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비만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활동량은 줄어들고, 혼밥과 배달음식 등 식문화가 변화하면서 국내에서도 비만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산소 신체활동 실천율은 2019년 47.8%에서 2020년 45.6%로 감소한 반면, 성인 비만 유병률은 2019년 33.8%에서 2020년 38.3%로 4.5%p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비만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취급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으며, 비만을 부추기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전 부처가 힘을 합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26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개최한 제4차 미래건강전략 포럼에서 ‘비만은 누구의 책임인가? 지속 가능한 비만예방관리를 위한 공동의 노력 방안’을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국내 비만율…비만 예방에 초점 맞춰 다부처 협력해야
강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만 실태의 특이점은 가구 소득이 낮을수록 비만 유병률이 높다는 점 그리고 초중고 학생들의 과체중과 비만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물론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비만율이 높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렇게 안심할 때가 아니다. 비만율 자체보다 비만 증가 속도가 굉장히 가파르기 때문이다. 또 어릴 때 비만하면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확률이 80%가 넘는다는 역학 연구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소아청소년 비만의 문제가 10~20년 후 우리나라 성인 비만율 증가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 이제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도 2005년부터 총 3회에 걸쳐 비만관리대책 계획을 수립했으나 실질적으로 추진되지 못했고, 지난 2018년에 이르러서야 2022년까지 적용되는 체계적인 제1차 국가비만관리 종합대책이 마련됐다.
강재헌 교수는 “이제 2차 종합대책이 마련될 때가 됐다. 2차 종합대책의 기본 원칙은 비만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인구 기반 중재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만을 개인의 게으름이나 개인의 노력으로 돌려서는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역사회와 정부 차원에서 인구 기반 중재에 집중해야 비용 효과성도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번 포럼의 제목도 ‘비만은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제목으로 정해, 비만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비만을 불러일으키는 환경을 제거하고 건강한 환경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은 생활습관 개선을 위해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 헬스포인트를 부여해 상품이나 스포츠클럽 이용권 등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독일도 예방 운동, 영양프로그램 등 ‘건강패키지’를 달성할 경우 ‘건강 보너스’라는 이름으로 연간 430유로를 지급하는 등 건강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강재헌 교수는 “이미 비만이 된 분들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1차 계획에서 분절화돼 있던 여러 부처의 사업을 모아 유기적으로 시너지가 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제2차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은 ▲비만예방을 위한 건강생활실천 강화 ▲대상자별 맞춤형 비만관리서비스 제공 ▲취약계층 비만예방‧관리 강화 ▲민관 파트너십 및 통합 거버넌스 구축으로 추진 전략을 잡아, △비만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 개선 △비만 예방 및 관리를 위한 환경 조성 △병적비만 치료서비스 제공 △과학적 근거 및 인프라 구축 등의 분야로 나뉘어 정책이 추진될 예정이다.
비만,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국가 차원에서 관심 갖고 환경 개선 나서야
고대안암병원 가정의학과 한병덕 교수는 “비만 환자를 치료할 때 체육시설, 좋은 음식 등이 제공돼야 하는데, 결국은 성패의 결과를 환자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다. 고혈압, 당뇨병 등 다양한 환자들도 생활 습관 교정이 첫 번째 치료 원칙인데, 습관 교정이 안된다고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바로 약물 치료 시작하고 나라에서 도움을 준다. 하지만 비만 환자들은 본인의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만 환자분들은 살이 찌는 음식 등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환자에게 교육을 제공하기가 어려움이 많다. 한 명이라도 더 진료를 보는 게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라고 의료 현장의 문제를 지적했다.
또 “몸에 좋지 않은 식품들은 접근이 너무 쉽다. 몸이 나빠지는 걸 알면서도 저소득층은 접근성이 쉬워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다”며 “음식에 대한 중독은 끊기가 어렵다. 먹지 못하면 죽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자기 생활을 영위하면서 체중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환자들은 스스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만한 사람들은 그들의 탓이 아니라 운이 없어서 어떻게 하다 보니 비만이 된 것이다. 이들이 다시 건강하게 살 수 있게끔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도움을 줘야하며 이를 위해 비만에서 멀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제대 보건대학원 손창우 교수는 ”비만의 근원적인 원인은 섭취하는 에너지와 소비하는 에너지 사이의 불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지방과 당분이 많은 섭취가 증가하고 있고, 교통수단의 발달과 도시화로 신체활동이 감소하는 것이 원인라고 볼 수 있다“며 ”국민 건강도 교통이나 교육 도시 계획 건축 등 다양한 분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WHO에서는 저소득층이 스포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등 해외에서는 활동적인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 계획과 비만을 연결하려는 시도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 교수는 ”도시 계획을 통해 대중교통을 확충하고 토지 이용의 혼합도를 증진시키고, 지역의 연결성을 증대시켜주는 것이 사람의 신체 활동량을 늘릴 수 있다는 근거가 나왔고, 보행로, 자전거 도로 등 이동성과 안전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비만을 예방하는 환경 마련을 위한 설탕세, 주류세, 학교에서 과당음료 판매 금지 등의 규제 정책과 건강 친화 환경 디자인 계획 등의 방안을 제안했다.
비만, 중독적 측면 존재…정신적 문제, 생물적 문제,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우 교수는 비만 치료, 다이어트가 어려운 이유로 비만이 ‘중독 질환’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비만에 대한 ‘정신건강의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20세 이상 성인남녀 10명 중 4명에서 체중이 3kg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언택트 문화로 혼밥과 혼술이 늘어났고, 배달 음식 주문이 증가하면서 그런 것으로 판단된다”며 “다이어트가 실패하는 이유는 비만을 단지 식습관의 문제, 생활습관의 문제로 단순히 접근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중독 질환은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이 과활성화돼 고장 난 상태를 이야기한다. 다른 중독 질환과 마찬가지로 비만이라는 것도 중독적 메카니즘을 보인다”며 탄수화물 등 음식에 대한 복합물질 중독과 먹는 행동을 멈출 수 없는 행위 중독이 비만이라는 식이 중독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독의 특징은 ▲물질과 행위에 대한 집착과 갈망 ▲점점 커져가는 내성 ▲자극이 사라질 때 나타나는 금단현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을 수 없는 통제불능 등을 갖고 있는데, 비만환자들도 음식에 대해 비슷한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창우 교수는 “비만을 중독질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책도 중독질환에 대한 대책의 수준에서 마련돼야 한다”며 “일반 중독처럼 정신적 문제, 생물적 문제,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 비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중독 치료의 대원칙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해 나가는 것이 중독 치료이다. 비만 치료도 마찬가지다. 식이요법, 운동요법, 약물 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나아가 “비만도 중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중독 특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환자가 음식에 대한 조절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비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식을 갖고, 심리적으로 비만의 중독적 특성에 대한 인식과 환자 스스로도 비만 원인에 대한 병식을 갖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식이 문화에 대한 사회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고칼로리 세상에서 진정한 먹거리의 변화가 중요하며, 접근성이 좋은 직장과 학교, 가정에서 비만의 중독적인 측면에 대한 인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