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GDP의 17%를 의료에 지출하고도 7%만을 지출하는 한국에 비해 평균 수명이 낮고, 효율성은 연간 인플레이션이 60%에 달하는 벨라루스보다도 떨어진다.
최악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미국 의료는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라는 이름의 일부 공적 보험을 제외하면 민간이 의료를 지배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위 '오바마 케어(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라는 이름의 공공의료 강화 정책을 시행해 1600만명이 넘는 미국인에게 의료혜택을 주고 어느 정도 성과(Will Obamacare cut costs? – The Economist)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 상·하원의 공격(미 하원, '오바마케어 재정축소' 예산안 통과)을 받고 보조금 지급 조항의 위법 여부에 대한 법원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모습(오바마케어 운명은…미국 대법서 보조금 놓고 격론)은 여전히 민간이 주도하는 미국 의료의 단면을 보여 준다.
'이런 미국에서만' 가능한 사건이 얼마 전 있었다.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한 기업이 미국 텍사스 주(state)의 새로운 의료정책에 대한 집행 정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민간 의료가 지배하는 국가의 원격 의료
Teladoc이 앱을 통해 제공하는 원격 의료 서비스
댈러스에 본사를 둔 미국 최대 원격의료 서비스 회사인 Teladoc은 텍사스 주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텍사스의료위원회(Texas Medical Board, 이하 TMB)를 제소했다.
이 제소는 의사가 환자를 초진할 때 대면진료(face-to-face)를 의무화한 새로운 텍사스 규정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Teladoc은 오스틴(텍사스 주의 주도) 법원에 제출한 소장을 통해 이 정책은 TMB가 텍사스 의사들을 (원격의료 서비스 회사와의)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고, 새로운 규칙은 Teladoc을 파산 직전으로 몰고 있다고 경고했다.
회사 CEO인 Jason Gorevic은 "TMB는 Teladoc에서 제공하는 원격의료가 일반적인 의사 진료에 위협이 될 정도로 커지고 나서야 행동을 취한 것이 분명하다"며 새로운 규칙이 공정경쟁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Web을 통한 Teladoc의 원격 의료 서비스
Teladoc은 전화나 화상을 통해 24시간 의사에게 접근 가능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1100만명의 사용자가 가입한 보험회사들과 함께 이 사업을 진행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텍사스에만 240만명의 고객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사업 초기엔 손실이 있었지만, 2011년 매출 640만 달러에서 2014년 4400만 달러(이 중 1000만달러는 텍사스 매출)로 빠르게 성장 중이고 IPO(기업공개)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규칙이 발표된 지금 Teladoc 고객들은 이미 회사와의 계약 갱신을 거부하고 보류 협상을 하거나 조기 종료를 요구한다고 회사 측은 주장한다.
TMB가 제시한 새로운 규칙은 6월 3일부터 적용하고, Teladoc은 소송을 통해 금지 명령을 요청한 상태이다.
'초진 시 대면진료'가 한국에서 원격의료를 찬성하는 사람조차 강조하는 '의무사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소송은 우리에겐 살짝 낯설다.
효율성이나 회사의 경제적 이유를 들어 의료 규칙을 제소하는 미국이란 나라는 자본주의적 합리성만을 강조하는 의료인에겐, 어쩌면 천국일 지 모르겠다.
이 소송이 남 일 같지 않은 이유
민간의료 서비스 회사가 의료정책 기관을 제소한 이 미국 사건은 오히려 한국인에게 더 흥미롭다.
영리법인 허용을 통한 의료 민영화나, 원격의료 모두 현재 대한민국 의료가 직면한 주요 화두이기 때문이다.
오바마케어의 효과 : 주요 질환의 의료 생산성은 상승했고, 의료 비용 상승은 멈췄다. <출처 : Economist>
여전히 민영 의료가 지배하는 미국이기에 가능한 민간 의료기관의 소송.
그런 미국에서조차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의료에 다가서려는 우리나라 정책.
이 두 모습이 '한미 FTA'라는 접점을 통해 교차하면,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고 근심을 갖게 한다.
‘오바마 케어’를 통해 공공성을 강화한 미국 의료 환경에서 입지가 좁아진 민간 보험회사와 의료 서비스 회사는 과연 어디에서 새로운 수익을 찾을지?
환자의 안전성이나 의학적 적절성이 아닌 자본주의적 관점의 '의료 규칙에 대한 제소'를 받아들이는 미국 사회의 의료에 대한 생각은 무엇일까?
(그런 맥락을 연장해보면) FTA를 통해 미국 경제가 발굴하고 있는 '경제 식민지'에서 의료 영역은 과연 예외일까?
ISD(투자자-국가소송)라는 든든한 조항이 버티고 있는 FTA 협정을 허락하고, 마침 시의적절하게 영리법인과 원격의료를 허용하려는 한국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통해 공공의료 붕괴가 빨라진 멕시코를 생각하면 기자의 '빈약한 상상력으로 만든 소설'이 전혀 터무니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민간 의료에 주도권을 뺏겨 5000만명의 '의료난민'이 발생한 멕시코 의료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 한국, 멕시코는 OECD에서 '공공 부문에 의한 의료지출' 최하위를 다투는 국가이다)
-정부는 한미 FTA 당시 공공복지는 ISD 적용 배제 사항이라고 주장했으나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라는 단서조항이 있음이 밝혀졌다. 미국 투자자가 특정 상황을 '자사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받았거나 극히 불균형적'이라고 인식하면 우리나라 정부에 ISD 제소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정량적이지 않은 모호한 표현은 약소국에 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멕시코 학자들에 따르면 1억명이 넘는 멕시코 인구 중 약 50% 이상이 의료사각지대에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