 넘었고, 아직도 건강하다는 표현 자체가 무색해 보인다. 누가 봐도 타이완의 금수저 출신으로 영어도 상위급 원어민과 같다. 그는 아직도 듀크대학의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의학교육혁신촉진기금회’ 운영 눈길
     
    타이완으로 돌아와 황 교수가 의료사회에 기여한 공로 중 하나는 자신의 이름을 딴 황달부 의학교육혁신촉진기금회(黃達夫醫學教育促進基金會)을 별도로 설립하여 타이완 의학교육의 건강한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독불장군 같은 그의 행보에 전통적인 주류 대만의학교육학회는 중립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연례적으로 개최되는 화신병원이 주최하는 의학교육행사에는 늘 대만의 의학교육 인사들로 붐빈다.
     
    우리나라도 한 특정 병원이 의학교육을 위해 별도의 국제 행사를 개최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병원이 아닌 경우에는 더더욱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황달부 교수는 자신이 직접 설립하여 국제적으로 유수한 암센터로 성공한 화신병원을 바탕으로 기존의 의학교육학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수의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타이완의 의학교육과 의료 분야의 개혁을 선도하고 있다. 이런 이유인지 대만의 의과대학생이면 임상실습을 받길 원하는 으뜸 순위의 병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2025년 의학교육학술대회는 지난 3월 15~16일 양일간에 걸쳐 화신병원 35주년 기념행사를 겸해 마련됐다. 다수의 해외 연자가 초청됐는데 미국의 저명인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현대 의료가 직면한 핵심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독특한 플랫폼을 제공하려는 의도인데 세 가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첫째는 과거 실무의 통찰력을 주제로 인본주의, 신체검사, 환자의 고통 해결과 같은 기존 환자 치료 관행의 지혜는 현대화에 직면하여 잘 보존돼야 하는지였다.
     
    둘째는 새로운 기술 도입을 주제로 AI 및 유전체학과 같이 의료 교육 및 실무에 도입해야 하는 새로운 기술은 무엇이고, 이러한 혁신이 신중하고 윤리적으로 적용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였다.
     
    변혁의 물결 속 현대 의료가 직면한 핵심 과제 논의 플랫폼 제공
     
    셋째로 의료 시스템 지원에서 의료 시스템은 어떻게 개혁하여 변혁을 지원하고 공중 보건의 요구를 더 잘 충족해야 하는지와 그리고 환자 치료 결과를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의료 시스템을 공중 보건의 이니셔티브를 통합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지였다. 이와 같은 3가지 큰 질문을 던지고 행사는 논의의 장을 제공한 것이다.
     
    연자로 초청된 인사는 China Medical Board 회장, 미국한림원(National Academy of Medicine) 회장; Harvard University 부총장 등 미국 의료 분야의 요직을 두루 역임한 공중 보건과 의료정책의 대가 Harvey Fineberg 교수, 그리고 오바마 케어 밑그림을 그린 종양전문의이자 의료정책 전문가인 펜실베이니아 의대 Ezekiel Emmanuel 교수, 인공지능의 대가인 스탠포드 의대의 Kevin Schulman 교수, 영상의학 전문의로 인공지능의 대가인 Curtis Langlotz 교수, Boston University 명예 외과 교수; JAMA Surgery 부편집장 Jennifer Tseng 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교수들이 대거 참가했다. 지면 제약 상 이번 일정에 초청받은 모든 해외 연자 소개는 생략한다.
     
    2025년 3월 15일 첫날은 주로 최고 저명인사의 현재와 미래의 의학교육에 대한 주제 발표와 논의가 있었고, 인공지능, IT 등 신기술의 등장에 따른 의학교육의 탈인간화에 대한 경계가 주된 내용이다. 이들 저명 인사들의 강의는 이미 각 분야별로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다른 인사들의 인공지능이나 IT 강의 내용과 유사했다. 그러나 이들의 발표에서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경계’라는 공통적인 메시지가 전달됐다. 초청 연자의 주제 발표 후에는 강의 범위를 넓혀 다양한 질의 응답과 원탁 좌담회 등으로 준비된 강의가 아닌 연자간 자유로운 토론으로 진행됐다. 3월 16일 둘째 날은 인공지능과 IT에 관한 내용의 강의와 영상의학 적용에 대한 주제 발표와 이를 중심으로 파넬토론회를 한 후 기술적 혁신에 대응되는 주제인 ‘인간성의 보전’이라는 주제에 대한 강의와 파넬토론으로 행사를 마쳤다.
     
    일방적이고 강제화된 정책은 의사 권리 침탈 성공하기 어려워
     
    이번 학술대회 참가 중 질의응답 혹은 사적 공간에서 얻은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는 의사 인력의 부족에 대한 언급이었는데 공중 보건을 전공한 전 한림원 원장 Fineberg 교수는 의료 취약지 문제를 의사 절대 수로 해결하려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피력한 후, 이 주제를 제대로 논하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우리나라 공공의대와 같은 취지로 설립됐다가 지금은 방향을 전환해 일반 종합연구 중심의 의과대학으로 변경한 타이완 양명의대 졸업생 출신 학장과 현 학장과 논의에서 역시 강제성을 두는 지역의사제의 한계에 대해 현장감 있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의 진솔한 의견은 우리나라가 구상하는 공공의대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논조였다. 공공의대 출신이나 일반의대 출신의 취약지 잔류는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경험이고, 일방적인 강제화로 강화된 규정은 한 개인 의사의 권리를 침탈하는 것과 같다는 문제 인식과 논리였다.
     
    우리나라 의료사태를 알고 있는 Emmanuel 교수는 미국의 의료수가 협상은 미국의사회가 주도하고 있어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부 약가 통제나 수가 통제의 필요성이 있는데 미국의 국가 기본 철학인지 통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어 수가 통제가 아닌 수가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우리나라의 사정을 설명했더니 도대체 한국 정부가 원하는 의료는 무엇이냐고 원초적인 반문과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이에 필자는 아직 보건의료의 기본에 대한 합의 없이 출발한 의료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면 개혁하겠다는 정부는 어떤 의료 형태를 지향하냐고 다시 물어왔으나, 필자는 우리나라 정부나 의료인도 잘 모르겠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오바마 케어를 구상하고 도입했으나 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이 우려된다고 표명하고 틀림없이 메디케이드를 축소할 것으로 확신했다.
     
    미국에서 의사 수 증원과 의대설립은 해당 대학의 일이지 주정부 몫이 아냐
     
    오바마 케어로 약 5000만 명의 주민이 혜택을 받게 되어 의사 부족이 예견된 바 있다. 당연히 의대 증원에 대한 미국 정부의 역할을 질문했다. Emmanual 교수의 대답은 미국은 연방정부가 의대 정원을 정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방정부 산하 보건부에서 보건의료 직종의 현황 자료와 추계는 하는데 그렇다고 몇 개의 의대나 몇 명의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주제는 연방정부의 일이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일부 의사가 많이 부족한 주에서 주정부 차원에서 의대 증원을 논의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의대 설립과 정원 증원은 해당 대학의 일임을 다시 설명했다. 그리고 의대설립이나 정원 증원은 정부 기구가 아닌 의학교육평가인증기구, 졸업 후 교육인증기구, 주 단위 면허기구 등 다양한 기관의 사전 자문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증원 폭을 결정하고 의사 집단과 대치 상태에 있다는 설명을 하였으나 미국식 제도에서는 연방정부의 할 일은 아니라는 듯한 입장이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기존의 의학교육 학술대회와 유사한 학술대회였고 의학교육의 변화와 의료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주된 것이었다. 특히 인공지능과 IT의 발전이 큰 주제였다. 

    2. 혁신적 병원경영으로 성공한 의대 교수 출신이 의학교육촉진기금회를 설립하여 개최한 의학교육 학술대회로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도 본받을 만한 행사였다. 대학 부속병원 조차 의사 양성에 대한 사회적 책무성과 전문직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3. 해외 초청 연자는 타 의학교육 학술대회에 비해 다수의 매우 높은 지명도를 갖춘 인사였는데 미국 교수가 주를 이뤘다.

    4. 초청 연자는 임상, 예방의학 등 자신의 전공과 더불어 의료정책에 교육과 실무에 관여하고 있었다.

    5. 학술대회 공용어가 영어였고 타이완 교수도 영어 구사 능력이 상당히 높았다.

    6. 타이완이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향후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수의 참여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