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조현병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 중이던 환자가 병원 흡연구역에서 추락해 양하지 마비 등 중증 후유장해를 입은 사건에서 항소심 법원이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다만 법원은 환자의 불성실한 수진 태도와 처방 불수용, 스스로 자살을 시도한 점, 조현병의 질환 특성 등을 함께 고려해 병원 책임을 재산상 손해의 25%로 제한했다.
최근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지난해 7월 24일 A씨가 학교법인 B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피고 병원의 일부 책임을 인정해 원고에게 약 3억7752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는 2019년 11월 26일 피고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20일 병원 내 흡연구역에서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이후 원고는 척수 손상으로 보행이 불가능한 양하지 완전마비 상태가 됐고, 신경인성 방광과 신경인성 장 등 후유증도 남았다. 법원은 이 사건 사고 이후 현재의 노동능력상실률을 100%로 봤지만, 원고가 기존에 조현병으로 인한 장해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이 사건 사고로 인한 노동능력상실률은 62%로 산정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병원이 정신질환 입원환자의 자살 위험을 예견하고 사고를 방지할 의무를 다했는지, 손해가 발생한 경우 병원의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항소심은 병원 측 과실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 병원이 산책 코스를 구성할 때 자살 시도가 가능한 곳을 배제해 운영했지만, 이 사건 흡연구역이 뒤쪽 지상에서 약 5m 높이에 있고 1개층 단차가 있어 자살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병원 측 과실이 중대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해당 흡연구역은 병동에서 걸어오는 방향 기준으로 후문 쪽 1층에 위치해 있었고, 병원의 다른 장소와 비교해 쉽게 자살을 시도할 만한 장소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원고가 사고 당일 어머니와 외출한 이후 불안감이 상승해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한 측면도 고려됐다.
법원이 병원 책임을 제한한 이유에는 환자 A씨의 사정도 반영됐다.
재판부는 피고 병원 의료진이 2019년 11월 27일부터 원고에게 클로자핀 복용을 지속적으로 권유했으나, 원고가 이를 거부하다가 사고 이틀 전인 12월 18일에야 복용을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클로자핀은 조현병 환자의 자살 행동 위험 감소 효과가 있는 약물인 만큼, 원고가 의료진의 권유에 따라 더 일찍 복용했다면 사고 당시 자살 충동이 억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또 원고가 입원 기간 중 의료진에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고, 퇴원 의사를 밝혔다가 번복하는 등 치료에 순응하지 않은 사정도 책임 제한 요소로 고려됐다.
재판부는 원고가 자의로 입원했고, 입원 기간 중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입·퇴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위험성을 판별할 의사결정능력이 있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원고가 스스로 자살을 시도한 점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책임을 인정했다.
항소심은 조현병의 질환 특성도 책임 비율 판단에 반영했다. 재판부는 조현병 환자의 5~10%가 자살로 사망하고, 약 20~40%는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는 자료를 근거로 원고의 자살 시도가 조현병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법원은 ▲원고의 불성실한 수진 태도와 병원 처방 불수용 ▲원고의 의사결정능력 및 잘못된 판단 ▲병원 측 과실의 내용과 정도 ▲조현병의 질환 특성 등을 종합해 피고 병원의 책임을 재산상 손해액의 25%로 제한했다.
이는 정신건강의학과 입원환자 사고에서 병원의 안전관리 의무를 인정하되, 환자의 자기결정 능력과 질환 특성, 치료 협조 여부 등을 함께 고려해 책임 범위를 제한한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