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조선시대 의원은 '갑'이었을까?

    의료윤리연구회, 신동원 교수 초청강연

    조선 '의방유취' 등 '의자'의 바른길 제시

    기사입력시간 2015-03-04 06:23
    최종업데이트 2016-05-16 16:41

    "훌륭한 의사는 병을 치료할 때 반드시 정신을 안정하고, 의지를 든든히 할 것이고, 어떠한 욕심이나 바라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세종 때 발간한 동양 최대의 의학사전인 '의방유취(醫方類聚)'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의료윤리연구회는 2일 카이스트 신동원(인문사회과학부) 교수(위 사진)를 초청해 '한국 의료윤리의 역사적 고찰'을 주제로 강좌를 열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의방유취'는 '병이 나서 고쳐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직위의 높고 낮은 것, 돈 있고 없는 것, 어른과 아이, 잘 생겼거나 못생긴 것, 원한이 있는 자와 벗, 자기 민족과 다른 민족, 똑똑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가리지 말고 다 자기의 살붙이처럼 똑같이 대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방유취'에 나와있는 조선시대 의원(한의사)의 덕목은 또 있다. 
     

    '환자의 집에 가서는 아름다운 비단과 천에 눈을 팔지 말 것이며,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환자가 한시도 참을 수 없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의사로서 태연하게 오락을 즐기며 오만하게 있을 수는 없다'
     

    '의사 노릇을 옳게 하려면 말을 많이 해서도 안되고, 함부로 웃어서도 안되고, 농담을 지껄이거나 시끄럽게 해서도 안된다. 시비에 간여해서도 안되고, 인물평 하기를 즐겨서도 안된다. 다른 의사를 비난해서도 안되며, 오직 자신의 덕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
     

    신동원 교수는 "당시 의원들이 바르게 행동했다면 의료윤리라는 게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즉 '의방유취'를 다시 해석하면 의원이라는 자들이 심할 정도로 고위직과 돈을 쫒고, 환자의 집에 가서는 아름다운 비단에 눈을 팔고,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오락을 즐겼다는 것이 된다.

     

    심지어 말을 많이 하고, 시끄럽고, 다른 의사를 비난하기를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의학연구에도 몰두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의원들의 이런 행태를 실랄하게 비판했겠느냐는 게 신 교수의 설명.
     

    조선시대 의원들 역시 환자들 앞에서는 '갑'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세조는 의원을 △사기꾼 △살인자 △용렬한 자 △양심있는 자  △덕을 베푸는 자 △인격이 높은 자 등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의원 대부분을 사기꾼, 살인자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의학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불리는 '의원정심규제(醫員正心規制)'를 제정한 것도 이런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한다.
     

    '의원정심규제'란 의원이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하는 규칙을 의미하며 이석형 대사헌이 제정했다.
     

    1456년 이석형이 전라감사로 부임해 민정을 살피던 중 '장덕' 이라는 의원이 환자를 소홀히 대하고, 교만하고, 권력자만 쫒고, 약값도 비싸게 받아 원성이 높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의 피해가 막심하고, 소요사태까지 벌어지자 민폐사실을 조사해 장덕 의원의 죄상을 가려 처리한 후 의자(醫者)들의 올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해 '의원정심규제'를 제정해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의원정심규제에 따르면 의원(醫員)은 환자의 조건이나 빈부고하를 차별하지 말고 진료에 정성과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의술(醫術)은 인술이니 은혜로 베풀 것이며 축재의 상술로 삼지 말 것이며, 의도(醫道)는 정직하게 진료하고 병의 원인 등 환자의 부끄러운 것을 발설하지 말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조선 후기 관리였던 의원들이 녹봉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근무외 시간을 이용해 고위직, 부자들을 진료하면서 부를 축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의료윤리연구회 한 회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저수가로 묶어놓고 비급여로 수입을 보존하도록 하긴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한편 일제시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오긍선 피부과 교수는 의사가 될 졸업자에게 3가지를 당부했다.
     

    △돈버는 의사가 되지 말고, 병 고치는 의사가 되라 △졸업하고 바로 개업할 생각 말고, 고명한 선배 밑에서 몇 년 더 의술을 연마하라 △도시 중심으로 모이지 말고, 지방으로 시골로 가라.
     

    신동원 교수는 "바람직한 의사 상은 역사에 따라, 사회 체제에 따라 변해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