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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사고 수사받는 선배 모습도 교육"…소아응급실 압수수색 의대생·전공의에 영향

    한림의대 허선 교수, 국제학술지서 '숨은 교육과정' 효과 지적…독립적 규제기관∙젊은 의사 대상 관련 교육 필요

    기사입력시간 2026-10-17 16:58
    최종업데이트 2026-10-17 18:46

    한림의대 허선 교수는 의료진에 대한 형사처벌과 강제수사가 의대생, 전공의들의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챗GPT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최근 논란이 된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가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필수의료 기피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국제학술지에 실렸다.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적 접근이 의사들의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의료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료사고를 조사하고 책임을 묻는 별도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한림대 의대 허선 교수는 지난 16일 국제학술지 'Journal of Educational Evaluation for Health Professions(JEEHP)'에 '한국 소아응급센터에서 진료 중 실시된 경찰의 압수수색: 의학교육과 응급의료 인력에 대한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허 교수는 지난달 30일 경찰이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에서 진행한 압수수색을 계기로 의료사고에 대한 강제수사가 의대생과 전공의의 인식, 고위험 전문과목 선택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는 “(의료사고에 대한)객관적인 조사와 적법한 법적 절차는 필수적이며 의사 역시 법 적용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도 “불가피한 임상적 결과와 범죄행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거나, 환자 진료 중 강제수사가 이뤄질 경우 그 영향은 사건에 직접 연루된 의료진을 넘어 더 광범위하게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허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의학교육에서 말하는 '숨은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정규 교육과정뿐 아니라 선배 의사들이 의료사고 이후 어떤 대우를 받는지, 고위험 환자를 진료할 때 어떤 개인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등을 지켜보며 의료전문직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과 강제수사는 이러한 잠재적 교육과정의 일부가 돼 의료인으로서 감수해야 할 위험에 대한 인식, 전문과목 선택, 고위험 진료 분야에 계속 종사하려는 의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미국 의대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55.9%가 교수들이 의료과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인식했으며, 21.6%는 이러한 위험이 자신의 전문과목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허선 한림대 의대 교수의 JEEHP 사설 첫 페이지. 사진=JEEHP 홈페이지 갈무리 

    의료 전문성 기반한 독립적 규제기관 설립해야
     
    허 교수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 추궁이 젊은 의사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영국의 하디자 바와가르바(Hadiza Bawa-Garba) 사건도 소개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였던 바와가르바는 폐렴과 패혈증을 앓던 6세 남아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2015년 중대한 과실에 의한 과실치사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영국 일반의료위원회(GMC)의 의사등록 말소 결정까지 내려졌지만 항소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영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는 GMC의 징계절차에 대한 신뢰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영국의 초기 수련의(foundation doctor) 중 곧바로 전문과목 수련에 진입하는 비율은 2010년 83%에서 2018년 38%로 떨어졌으며, 해당 사건은 젊은 의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킨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국내 사례로는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의료진이 구속됐다가 이후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7년 112.1%에서 2023년 25.9%로 급락했다.
     
    허 교수는 “낮은 의료수가와 출생률 감소 등 다른 요인도 지원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해당 사건 역시 소아청소년과 지원자 감소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은 특정 사건 하나가 전문과목 선택을 바꾸는지 여부가 아니다”라며 “이런 사건들이 젊은 의사들의 진로 결정 환경 자체를 형상하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 이후 정치권에서도 진료 중 강제수사의 적절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수사 기준 마련을 넘어 의료사고를 형사사법 절차에 의존해 해결하는 현행 구조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언제까지 원치 않는 의료 결과에 대해 의사를 피의자로 취급하면서 형사소송을 통해 대응할 것인가"라며 “환자와 의료기관의 문제 제기를 접수하고, 사실 관계를 조사하며, 임상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린 뒤 이를 교육과 감독, 징계로 연결할 수 있는 의료전문직 내부의 적절한 제도가 없다면 의료분쟁은 곧바로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어 “고의적인 범죄나 중대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사법 절차가 필요하다”면서도 “의료전문직 규제체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형사사법제도에 의존하는 것은 환자 안전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안으로는 독립적인 의료 규제기관 설립을 제안했다. 의료계의 전문성을 토대로 의료사고를 평가하고, 이후 가능한 최선의 진료를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의대생∙전공의 대상 의료사고 관련 체계적 교육 필요
     
    아울러 의대생과 전공의에 대한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허 교수는 “의료 관련 법률과 분쟁 절차에 관한 교육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의대생과 전공의에게는 의료사고 발생 이후의 의사소통, 환자 안전, 오류로부터 배우는 방법에 대한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의무기록 작성, 법적 위험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에 관한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며 “의료전문직의 자율규제가 형사재판과 어떻게 다른지, 어떤 제도를 통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은 심각한 의료사고나 의료분쟁에 연루된 의대생, 전공의, 의료진을 지원해야 한다”며 “보건의료계열 학생들 역시 의료사고 이후 심리적 고통을 겪는 제2의 피해자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며 “그러나 의료사고 이후 제공되는 심리적 지원은 여전히 분절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 교수는 끝으로 “의대생과 전공의는 의사들이 불확실성이 높은 고위험 진료를 감수할 때 사회와 선배 의사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본다”며 “환자 안전을 보호하고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는 수사, 임상적 전문성에 기반한 의료사고 대응체계는 법적 공정성뿐 아니라 미래 의사들의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의학교육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