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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건강 포기하라는 건가" 소아과 감기약·해열제 등 기본약 '공급난'에 진료 차질

    타이레놀 시럽제 등 해열 감기약, 풀미칸 벤토린 등 기관지확장제 돌아가면서 '품귀'…제약사, 저출산에 생산 줄여

    기사입력시간 2023-09-01 12:33
    최종업데이트 2023-09-01 13:57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이 소아환자에게 주로 처방하는 약들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감기약, 해열제, 기관지 확장제와 위장약 등 소아환자에게 주로 처방되는 약들은 물론 일부 백신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제때 약을 처방받지 못하는 소아환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소아과 처방약 부족 사태가 코로나19 이후부터 지속되고 있고,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지만 부족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일각에선 정부가 소아건강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감기약, 해열제, 기관지 확장제, 위장약 등 기본 소아의약품 부족…"진료하기 너무 힘들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의 의약품 부족이 심각한 상태다. 

    실제로 올 6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공급 부족으로 인해 처방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의약품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어린이 해열제로 많이 쓰이는 타이레놀 계열 시럽제는 물론 세토펜이알, 부루펜 등 해열 감기약들이 코로나19가 완화된 이후에도 여전히 품귀가 심각했다.

    그 외에도 풀미칸, 풀미코트, 벤토린, 시네츄라시럽과 같은 기관지염에 사용하는 기관지 확장제와 의약품, 어린이 천식 및 알레르기비염 증상 완화에 쓰이는 싱귤레어세립, 아이 몸에 붙이는 호쿠날린 패치 등 대부분의 패치제제는 모든 제약사에서 부족했다. 또 소화관련 위장약으로 쓰이는 돔페리돈과 설사약인 하이드라섹, 2세 미만 사용가능 지사제 등도 부족한 의약품으로 꼽혔다.

    소청과 의원을 운영 중인 소청과 전문의 A씨는 "가장 소아환자들이 앓는 가장 기본적인 질환과 증상에 대한 처방약이 없다. 지금은 공급되더라도 예방접약과 시럽제, 처방약이 반복적으로 돌아가면서 부족해 처방에 어려움이 많다"며 "이렇게 소아과 처방약이 부족해진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미 코로나19 때부터 1~2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의약품 원료 수입이 잘 안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원이 약국에 약 재고를 파악하면서 진료해야 한다. 진료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한데 약 재고까지 신경 쓰면서 진료해야 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호자에게도 품절 상황을 일일이 설명해야 해 진이 빠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소청과 의원에서는 약국이 구해다 주는 약을 처방하는 상황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었다.

    또 다른 소청과 전문의 B씨는 "저출산으로 소아 환자 수가 줄어들면서 제약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재고를 털 때까지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 심지어 마진이 많이 남지 않는 소아약 생산을 중단하고 성인약으로 생산라인을 바꾸는 곳도 있다. 성인약은 대체약이 많지만 소아약은 대체약이 거의 없는데 제약사마다 소아약 생산을 줄이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그 원인을 지목했다.

    B씨는 "물가는 오르는데 아이들 약값은 매번 인하된다. 싼값에 생산을 하라고 하니 생산이 안 된다. 아이들 숫자도 매년 감소해 수요도 줄다보니 공급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 재평가 때 제약사들이 굳이 거금을 들여 수요가 줄어든 소아과 처방약을 재평가 받을 동기가 사라지면서 아예 소아과 처방약 생산을 포기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환자 감소에 소아의약품 생산 줄이는 제약사…"약가 인상 등 정부 차원에서 대책 마련해야"

    이렇게 소아과 진료가 처방약 부족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안 그래도 소아환자 진료를 포기해야 고민하고 있던 소청과 의사들은 정부에 원성을 높이고 있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이미 정부에 여러차례 소아약 부족 사태를 알렸으나 정부가 꼼짝도 않는다. 사실 정부는 저출산으로 소아환자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소아환자가 줄어들면 당연히 소아과 처방약의 수요도 줄어든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이익이 나야하다 보니 수요가 줄어든 약의 공급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진작에 보험 약가를 더 올려주는 방식으로 제약사가 손해를 보지 않고 의약품을 계속해서 생산할 수 있도록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정부는 손 놓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환자 수가 줄고, 다양한 요인으로 소아환자 진료 기피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사명감으로 소아 진료현장에 남은 의사들은 처방약 부족으로 인해 진료 스트레스가 더 쌓이고 있다. 정부에 소청과 진료 현실을 이야기해도 해소되지 않고, 아이들 치료는 더 힘들어지니까 이제는 정부가 소아건강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소아과 처방약 부족사태는 소청과 의사들이 인근 약국을 동분서주하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어 아직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큰 사회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는 것이 소청과의 생각이다.

    임 회장은 "실제로 소아에서 발생하는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인 '가와사키병'은 면역 글로불린을 제때 투여하지 않을 경우 심장 동맥 파열로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는 심각한 병이다. 이렇게 생명과 직결된 약품조차 구하기가 어렵다. 만약 이런 환자가 발생했는데 약이 없어서 사망할 경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이냐"며 "정부가 소아 건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당장 약가를 파격적으로 올리던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도 범부처 대응 필요 의약품 현황 파악 나서…가격 조정신청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도 진행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8월 초 '제2차 의약품 수급 불안정 대응 민관협의체' 회의를 개최하고 범부처 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한 의약품에 대해 식약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각각 생산, 유통, 공급 현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유통량과 공급량을 근거로 수급 방법을 모색하고 중장기적으로 실시간 수요 파악을 위한 처방·조제 정보 수집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신속한 수급 분석이 필요한 일반의약품은 의약품유통협회와 협의해 공급 보고 기한을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소아의약품과 감기약 등 코로나19 이후 의약품 부족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한 수급 불안 상황이 있다. 이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각 의약품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최근 코로나19 감기약 및 항생제 등의 수급 안정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빈도 약제의 약가 인하에서 감기약 및 항생제의 인하율은 완화하기도 했다.

    건보공단 약제관리실 관계자는 "최근 감기약, 소아의약품 수급 부족 상황이 증가하고 있어 수급 불안정 해소 및 협상 일관성, 수용성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라며 "수급 부족의 원인이 가격이라고 판단될 때 제약사의 신청에 따라 조정 협상을 진행하는데 이 때 필요한 서류 제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조정 신청을 편리하고 일관성있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