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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I 급여화→검사 폭증→대량의 삭감고지서, 의사는 환자·정부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기사입력시간 2019-05-17 13:00
    최종업데이트 2019-05-17 14:49


    #48화. MRI 급여화로 검사 확대, 무분별한 삭감 예고  

    의사 A씨는 종합병원에서 치매 환자를 진료한다. 그는 출근하면서 버스에 대문짝만하게 붙은 “MRI 급여화 시행, 이제 저렴한 비용으로 검사 받으세요”라는 광고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뇌, 신경계의 MRI 급여화 시행 이후 환자들과 자주 다툼을 벌이고 있다. 치매는 기억력 저하를 주 증상으로 하고 원인에 따라 각종 신경, 인지 증상들이 동반된다. 하지만 그런 부가적인 증상들은 커녕 기억력이 완전히 멀쩡한 정상인들이 '광고를 보고 왔다'며 무작정 MRI를 찍고 싶다고 한다. 

    A씨는 환자들로부터 자세하고 꼼꼼하게 병력 청취를 하고, 치매 환자를 감별할 수 있는 검사들을 시행한 후 친절하게 '당신은 이상이 없다, 치매 환자가 아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MRI를 찍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무조건 MRI를 찍어 봐야겠다고 한다.

    환자들은 '나라에서 싸게 찍어준다고 해서 왔는데 당신이 그걸 왜 방해하냐'는 식의 인신공격까지 동반되니, A씨가 버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한참을 설득하다 문득 '내가 이걸 왜 막고 있지, 내가 왜 이 분과 갈등을 겪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환자가 호소하는 주관적인 증상들을 차트에 적고 조용히 MRI 오더를 처방전에 넣는다. 비록 3개월 뒤로 예약이 잡히긴 했지만 환자는 매우 만족해하며 진료실을 나간다. 이와 같은 일들이 점점 더, 자주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A씨는 이것이 오래가지 않을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내는 검사들을 나라에서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정부에서 걷는 건강보험료가 무한하지 않으니 이런 낭비는 곧 제동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그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병원에 돈을 안 주면 된다. 그렇게 곧 '대량의 삭감 고지서'가 병원으로 날아올 것이다. 

    MRI 급여화 생색은 이 정책을 시행한 사람들이 잔뜩 내고, A씨는 환자와 정부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끼어 욕받이 노릇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과정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지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