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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석심사 시범사업, 정부 정책에 순응하도록 유도…행정영역 평가지표에 만성질환관리제 참여 비율 포함

    임상영역 지표 가이드라인은 따르기 힘들 때 많아…수술도 대형병원만 유리하고 조기 퇴원만 유도

    기사입력시간 2019-08-26 16:04
    최종업데이트 2019-08-26 16:05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26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분석심사 선도사업을 통해서 의료비를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관치의료 시스템을 더욱 강화할 계획을 드러냈다"라며 "4개 질환과 슬관절치환술에서 관리되는 지표들 중에서 임상영역 지표들은 의료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획일적인 진료 패턴을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학회 가이드라인 따르기 어렵고 행정영역 지표는 정부 정책에 순응하게 만들어 
     
    병의협은 "분석심사 선도사업에서의 임상영역 지표들은 대부분 각 학회 등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서 가이드라인은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일 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가이드라인대로 진료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흔히 생기게 된다. 그런데 분석심사에서는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르기 힘든 환자들을 많이 진료해 지표값이 하락하면 해당 의료기관은 그만큼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어떤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예외적인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의료기관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의료기관 입장에서 가이드라인을 따르기 힘든 환자들을 선택적으로 기피할 수도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의사들의 직업 윤리상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환자들을 기피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실제로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런 직업 윤리의식을 확고히 가지고 있어 예외적인 환자를 기피하는 일은 드물다"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의사들의 직업 윤리까지 강조하지 않더라도 현재 분석심사 체계에서 의료기관들은 환자를 기피하기 어렵게 돼 있다. 분석 지표 중에 방문 지속 환자 비율과 처방지속 환자 비율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해당 의료기관에서 꾸준히 치료 받는 환자가 많아야 이들 지표값이 상승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병의협은 "이런 문제들 이외에도 가이드라인을 지표화시켜서 관리하면 의료기관들 입장에서는 지표값을 좋게 하기 위해 아예 진료 패턴을 가이드라인으로 고정시켜 버리는 경향이 발생한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의학의 발전에 따라서 항상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병은 현재도 가이드라인이 수시로 바뀌고 있고 얼마 전까지도 옳다고 여겨졌던 내용들이 뒤집히는 경우들이 허다하다"고 했다. 

    병의협은 베타차단제 계열의 약물을 예로 들었다. 병의협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고혈압 치료에 있어서 1차 약제로 인정됐으나 현재는 1차 약제가 아니다. 물론 지금 1차 약제로 인정되는 칼슘통로 길항제나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베타차단제가 다시 1차 약제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의학이라는 학문은 항상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항상 이런 내용들을 공부하고 임상 상황에 적용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그런데 이렇게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내용들을 심사 지표로 만들어버리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아무리 심사 지표를 의학의 변화에 따라서 수시로 조정한다고 하더라도 관이 주도하는 정책들이 학문의 변화 속도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심사 지표는 시기적으로 최신 의학지견과 어느 정도는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게 되면 의사들 입장에서는 의학의 새로운 변화를 학습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어차피 새롭게 변화된 내용들을 진료에 적용시키고 싶어도 심사 지표가 변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표가 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표가 유도하는 대로만 진료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병의협은 "이것이 바로 의료 획일화가 심화되고 의료의 수준이 하락하는 현상이다. 정부는 획일화된 의료와 의료의 질 하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모두 환자들이 입게 된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병의협은 "분석심사에서 정부가 선정한 행정영역 지표들은 결국 의료기관들이 정부의 정책에 순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현재 정부는 의원급 의료기관들에 대해서 만성질환관리만을 주로 하는 일종의 주치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들을 그러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의원급 의료기관들이 급성기 질환에 대한 치료나 수술 및 시술에 대한 비중보다 만성질환관리의 비중을 현재보다 더 높게 유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정부의 이러한 의도가 바로 행정영역 지표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행정영역 지표를 보면 고혈압, 당뇨병,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들의 점유율 지표가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방문한 환자 중에 이들 만성질환자의 비중이 높을수록 이 지표값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의원급 의료기관들로 하여금 만성질환자 진료에만 더 의존하게 만들어 정부가 원하는 정책 방향대로 의료기관들을 움직이게 하려는 속셈이 숨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병의협은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지표는 바로 고혈압과 당뇨병의 행정영역 지표 중에 한 가지인 의원 만성질환관리제 참여 환자 비율 지표이다. 현재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는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성명을 통해 현재의 만성질환관리제는 원격진료 시행의 명분을 줄 수 있고 주치의제 추진을 위한 발판이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점을 들어 분명히 반대했다. 다른 의료계 단체들에서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만성질환관리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으므로 시범사업에도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그런데 의료계의 이러한 합당한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정부는 이번 분석심사 선도사업의 행정영역 지표 중에 이 만성질환관리제 참여 환자 비율을 지표로 포함시켰다. 만성질환관리제 참여도가 지표로 선정되면, 의료계 내부적으로 시범사업 참여군과 비참여군 사이의 갈등과 분열이 조장될 우려가 높다. 이러한 의료계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이용해서 정부는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 참여율을 올리고 이를 바탕으로 본 정책 시행까지 무리 없이 진행하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슬관절 치환술 지표, 대형병원에만 유리하고 조기 퇴원 등 부작용 우려 

    병의협은 "정부가 여러 가지 수술 항목들 중에서 슬관절치환술을 우선적으로 분석심사 선도사업에 포함시킨 이유는 전국적으로 대형병원에서부터 중소병원까지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는 수술이면서, 급증하는 공단 청구액에 대한 통제가 필요한 수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또한 기존에 관절전문병원 질 평가 등을 통해서 이미 어느 정도 지표가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있던 수술이기에 선도사업에 포함시키기 용이하다는 이유도 선정의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라고 했다. 

    병의협은 "그런데 슬관절치환술 분석 지표들의 세부적인 내용들을 보면 같은 수술을 하더라도 대형병원이 훨씬 유리하고 중소병원은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지표값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의료기관들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의사들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분석 지표 중에서 복잡기준 수술 비율 지표는 65세 미만 환자 수술 비율과 함께 절대적으로 대형병원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복잡수술 기준을 보면 대부분 수술 자체가 고난이도이면서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경우 이거나 환자가 중증의 만성 질환을 앓고 있어 수술 후 환자 상태 악화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들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중증의 환자들은 일반 중소병원에서 진료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대형병원들에서 수술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형병원 입장에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수술인 만큼 어느 정도 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대형병원으로 이러한 환자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수익도 더 얻는다면, 이것을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병의협은 "또한 복잡수술 기준에서의 가장 논란이 될 수 있는 점은 바로 환자가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수술 전 해당 전문의에게 협진을 보면 복잡수술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는 부분이다. 기준에 포함된 질환들은 대부분 내과 질환들로 돼 있는데 문제는 협진을 보는 전문의의 자격 기준이 내과의 경우에 내과 전문의가 아니라 각 세부 분야의 분과전문의로 돼 있다는 점이다. 중증 내과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수술 전 평가 및 수술 전 후 관리는 내과 전문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협진 전문의의 자격을 분과 전문의로 제한해버리게 되면, 각 분과별로 세부 전문의 자격을 대부분 갖추고 있는 대형병원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병의협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슬관절치환술을 하는 대부분의 중소병원들도 분과 전문의 자격이 있는 내과 전문의 채용을 선호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내과 전문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분과 전문의 취득과 유지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수술을 무작정 미루거나 조기 퇴원시키는 부작용이 생길 우려도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병의협은 "슬관절치환술 지표 중에 65세 미만 환자 수술 비율이 선정된 것은 대부분의 슬관절치환술이 고령의 퇴행성 관절염 환자에게 많이 이뤄지기 때문에 수술 전 충분한 보존적 치료나 약물 치료의 기간을 가지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슬관절치환술을 하는 것 보다 충분히 이러한 보존적 치료를 통해서 가능하다면 수술을 피하는 것은 현재도 대부분 의료기관에서 지키고 있는 의학적 견해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지표로 만들어지면 문제가 달라진다. 65세 미만 환자들의 경우 보존적 치료에 반응하지 않아도 의사들은 최대한 수술을 미루려고 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고, 결국 환자들은 고통에 시달리면서 진통소염제를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위험에 노출된다"고 했다.

    이밖에 병의협은 "수술 전후 비경구 항생제 투여 일수를 지표로 만들게 되면 수술 후 염증 호전이 빨리 되지 않아서 항생제를 더 길게 투여해야 하는 환자들을 치료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 의료기관들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항생제를 중단하고, 환자를 조기 퇴원 시켰다가 환자를 외래에서 자주 보면서 필요 시 재입원 시키는 식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환자들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수술 후 합병증 발생을 높이는 등의 문제로 나타나게 된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슬관절치환술 한 가지 수술만 보아도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생길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런데 앞으로 분석심사를 전 수술 영역으로 확대하게 되면앞서 지적했던 문제들은 전 의료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의료전달체계 붕괴, 의사들의 고통 가중, 환자들의 불편 증가 및 안전 위협 등의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가 진정 원하는 의료의 방향이 이런 것인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