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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공보의에 방역가스 살포도 억울한데…‘가짜뉴스’로 몰아버리는 전남·여수 행정당국의 문제”

    공보의 심경 고백 “근무여건·주민 불안 예견된 참사...대구 차출 불가능 지적 받아들여지지 않아"

    기사입력시간 2020-03-18 07:26
    최종업데이트 2020-03-18 07:39

    ①처음부터 대구 차출 반대했지만 숫자 채워야 한다고 무시당해  
    ②대구 파견 이후 문제 없다고 주민들에게 설득 요청했지만 후속조치 없어   
    ③방역가스 살포 이후 불안했지만 의료공백 이유로 섬 이탈 지연  
    ④이례적인 방 안 방역, 일상적인 방역이라며 가짜뉴스로 몰아  

     
    A공보의는 방 안으로 방역소독이 이뤄지는 모습에 놀라 사진을 찍었다. 사진=대한공보의협의회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가짜뉴스요? 절대 아닙니다. 관사 2층에 있었는데 갑자기 문을 열라고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간호사와 방역직원이 갑자기 방 안으로 방역가스를 분출하더군요. 섬마을 전체 방역이라면 방 안을 방역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만약 그렇다면 치과의사와 한의사 공보의 방 안에는 왜 방역가스를 안뿌렸지요?”

    전라남도 여수시 한 섬에서 근무하는 A공보의는 17일 메디게이트뉴스와의 통화에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대구 지역 파견을 다녀온 뒤에 겪은 방역가스 살포 사건은 ”가짜뉴스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전날 전라남도는 “지난 12일 여수의 한 섬에 위치한 공보의 관사에 사전 예고대로 친환경 연막소독이 실시됐다. 이 소독은 대구에 다녀온 공보의 때문에 한 게 아니라, 당시 여수시 차원에서 2200여 곳에 실시한 계획적 방역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여수시 관계자도 “공보의에게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상적인 소독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A공보의는 자신의 방 안에만 사전 예고 없이 이뤄져 전남과 여수의 주장대로 일상적인 소독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공보의가 당시 기록을 떠올리면 이랬다. 방 문을 열자마자 간호사와 방역 호스를 든 방역 직원이 갑자기 방 안으로 방역가스를 발사했고, 연기가 방 안 전체에 퍼졌다. 일상적인 방역소독이라면 문 틈으로 연기가 올라오고 나서 방역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뿐, 이전에도 방 안을 방역하는 일은 없었다.

    A공보의는 “한의과, 치과 공보의의 경우 방문을 열어서 방역을 하지 않았다. 간호사 방에도 방역을 했다고 하지만 간호사는 방역을 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방 안에 없었을 것이다"라며 "방 안을 방역한다고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한다거나 자신에게 방역을 한다고 방 밖으로 나가있으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얼굴과 몸에 연기를 그대로 맞았다. 방 안에 있던 음식을 모두 버릴 정도였다”고 밝혔다.   

    A공보의는 당시 방안에 퍼진 연기를 보고 너무 놀라 사진을 찍었고 친구들에게 전달했다. 그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일파만파 퍼지면서 이 사건이 알려진 계기가 됐고 기사로도 나갔다. 하지만 전남과 여수가 가짜뉴스라며 펄펄 뛰었다. 

    A공보의는 “혹시라도 가짜뉴스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지역 주민들이 관사 2층에 올라온 것이 아니라 간호사와 방역직원이 올라온 것의 차이다. 특정 지역의 문제로 부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라며 “하지만 방 안으로 방역가스의 일방적인 살포 자체가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기사가 나간 이후에 행정당국이 거짓뉴스로 몰아가려는 정황도 있었다. 그는 “해명자료를 낸다는 이유로 전라남도와 여수시 측이 전화를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방역가스 강제 살포는 없었던 일이고 오해였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을 없던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A공보의는 “12일에 사건이 있었고 취재 요청이 계속됐지만 일단 무사히 섬에서 나간 다음에 기사가 나갔으면 했다. 갑자기 기사가 나온 16일 밤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너무나도 무서웠다”라며 “17일 오후 3시 배를 타기 직전인 오후 2시 30분쯤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진료를 계속 했다”라고 말했다. 

    "섬 공보의에 예견된 참사, 대구 차출 불가능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번 사건은 예견된 참사와 다름 없었다. A공보의는 섬 지역 근무 여건에 맞지 않고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대구 차출이 적합하지 않다고 여수시에 수차례 건의했다. 하지만 여수시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공보의는 “이 섬에는 응급실이 없고 공보의 단 2명이 교대 근무를 하면서 야간과 주말 응급 상황을 지킨다. 근무시간 외에 주말에도 응급 상황이 생길 수 있어 365일 24시간 1명은 반드시 섬에 남아있어야 한다”라며 “1명이 대구에 차출되면 남은 1명이 야간은 물론 주말까지 남아서 쉬지 않고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A공보의는 “대구에 파견된 공보의가 자가격리 기간 2주까지 갖게 되면 남은 공보의가 긴 시간을 혼자 근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A공보의가 대구에 가서 보니, 이런 문제로 다른 섬 지역은 물론 울릉도 공보의도 파견을 나오지 않았다. 백령도 공보의가 파견 나왔지만, 백령도에는 병원이 있어 공보의가 24시간 응급상황에 대기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A공보의는 대구로 파견을 간 와중에도 섬에서 혼자 남아 3주 연속으로 근무하는 B공보의가 걱정됐다. 질병관리본부 지침에 따르면, 공보의 등 의료진이 보호구를 충분히 했을 때 유급으로 자가격리 휴가를 받는 것을 강제화하지 않고 개별 선택에 맡기고 있다. 그래서 A공보의는 자가격리 기간을 거치지 않고 11일 다시 섬으로 돌아와 진료를 시작했고 3주간 전혀 쉬지 못한 B공보의에게 휴가를 쓸 수 있게 했다. 

    A공보의는 대구로 파견을 나간 이후에도 가급적 진료를 줄이기 위해 B공보의에게 처방기간을 길게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이 동요할 수 있어 여수시에도 문제가 없다는 사전 안내를 부탁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환자를 마주치지 않으려고 전화 처방을 하다가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고 나서야 대면진료에 나섰다. 

    A공보의는 “자가격리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선택이라는 공문이 있다. 그래도 불안한 나머지 전화처방 위주로 했는데 대구에서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불만을 내비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섬 지역 주민들은 60대 이상 고령이 많다 보니 대구에서 왔다고 하면 충분히 불안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당국의 문제다. 대구에 파견을 나가기 전부터 예고됐던 일이다”라며 “파견을 나간 이후에도 여수시 측에서 연락 한 통 없었다. 자가격리를 강제로 해야 한다거나, 자신이 다시 섬으로 돌아갔을 때 주민들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안내를 해주지도 않았다”고 토로했다. 
    A공보의는 섬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돌아갈 길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진=대한공보의협의회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싶은 공보의들 "다른 섬 지역에서 같은 피해 없어야"  

    섬 공보의 2명은 이 섬을 떠나 다른 지역 또는 육지로라도 옮기는 것을 원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비춰졌고, 추후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라 섬에 남는 것이 다소 껄끄러워졌기 때문이다.  

    A공보의는 16일에 섬을 빠져나온 다음 자가격리 기간과 대체근무 휴가 등 29일까지 휴가를 받아 30일에 섬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현재 교체 인력이 한시적으로 근무하고 B공보의가 휴가기간이 끝난 다음 23일 섬으로 들어가기로 한 상태다.  

    이에 대해 여수시청 관계자는 “공보의들이 4월 둘째주까지 근무하면 1년이 채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후에 다른 시도로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에 따르면, 도서지역 및 병원선에서 1년 이상 근무하고 시도지사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해 다른 시도로 근무지 변경을 할 수 있다.   

    A공보의는 “11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섬 지역에 정이 없지 않았다. 주민들이 음식을 갖다주거나 막 잡은 회를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약을 드리면서 잘 지냈다”라며 “재차 강조하지만 문제는 주민들이 아니라 행정당국이다. 대구 차출 과정에서 숫자를 채워야 한다며 공보의 근무 여건이나 주민들의 불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공보의의 건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B공보의 역시 “12일 사건이 있고 나서 안전을 이유로 A공보의를 일단 최대한 섬에서 나갈 수 있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수시 측이 의료공백을 이유로 해주려하지 않았다”라며 “김형갑 대한공보의협의회장의 도움으로 사건 다음날인 13일 섬에서 바로 빠져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의료공백을 이유로 또 다시 주말까지 있어달라고 했다. 결국 16일에 겨우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B공보의는 “대구 차출 과정에서부터 이미 문제가 많았는데 A공보의가 차출을 하면서 혼자 3주 연속 근무를 했다. 근무 보상이나 대책 마련이 전혀 없었다. 이에 대해 문의를 하자 여수시측은 연락을 피하기 일쑤였다”라고 지적했다. 

    공보의들은 우선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한 다른 섬에서 대구에 파견되는 공보의들의 안전을 위해 후속조치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