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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에서 꾹꾹 참은 한마디 '참 X같은 세상이다'

    [칼럼]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기사입력시간 2018-12-12 15:10
    최종업데이트 2018-12-12 17:49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료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흔하디 흔한 응급실의 일상을 이렇게 상세하게 적는 이유는 의료인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길 바래서입니다. 응급실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의료인이 경험하는 이른바 '진상 환자, 만취자의 응급실 내 폭언 및 폭행'에 대한 우려와 이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음성 녹취는 환자 동의에 따라 시행했습니다.  (음성 파일 자동 재생)




    [메디게이트뉴스 여한솔 칼럼니스트] 어느 날  늦은 밤, 이중으로 닫힌 응급실 문 밖에서부터 아저씨들의 심상찮은 소란이 들려왔다. 같이 온 친구와 멱살을 잡고 쌍욕을 하며 응급실에 들어오던 환자, 누구나 예상하듯 이 환자는 만취 상태였다. 보호자 역할로 같이 들어온 사람도 역시 만취자였다.

    ‘아 또 만취자구나, 머리 아프겠네.’

    이 환자는 어떻게 넘어졌는지 확인되지 않은 채 이마 쪽에 4cm 찢어진 상처가 있었고 상처 부위의 통증을 호소했다. 벌써부터 ‘올 것이 왔구나’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늘 나만 손해다. 어차피 이 환자는 내일 술에서 깨면 자기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저 환자에게 만에 하나라도 생길 수 있는 뇌출혈 혹은 골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두경부 CT검사를 권했다. 

    대부분의 만취자가 그렇듯 이 환자도 검사를 거절했다. 검사비가 많이 나올 것이라며 절대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마 쪽 상처 부위를 더러운 손바닥으로 박박 긁으며 “근데 왜 여기서 피가 나?”라고 물었다. 물론 반말이었다. 

    "상처 부위를 계속 자극하니까 피가 납니다. 만지지 마세요. 소독해 드릴게요.”

    "아니, 소독하면 돈을 내야 하잖아, 그냥 소독 안하고 갈래.”

    아니 그럼 이 환자는 대체 왜 응급실에 온 것일까. 그렇다면 일단 상처 부위는 술에 완전히 깬 상태에서 봉합하자고 말씀드렸다. 환자는 “상처 부위를 왜 꿰매지 않느냐. 환자가 원하면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함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환자분이 이렇게 협조가 안 되시니 술 깨고 봉합하자는 거에요. 소리 지르면서 반말로 욕하시는데 어떻게 제가 봉합합니까. 상처를 꿰매는 것이 급한 것은 아니니, 일단 오늘 소독해드리고 항생제 놔드릴게요. 내일 술 깨시면 그때 봉합하겠습니다. 지금 급한 것은 머리 쪽을 부딪히신 이후의 뇌내출혈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환자분이 검사를 강력히 거부하셨으니 저희도 어쩔 수가 없어요.”

    당시 이성적인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성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환자와 똑같이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는다면 나도 똑같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원하면 너는 무조건 (상처를) 꿰매야지 뭔 잔말이 많나”라고 소리치던 환자와 그 친구, 그들의 지속적인 반말과 쌍욕으로 응급실이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그냥 지켜보기가 어려워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나도 술에 취해 있으면 술 취한 사람과 하는 이야기가 즐겁지만, 맨 정신인 상태로 술 취한 사람과 정상적인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것만큼 괴로울 때가 없다. 같이 온 친구는 법적인 보호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환자의 보호자에게도 따로 연락을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의 보호자와 경찰이 병원에 도착했다.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이 환자는 더욱 흥분하면서 삿대질과 함께 여전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들을 나열했다. 과연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일까, 아니면 의사에게 욕하고 싶어서 온 것일까.

    ‘나도 욕 잘하는데, 이 분은 응급실에 와서 스트레스를 확 풀고 가시네.’ 

    그는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질렀다. 그래도 내 귀에 박히는 똑 부러진 몇 마디들. 

    “야 이 씨발놈, 개새끼야, 너는 밤길 조심해라! 내일 너는 내가 와서 죽인다.” 
    “야 그만해, 인턴이니까 저 새끼 말은 그냥 무시해 그리고 쟤 녹음하고 있다니까 형이 말하면 말할수록 불리해 그냥 말하지 마.” (친구는 만취까진 아니었나보다. 그런데 내가 인턴인 건 어떻게 알았지?)

    예전에는 사람을 ‘개, 돼지’라고 표현하는 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한 인간을 가축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두 마리의 미친 개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환자 친구의 정신이 좀 돌아왔는지 “네가 여기 있기 때문에 화를 더 돋우는 것 같다”며 자리를 피하라고 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 응급실이고, 나가야 할 사람은 진료현장에서 난동피우는  당신들입니다."

    환자의 아내가 데려온 서너살쯤 되는 딸아이가 이 껄끄러운 상황을 내내 지켜보며 엉엉 울었다. 친어머니로 추정되는 분은 격앙된 어조로 환자를 다그쳤다. 환자의 가족들은 냉기가 흐르는 응급실의 분위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응급실을 빠져 나갔다, 

    그 순간 환자는 갑자기 나에게 전속력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보호자 둘과 만취 친구 하나, 경찰 둘이 그를 막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여기서 뒷걸음질 치거나 피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인생 실전 경험(?) 차원에서라도 미동 하나 없는 상태로 가만히 이 광경을 지켜봤다. 환자의 주먹은 여러 명에 의해 제지된 다음 내 눈 30cm 앞에서 멈췄다. 그러자 그는 더 억울했는지 갑자기  상처가 난 이마 부위에 피가 철철 나도록 스스로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또 부딪혔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현장을 정리하던 경찰은 “일단 저 환자 이마에서 계속 피가 나기 때문에 저 환자를 경찰서로 데려갈 순 없습니다. 선생님도 힘들고 우리도 힘드니까(?) 일단 환자를 귀가 조치시키고 내일 경범죄로 티켓을 끊고 계도하겠습니다.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진료 방해로 고소를 한다면 민원실에 전화해서 녹취된 음성파일과 CCTV 자료를 갖고 고소장을 접수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또 다른 신고현장을 향해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아빠’를 부르짖는 예쁜 딸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슬프게 들렸는지 모른다. 

    상황이 정리된 다음 5분이 지나서 배가 아프다던 다른 환자가 응급실을 내원했다. 30분간의 아수라장을 경험했으면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 환자에게 언제부터 배가 아팠는지, 배가 어떻게 아픈지 묻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쩔 수 없었다. 배 아픈 환자가 무슨 잘못이 있나.

    응급실에서 난동을 피우는 환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것은 그저 의료인의 안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응급실에 함께 있을 또 다른 환자들의 안전과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치료할 의무가 의사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모든 환자는 의사에게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공개적인 지면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끄럽다. 하지만 그래야 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차마 말로는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탄식으로 이 글을 맺는다. 

    ‘참 개 같은 세상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