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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왜 의료기기 산업을 선택했나

    [특별기고] 이진휴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료기기 규제연구회 위원

    안전성 검증된 의료기기에 한해 규제 혁신…중소기업 중심·환자에게 혜택

    기사입력시간 2018-07-20 16:20
    최종업데이트 2018-07-20 22:28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했다가 불법으로 고발당한 소아 당뇨병 환아 어머니 김미영씨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다. 문 대통령은 19일 의료기기 규제 혁신을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19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 갑자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앞서 문 대통령께서 직접 오신다는 소식에 반신반의하던 행사 참가자들과 업체들은 의료기기법 제정 이후 처음 있는 대통령의 단독 행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의료기기 규제혁신을 위한 문 대통령의 ‘깜짝’ 행보였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관계자들조차 행사를 준비하면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이날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 많은 이들의 질문은 ‘문 대통령은 왜 의료기기산업을 선택했는가’에 있었다.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약 6조원에 불과하다. 제약(약 22조원)이나 화장품(약 16조원), 식품(약 192조원)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작다. 하지만 대통령은 과감히 의료기기 시장을 선택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결과, 그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해석된다.  

    첫째, 의료기기 산업은 중소기업 중심의 소상공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체 의료기기 기업의 70%가 매출 10억원 미만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의료기기는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고 있고 제품 순환주기도 짧다. 소품종 다량생산을 위주로 하는 대기업에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그만큼 대기업 친화적이었던 역대 정권은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산업이다. 평소 중소기업 지향의 정책을 주장하던 문 대통령의 모습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의료기기 산업은 규모에 비해 규제 장벽이 매우 높아 다른 산업의 규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의료기기 산업은 인간의 생명과 질병을 다루는 만큼 제품 허가에서 출시까지 기본적인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 받아야 한다. 그만큼 모든 부처의 규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안전성이 보장된 의료기기에 한해 규제 혁신이 이뤄진다면 타산업군 규제의 실마리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지난 6월말 규제혁신 장관회의까지 취소한 문 대통령의 규제 혁신에 대한 의지 표명이다.  

    셋째, '사람이 먼저'라는 국정철학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의료기기 규제 혁신으로 혜택을 보는 것은 환자들이다. 아들의 소아 당뇨병으로 고통을 받은 김미영 씨는 의료기기 허가를 받지 않고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해 범법 행위로 고발을 당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은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라며 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의료기기 업계의 오랜 숙원 사업이던 '신의료기술 평가'에 대해 '선(先)도입 후(後)평가'를 하기로 했다. 의료기기는 보통 허가를 받은 다음 신의료기술평가 절차에 이어 건강보험 등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신의료기술 평가는 지난 10년동안 신기술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이중규제'였다.
     
    물론 의료기기는 사람의 생명과 밀접한 만큼 무조건적인 규제 개혁이 이뤄져선 안 된다. 정부는 일단 위험도가 낮은 체외진단 기기에 대해 선도입 후평가를 시작한다. 여기서 무리가 없는지 확인하고 확대 가능성을 판단한다. 체외진단 기기는 혈액, 분변 등 인체에서 나온 유래물질로 진단하고 의사가 최종적으로 이를 판정한다. 체외진단 기기는 신체에 직접적인 접촉이 없고 여러 단계의 진단 방법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의료기기 업계는 체외진단 기기 시장에서라도 규제 개선을 끊임없이 건의해왔다. 

    체외진단 기기 외에도 인공지능이나 3D프린터, 로봇 등 미래유망 핵심 기술의 시장 진입도 빨라진다. 우선 시장진입을 허용한 다음 3년에서 5년간 임상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하게 된다. 자금력이 약한 창업기업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한 다음 신의료기술평가나 임상근거 마련을 위해 몇 년간 시장 출시가 늦어지는 것을 개선할 수 있다. 이는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이미 관련 시장이 사장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병원에 산병(産病)협력단을 만들어 제품을 연구하고 구입하는 첨단의료기기의 생태계를 조성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시장이 없으면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사람의 생명과 밀접한 의료기기 특성상 무작정 제품을 유통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이를 위해 만에 하나 발생하는 부작용 등을 미리 대응하고 실제 의료현장에 쓰일 수 있도록 병원과 산업을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의료기기 산업의 규제는 수년간 문제로 지적돼왔다. 산업계 입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부처간 규제 일원화가 되지 않는 데 있었다. 문 대통령은 '규제 개혁을 할 수 없는 이유 100가지' 보다 '국민에게 득이 되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부처 간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번 발표가 나오기까지 관련된 정부기관들의 엄청난 의견 취합과 조정이 있었다. 이후 산업계의 의견 수렴을 위해 초대된 한국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의료기기 제조사 등은 기대감을 가득 내비쳤다.  

    이제 남은 것은 현장에서의 정착이다. 의료기기업계가 노력하고 정부가 도와야 할 과제다. 세부 규제 혁신안에 대한 협의체가 구성되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관련 규정이 정비돼야 한다. 의료기기는 환자들에게 쓰이면서 동시에 산업적인 성격도 있다. 문 대통령의 발표처럼 안전성이 검증된 의료기기에 한해 규제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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