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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분 못하는 ‘여성’ 흉부외과 의새가 되었습니다

    [칼럼] 익명의 여성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

    기사입력시간 2024-02-21 15:48
    최종업데이트 2024-02-21 15:56

    챗GPT가 그려준 수술하는 여성 흉부외과 의새(의사+새). 사진=필자 제공

    [메디게이트뉴스] 나는 뉴스도 잘 못 보고, 정치에도 큰 관심이 없는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의사다. 의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며 흉부외과 의사를 꿈꿨다.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수술이 너무 멋있어 보였기에 열정 하나로 흉부외과에 지원했다.
     
    내 최근 일상을 말해 보자면 이렇다. 지난 주말에는 금요일 오전 7시에 정규 업무를 끝낸 후 당직을 섰고, 중간에 콜을 받으며 침대에 등을 붙인 시간은 3시간 남짓했다. 토요일 오전 9시에 다음 당직자가 출근한 후 인계하고 퇴근했고, 다음 날 오전 8시에 다시 출근했다. 모두가 쉬는 날이라 혼자 회진을 돌고 처치한 후, 오후부터는 중환자실의 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1분도 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한 채 환자 곁을 지켰다.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 채 아침이 됐다. 이후에도 수술 4개의 보조의로 참관하고, 당일 수술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한 후 월요일 저녁 8시가 돼서야 퇴근을 했다.
     
    일전엔 혼자 당직을 서다가 예상하지 못한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던 적이 있다. 추가 당직자가 병원을 나오긴 했지만, 소생술 후 에크모를 넣고, 원인 확인을 위한 검사들을 조율∙진행하고, 추가적인 시술을 하느라 화장실 한 번을 못 가고 하루를 보냈다. 보호자 설명까지 마치고 첫 끼니를 먹은 게 밤 11시였다. 그래도 2주쯤 지나 환자분이 걸어서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는 힘들었던 건 생각나지도 않았다. ‘역시 흉부외과 하길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어제 복지부 차관의 브리핑을 듣게 됐다. 여성이라 남성보다 근무시간이 적다. 여성 의사가 많아지고 있어 의사 수를 더 적게 계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은 경제활동 인구조사 계산을 할 때도 1인 미만으로 간주했던가? 나는 여자 전공의지만 아직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았다. 복지부 차관의 말대로라면 나는 의사 1인분의 역할을 계속하기 위해선 결혼도, 출산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흉부외과에는 여성 의사들도 많다. 결혼하신 여자 선배님들도 있고, 아이가 있는 여자 선배님들도 있지만, 내가 아는 한 그 선배님들 중 단 한 분도 가정, 출산, 육아를 사유로 들며 다른 남성 선배님들에 비해 짧게 근무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단 한 번도 여자 전공의라는 이유로 남자 전공의에 비해 짧게 근무하거나, 체력 소모가 더 적은 수술에 배정되지 않았다. 성별과 관계 없이 수련의로서 동일한 근무를 했다.
     
    평소 병원에선 여성이란 이유로 간호사님이라고 불릴 때도 많다. 가끔 중년의 남자 환자들은 ‘네가 뭘 아냐’고 대놓고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면 그저 자기소개를 다시 하고, 내가 비록 처음 보는 얼굴이더라도 환자분의 상태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설명드리다 보면 오해는 풀린다. 덕분에 퇴원할 때는 환자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많이 들어 다행이지만, 남자 전공의들은 그렇게 오해를 풀 일조차 생기지 않긴 한다. 종종 “여자인데 이런 일 어떻게 해요”라며 걱정해 주시는 얘기도 듣지만 “이래 보여도 힘이 좋아요”라며 웃어넘기는 일도 있다.
     
    평소에도 그렇게 몸소 차이를 느끼지만, 그저 개인의 문제라 생각했다. 전공으로 흉부외과를 선택했을 때 그런 일이 있을 거란 걸 어느 정도 예상하기도 했고, 그걸 극복하려면 실력을 더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각오도 했다. 주위로부터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나는 흉부외과 하면서도 결혼할 거고, 무조건 애는 2~3명은 낳을 거야. 만약에 응급수술이 생기면 남편이 봐주겠지, 남편도 바쁘면 뭐… 그냥 애들 데리고 병원 가야지. 내 애들은 나 닮았으면 어디 둬도 몇 시간이고 잘 놀고, 잘 잘 거야”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의새 발언까지도 “그냥 실수였겠지 설마…”하며 속상하긴 했지만, 유행하는 의새 AI를 그리며 넘겨보려 했다. 좋아하는 일이라 힘들다는 주변의 걱정에도 고집하며 하던 일인데, 나라로부터는 비하 받는 존재가 됐나 싶었다. 여태까지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지난 2020년에는 공공재라 불리었고, 이제는 의새가 됐다. 그런데 이제는 여자라서 1인분을 못 한다는 발언까지 듣는다. 
     
    ‘여자인데 할 수 있겠어?’라는 얘기를 숱하게 들으면서도,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 의사들이 있다. 복지부는 이런 여성 의사 모두를 비하했다. 한 명의 여자 의사로서 정말로 힘이 빠지고, 우울할 따름이다. 이렇게 대놓고 비하하는 정부 아래에서 낙수과 여자 의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나의 오만이었나 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