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소재 수련병원 A 전공의는 13일 대한전공의협의회를 통해 이 같은 마스크 대란의 현실을 토로했다.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 속에 의료현장 역시 마스크, 방호복 등 보호구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부족해 재사용하는 상황 속에 불량인 보호구도 허다해 코로나19 의심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의 감염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A전공의는 "하루는 CPR 하면서 들어오는 환자 진료를 위해 급하게 레벨 D를 입고 있는데 고글이 들어있지 않았다. 환자를 눈앞에 두고 다시 새로운 보호구를 착용할 시간이 없어서 불완전한 레벨 D 상태로 진료했다"라며 "동료 전공의는 어느 날 덧신도, 고글도, N95 마스크도 없는 방호복을 마주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료를 한 다음 불안한 마음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대구에 긴급 파견된 의료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대구 지역 대학병원에서 코로나19 감염환자 주치의를 맡고 있는 B전공의는 "보호구 중에 덧신이 없어서 비닐로 발을 감고 헤어캡을 씌워서 다니고 있다. 일회용 고글도 부족해 사용 후 닦아서 재사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장에서 항상 환자들을 위한 결정을 하고 싶다. 방호복 부족으로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두렵다"라며 "격리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공급할 마스크도 부족한 상태라 환자들에게 면목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의 모병원은 마스크 재사용을 위해 아예 ‘마스크 걸이’를 만들어 두기도 한다. 심지어 마스크 지급이 전혀 되지 않는 병원도 존재한다.
A전공의는 "마스크를 어떻게 소독해야 기능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효과적인지 논문을 찾아보는 일도 있었다. 처음에는 알코올을 뿌려서 소독했지만 정전기식 마스크에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확인한 해프닝도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C전공의는 "대형병원에서조차 덴탈 마스크도 부족해 전공의든 간호사든 밖에서 사와야 한다. 특히 전공의는 병동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환자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덴탈 마스크조차 공급이 불안정하니 참담다"라고 호소했다.
이런 '마스크 대란' 상황에 보건당국은 의료계에 마스크, 방호복 등이 부족하지 않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마스크, 방호복 등 보호구가 그렇게 부족하지 않다. 마스크는 (의료진이)쌓아놓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라며 "대구의 모병원의 방호복은 하루 소비량이 200벌인데 300벌을 공급하고 있다. 방호복이 부족하다면 의료진들이 움직일 수 있겠는가"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A전공의는 "복지부가 공급했다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공급된 것이 충분한지 확인해야 한다"라며 "감염병으로 인한 위기상황이 아닐 때도 감염의 위험이 있는 환자 또는 감염의 위험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체액이나 분비물이 많이 튀는 시술을 하고 난 뒤에는 마스크를 포함한 모든 보호구를 폐기해야 한다. 그 다음 새로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른 환자를 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각 부서가 매일 재고를 걱정하고 있다"라며 "병원은 항상 응급상황이 벌어지는 곳이고 응급상황에서 보호구의 오염은 너무나 당연하다. 코로나19 외에 다른 환자도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치료받아야 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마스크, 방호복 등 부족한 보호구 신청을 받아 대구·경북 지역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런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도 진행 중이다.
대전협 박지현 회장은 "전공의들은 코로나 사태에서도 언제나처럼 최전선에서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마스크 공급에 차질이 생겨 대전협은 대한의사협회가 회원을 대상으로 모은 성금을 지원 받아 전공의들을 위해 마스크를 제공하고 있다"라며 "재고 비축을 위해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우리 의료진은 힘이 빠진다. 병원 의료진이 안전하지 않으면 환자가 위험해지고 대한민국이 위험해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