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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규하는 분만 의사들 "10년 뒤 아닌 현재 문제부터 해결해야"

    대한모체태아의학회·주산의학회·산부인과초음파학회·분만병의원협회, 분만사고 보상법 개정, 수가 현실화 등 요구

    기사입력시간 2024-06-05 08:23
    최종업데이트 2024-06-05 08:23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분만 의사들이 분만인프라 붕괴를 호소하며 10년 뒤 의료를 위한 의대증원이 아닌 분만사고 보상법 개정과 수가 현실화 등 당장 현장이 느낄 수 있는 정책 추진을 요구했다. 또한 산부인과 교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대증원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주산의학회,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대한분만병의원협회는 4일 서울 중구 상연재 시청역점에서 '붕괴된 출산인프라, 갈 곳 잃은 임산부 절규하는 분만 의사들'을 주제로한 기자회견을 개최해 이같이 밝혔다.

    분만인프라 붕괴 피해는 곧 국민의 '재앙'…분만사고 보상법 개정, 수가 현실화 등 요구

    이날 대한분만병의원협회 신봉식 회장은 "산부인과 인프라가 붕괴를 넘어 멸종위기에 치닫고 있다"며 "나라가 OECD 국가라는 옷을 입었지만 실제로는 개발도상국, 후진국의 형태다. OECD 국가에 맞지 않는 게 현 분만인프라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신 회장은 "분만 환경이 어렵다는 사실은 10여년 이상 소리쳤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도 개선되지도 않았고, 결국 오늘날 분만인프라는 무너졌다. 골든타임이 임박한 게 아니라 지났을지 모른다"며 "남아있는 산과 의사들은 현장을 지킬테지만, 의대생과 전공의가 산과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안전한 분만 환경 만드는데 이바지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모체태아의학회 김영주 회장은 긴급 성명서를 통해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의 부재 ▲기존 분만 병의원의 폐업 ▲워라벨, 인력 부족을 대한민국 분만인프라 붕괴 원인으로 꼽으며, 4가지 안을 요구했다.

    김 회장이 요구한 안은 ▲불가항력 분만사고 보상법 전면 개정 ▲분만 수가 현실화 ▲산과 의사 관련 인력 양성 지원 ▲분만 인프라 재구축 등이다.

    김 회장은 "분만인프라 붕괴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이 땅의 현재 또는 미래의 임산부"라며 "그들이 갈 곳이 없고, 돌볼 의료진이 없다는 것은 모든 국민과 가정에 비참한 재앙이다"라고 규탄했다.

    그는 "보상 재원을 전액 국가가 부담하고 현실적인 보상금 규모를 책정하는 등 불가항력 분만사고 보상 법의 전면개정이 필요하다. 또 분만병의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분만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이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산과 의사와 관련 인력 양성을 지원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분만인프라를 재구축하고, 지역별 분만 병의원 수를 적정 수준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대안암병원 홍순철 교수(대한주산의학회)는 1년 전체 분만 23만건 중 산모 사망은 50건, 뇌성마비 발성은 50건으로 1년에 약 100건의 분만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의사가 기본적인 역할을 다 했음에도 나타나는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불가항력적 사고가 아닌 분만사고에도 보상이 필요하냐는 질의에 의사를 소방관에 비유하며 "의사는 불을 내는 사람이 아니다. 소방관이 불 끄기에 실패했을 때 책임을 묻는다면 소방관은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 분만 시스템은 이런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젊은 인력이 유입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박인양 회장은 사고 해결을 위한 중재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일본같이 사고를 당한 환자나 보호자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정부는 의사를 만나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며 "유럽은 의사를 고용한 주체가 정부기 때문에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사와 환자가 직접 해결하라고 하고 지켜만 본다.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분만인프라 붕괴는 오늘의 문제, 10년 뒤 미래 의료 생각한 의대증원으로는 해결 안돼" 

    이날 의료계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증원 정책은 분만인프라 붕괴를 늦출 수 없다며, 고위험 산모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순철 교수는 "분만인프라는 당장 오늘의 문제다. 의대증원이 추진되면 10년 뒤에나 의사가 배출된다. 그때까지 산부인과에 남아있을 사람이 있을지를 추정하는 것은 의미 없다"며 "현재 문제는 지역 임산부, 고위험산모 등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정부에 요청한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대증원은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고 말했다.

    대한주산의학회 오수영 학술위원장은 의대증원 시 이들을 가르칠 교수가 없다며, 교수 양성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오 위원장에 따르면 2032년 산과 교수 인원은 현재의 76% 수준으로 감소한다. 2041년에는 36%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이는 현 임상조교수가 이탈하지 않고 모두가 65세까지 근무한다는 가정 하에 계산된 수치다. 최근 산과 교수 이탈이 계속 이어지는 만큼 교수 감소세는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오 위원장은 예상했다.

    오 위원장은 "교수 감소는 분만 전문인력 교육의 위기"라며 산과 신규 교수가 양성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대증원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오 위원장은 "현재 주요 의과대학 산과 교수는 약 11명이다. 학생은 800명이다. 의대증원이 추진되면 학생은 약 1600명이 된다. 하지만 이들을 가르칠 교수가 없다. 스승이 없는데 이들이 어떻게 배울 수 있냐"고 반문했다.

    이어 "한 대학병원에 산과 교수는 5~6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당직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 시스템에서 후배들은 '교수님처럼 못 살겠어요'라고 하면서 그만둔다"며 "산과 교수 확보를 위한 방안을 정부 관계자는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주 회장은 전공의 복귀 가능성에 대해 "전공의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대목동병원의 경우 피부과, 마취과 등에는 한두명씩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내외산소'과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들의 복귀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들이 실제로 사직할 경우 남은 인원이 매일 당직을 서야하는데 이들 역시 언제 그만둘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