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의정(醫政) 대화 파국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특별칼럼]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

    파국 책임 묻기보다 대화가능한 법적 구조 만들어야

    기사입력시간 2018-04-03 06:29
    최종업데이트 2018-04-04 07:59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료왜곡, 어디서부터 무엇 때문에 시작된 것일까 

    의료를 잘 아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의료가 심하게 왜곡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왜곡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료왜곡은 오랜 세월을 두고 진행돼 온 것입니다.

    의료왜곡의 원인은 의사들의 이기심 때문일까요? 의사들만 이기적일까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나름의 이기적인 마음이 없을까요? 사람의 인성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잘못 보는 출발점입니다. 이는 잘못된 정책의 출발입니다. 이기심이 문제라며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럼 의료정책을 집행하는 복지부 공무원이 일부러 의료를 왜곡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복지부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하면서 주어진 한계 내에서 문제를 풀어 가려고 합니다. 복지부 공무원들은 늘 그런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문가입니다. 의사들이 복지부를 상대로 이말 저말 비판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앉혀놓으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다면 의료왜곡은 왜 왔을까요? 행위별수가제 때문일까요? 아직도 의사 수가를 행위별 수가제로 지불하는 나라는 많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병원 수가와 의사 수가를 분리해 병원 수가는 포괄수가제로, 의사 수가는 행위별 수가제로 지불합니다. 행위별 수가제가 문제라면 이들 나라의 의료가 모두 왜곡됐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나아가 행위별 수가제가 아닌 인두제가 의사에게 더 유리한 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환자수에 따라 일정한 금액을 받는 제도가 인두제입니다. 의사가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모든 수가제는 나름의 장단점이 있고 맥락에 따라 좋은 제도 또는 나쁜 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왜곡은 도대체 왜 왔을까요? 이는 복지부 공무원이 일하는 ‘주어진 환경‘ 때문에 야기된 것입니다. 정치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많은 걸 해 줄 수 있다고 떠듭니다. 그렇게 표를 모읍니다. 기획재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지원이나 건강보험료율 인상을 억제합니다. 돈은 없는데 국민에게 뭔가를 해 주거나, 해줬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복지부 공무원의 머리는 늘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건강보험은 의료보장이고 이는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만든 제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만든 기본권, 인권, 의료보장 등의 개념을 도입해 발전시켜 왔습니다. 매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보험 보장률을 언급하는 것도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배운 것입니다.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료보장을 위해 의사나 의료기관을 강제로 동원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스스로 할 수 없는 사람에게 국민을 연대시켜 혹은 국가가 세금으로 의료서비스를 보장해 주는 제도입니다. 의료보장을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관념은 서구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와 의사, 국가와 의료기관의 관계는 계약에 의해 정해집니다. 계약이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를 들어, 한미 FTA 협정은 일종의 국가간 계약입니다.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강하게 우리나라를 압박합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 조건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모저모를 따져 보고 한미 FTA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면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도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가는 불균형적인 협정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만일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강제계약을 체결할 국제법적 권한이 있고 우리나라는 그걸 거부할 수 없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그런 강제계약이 계속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아마 예측 가능할 것입니다. 
      
    복지부, 정치인이 약속한 혜택을 국민에게 실현하는 묘수를 짜는 일  

    다시 복지부 공무원이 일하는 ‘주어진 환경’을 생각해 봅니다. 기재부가 정한 재정 지원과 의료보험료율의 한계 내에서 정치인, 대통령이 약속한 혜택을 국민에게 주어야 하는 묘수를 짜 내는 게 복지부 공무원의 일입니다. 꾸역꾸역 주어진 돈의 한계 내에서 공무원이 보기에는 조금 불합리할 수 있지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안을 의료계에 제안합니다. 여기에 관변(官邊) 학자들이 일조를 합니다. 언론도 의사의 비리를 터뜨려 여론을 관리해 나갑니다.
      
    의료 시장의 리스크(위험)를 짊어지지 않는 복지부 공무원에게 '적자'라는 말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원가 보전이 안 되는 수가의 의미조차 복지부 공무원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아 보입니다.  
      
    원가 이하의 수가라는 것이 시장경제에서 가능한 일인가요? 불가능합니다. 의료기관은 경영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 자체를 강요한다는 것은 비윤리이며 양심 없는 행위입니다. 복지부 공무원은 여러 가지 논리로 이를 정당화합니다. ‘공익이란 게 있잖아’, ‘비급여도 있잖아’, ‘장례식장도 하고, 주차장도 하잖아’. ‘의료 행위량도 늘리잖아’ 등입니다. 여기에 관변학자들이 또 일조합니다. 
      
    복지부 공무원이 생각하는 ‘조금 불합리한 안’이라는 것은 사실 시장경제에서는 작동할 수 없는 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 공무원은 그게 ‘조금 불합리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한계 내에서 일을 하려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당연히 자유로운 계약관계라면 의사, 의료기관은 이 계약을 거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은 의사, 의료기관이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법으로 강제가 가능합니다. 사실 거의 모든 걸 다 강제로 할 수 있습니다. 법과 공익의 이름으로 가능합니다. 
     
    법의 이름으로 다 할 수 있는데 복지부 공무원과 의사, 의료기관 사이에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질까요? 사실 의정(醫政) 대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은 이런 표현이 황당할 수 있습니다. ‘매번 의사 대표들 만나서 온갖 불만을 듣고 있어야 하는데, 대화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분명 복지부 공무원과 의사 대표 사이에 말은 오갑니다. 복지부 공무원은 말 자체를 늘 세련되고 합리적으로 합니다. 의사 대표들은 어찌 그리 세련되지도 못하고 자기 말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지요. 그러나 그것은 법적 의미에서 대화가 아닙니다. ‘관리’일 뿐입니다. 강제적으로 모든 걸 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지부 공무원이 하는 것은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가 아니라 관리입니다. 그래도 대화는 대화 아니냐고요?
     
    만일 한미 FTA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제적인 협정을 맺을 권리가 있고 우리나라가 그걸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르고 달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건 대화가 아닙니다. 
     
    복지부와 의료계 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아 

    복지부 공무원과 의사 대표 사이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들어주고 여론을 관리하고 의사의 반발을 적당히 무마하고 진행하면 됩니다. 이러한 법적 구조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진실로 대화를 하려는 공무원도 존재할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랬다가는 협상이 성립하지 않을 것이고, 해당 공무원은 무능한 공무원으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복지부와 의사, 의료기관 사이에는 조금 불합리하지만 사실상 강제로 협상이 이뤄집니다. 이렇게 의료는조금씩 왜곡됩니다. 담당 공무원은 주어진 한계 내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문제를 풀어갔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한 공무원이자 훌륭한 공무원입니다. 그러나 의료는 조금씩 왜곡됩니다. 의료기관도 손해를 보거나 망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불합리한 안을 받아들이고 다른 데서 벌충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적당히 환자에게 다른 명목으로 돈을 받아내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됩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새로운 의정협상이 이루어집니다.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의료는 이렇게 왜곡돼 갑니다. 
      
    이것이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 특유한 의료왜곡의 진실한 기전입니다. 서구의 민주주주의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제계약으로 의료의 모든 것을 해결해 온 그것이 바로 의료왜곡의 주범입니다.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 냄비 속에 놓인 개구리처럼 뭔가 잘못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서서히 죽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냄비 속을 탈출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혹자는 의사가 강제계약을 거부해 의료보장이 마비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사실 국가가 재정을 투여해 공공병원을 만들고 운영해야 합니다. 서구의 민주주의 사회가 그렇게 해 왔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해법입니다. 공공병원은 공공병원의 역할을 하고 민간병원은 민간병원의 역할을 하는 게 서구의 의료보장체계, 의료체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공공병원을 늘리냐고요? 그건 쉽지 않지만 어렵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의료의 공익성이 높다면서 공공병원도 제대로 세워 유지하지 않는다는 것, 참으로 모순입니다.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규모가 되기 이전에도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공공병원을 짓고 운영해 왔습니다. 양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담을 의료부문에 전가해온 것입니다. 그 또한 의료왜곡의 원인입니다. 
      
    그래도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요? 의사가 계약을 거부해 의료보장이 마비되면 어떻게 할까요? 제대로 된 해법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방법은 있습니다. 그것은 중재제도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통상 중재는 양 당사자가 대표를 한 명씩 내세우고 양 당사자가 동의하는 제3의 인물을 합해 3명이 중재부를 구성합니다. 이렇게 하면 복지부도 합리적 계획을 내놔야 하고 의료계도 합리적 수가를 요구해야 합니다. 각자가 자료를 근거로 설득해야 하며 최소한의 일방적인 계약을 막을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중재부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의료 보장이 마비되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8월 9일 보건복지부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제목은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건강보험에서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도를 하니 국민은 모든 비급여를 다 보장한다고 이해합니다. 그런 뉘앙스로 보도한 언론도 많습니다. 그러나 복지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2022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힙니다. 빠져 나갈 틈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나중에 이 정책을 비판하면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가 전체가 아닌 70%라고 했다고 밝힐 것입니다. 

    의정대화 파국, 책임 묻기보다 대화 가능한 법적 구조 만들어야
      
    의학적 비급여를 다 보장해주면 건강보험 보장률 70%라는 수치가 나올까요? 근거 없는 일방적 수치일 뿐입니다. 사실 이런 수치를 만들 때도 의료계와 근거를 놓고 협의를 했어야 합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비급여를 다 없애겠다고 하니 보건복지부가 70%로 하자고 속도를 조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비급여가 다 없어지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어 놓고 의료보장률 70%라고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겁니다. 
      
    더 중대한 문제는 70%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이루기 위해 건강보험의 보험료율을 얼마로 올릴지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없애겠다는 선언, 그러나 건강보험 보장률은 70% 정도일 것이라는 핑계거리, 게다가 의료보험료율은 얼마로 할지를 애매하게 처리라는 꼼수. 정직하지 않는 정책 계획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의사라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출(건강보험 보장)은 분명하게 선언하고 수입(건강보험료율)은 말을 하지 않은 계획을 믿을 수 있을까요?
      
    중재라는 제도를 이용해 최소한의 합리적 운영이 보장된다면 지출(건강보험 보장) 계획은 있으면서도 수입(건강보험료율)계획이 없는 정책계획은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이런 법적 구조가 의료왜곡을 막는 기전입니다. 
      
    중재를 통해 실질적인 타협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의료계도 수가인상 수준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 전망이 분명하게 밝혀진다면 타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건강보험 구조는 많은 부분이 불투명합니다. 다만 복지부 공무원,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의 신분이 유지되고 월급이 지급될 것이라는 예측 정도만 가능합니다.
      
    의정대화 파국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를 두고 서로 비난하기 보다 진정한 대화가 가능한 법적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또한 서구의 민주주의 사회가 모두 시행해 온 방법입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