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취재파일] "정부 정책은 그대로, 의사들은 무기력" 의료정책에 관심 있는 의사들이 지쳐간다

    "잘못된 의료제도 바로잡고 근거 만드는 바른의료연구소와 같은 활동이 지속되길"

    기사입력시간 2019-09-30 11:19
    최종업데이트 2019-09-30 11:45

    사진=800쪽 분량의 바른의료연구소 활동백서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바른의료연구소는 어떤 단체인가요?” 취재현장에서 상당히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특히 연구소가 이대목동병원 사건에서 의료진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10여차례 보도자료를 내면서 이대목동병원 교수들은 물론 피고인으로 지목된 의료진까지 연구소를 궁금해했다. 실제로 해당 보도자료가 피고인 변호사들 변론에 대거 인용되면서 무죄 판결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연구위원들은 해당 의료진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무죄 주장의 근거를 찾기 위해 몇날 며칠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관련기사=이대목동병원 무죄 판결, '바른의료연구소'의 눈부신 활약상]

    연구소가 한방 의료기관의 허위과장광고나 H제약사, D제약사 등의 건강기능식품 허위과장광고로부터 문제제기를 할 때는 상대 측으로부터 “연구소 연구위원들이 누군지 알 수 없다. 실체가 없는 단체의 주장을 기사로 내선 안 된다“라며 의도적인 폄하를 하기도 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대한민국 의료계 생태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의료계가 제대로 된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합의해주거나 질질 끌려가고 있다는 인식에서 2017년 2월 출범한 의사단체다. 오직  순수한 열정으로 올바른 의료정책을 주장하고 위기에 처한 의사동료를 돕느라 애썼다. 이런 단체가 2년 7개월간 활약한 내용을 담은 활동백서가 무려 800여쪽에 이르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른의료연구소 김성원 초대 소장의 활약도 대단했다. 그는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지자체, 보건소 등을 상대로 정책을 폭넓게 비판했다. 2년 7개월동안 연구소 이름으로 400여건의 민원 신청과 480건의 정보공개청구, 3건의 정부 의견서, 16건의 감사원 감사제보 등을 한 것은 대부분 김 소장의 몫이었다. 그의 진료실을 두어차례 방문했을 때 환자 진료 틈틈이 각종 민원과 정보공개청구를 시행하고 있었다. 심지어 휴일에까지 나와서 일을 할 정도로 문제제기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각자의 이익은 물론 의료계 내부의 직역이나 진료과간 이익에 얽히지 않았다. 연구소장과 연구위원들은 별도의 활동비를 받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의료계 일부에서 연구소를 보고 정치적 목적의 단체라며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연구소는 설립 목적에 맞게 올바른 의료정책에 나섰고 분명한 성과로 보여줬다. 

    진작부터 의료계에 왜 이런 단체가 없나 생각해왔다. 아니,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이를 보고 분발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분석하고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정부에 끊임없이 민원신청과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노력이 눈물겹다. 바른의료연구소 보도자료를 보면 논문인지 보도자료인지 분간이 안될 때도 많았다. 보도자료가 어려운 이유는 주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따른 근거자료를 충실히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던 김성원 소장이 지쳤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열악하다. 실질적으로 여전히 지자체 한방난임 사업은 지속하고 있고 이대목동병원 사건은 검찰로부터 제기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를 상대로 추나요법 고시 무효 소송을 진행하지만 여기에 따른 비용과 노력이 소요된다. 

    이 곳 뿐만 아니다. 의료정책에 관심있는 의사들이 지쳐간다. 각 시도의사회나 진료과의사회에 소속된 의사들조차 하나둘 지쳐간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책은 흘러가고 대한의사협회의 투쟁 전략은 마땅치 않아 무기력하다고 호소한다. “이제 더 이상 의료정책과 같은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라고 말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바른의료연구소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의사들이 지치지 않고 꾸준히 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은 없을까. 의료계 내에서 이런 활동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방법은 없을까. 주목할 만한 결과라면 의협 등과 시너지를 낼 방법은 없을까. 바른의료연구소 활동백서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제2, 제3의 바른의료연구소가 나오길 기대하기는 무리일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