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기능 개편을 둘러싸고 정부와 요양병원계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군으로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복지부 방침에 대해 요양병원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
요양병원들은 정부 안대로 환자 분류군을 개편하고, 장기입원 억제 정책을 시행할 경우 40~50%의 환자들이 이탈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8개과 전문의 가산제도를 개선하면 의사인력 수급과 연봉에도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요양병원 환자군은 △의료최고도 △의료고도 △의료중도 △의료경도 △문제행동군 △인지장애군 △신체기능저하군 등 7개 그룹으로 나눠지고, 각 군에 따라 수가를 달리하고 있다.
복지부가 불편하게 보는 대목은 경증환자일수록 재원일수가 길고, 20~30%는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생활 주거적인 ‘사회적 입원’이라는 점이다.
평균 재원일수를 보면 의료최고도 환자들이 63일인 반면 인지장애군은 106일에 달한다.
복지부 손영래 보험급여과장은 이를 ‘아이러니’ 하다고 표현했다.
여기에다 인지장애군 환자 비율만 보더라도 2008년 8.7%에 불과했지만 2013년에는 무려 31.5%로 높아졌다. 그만큼 요양병원 입원환자들이 경증환자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환자 분류군을 4단계(의료최고도, 의료고도, 의료중도, 의료경도)로 통합하고, 입원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문제행동군, 인지장애군, 신체기능저하군이 속해 있는 하위 20~30%에 대해서는 외래진료로 전환하거나 낮병동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요양병원이 생활주거적 요양시설화 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또 정부는 장기입원을 통제하기 위해 수가 차감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환자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환자가 181~360일 입원하면 입원료 5%가, 361일 이상이면 입원료 10%가 차감된다.
이를 입원 121~180일, 181~360일, 361일 이상 구간에 따라 정액수가 5%, 10%, 15%를 인하하고, 환자 본인부담률 역시 각 구간별로 30%, 40%, 50%로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요양병원 입원환자에 대해서는 본인부담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손영래 과장은 "본인부담상한제는 예기치 못한 중증질환으로 인해 가계가 파탄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인데 예측가능한 질병의 의료비 할인제도에 적용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환기시켰다.
이렇게 되면 일단 경증환자 비율이 높거나 병상 규모가 적은 요양병원일수록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기에다 장기입원 수가 차감제 강화 및 본인부담금 상향 조정, 본인부담 상한제 폐지 등을 함께 시행하면 입원환자 40~50%가 요양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고, 이는 요양병원 줄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 안대로 하면 요양병원의 사회적 입원이 감소하고,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 중심으로 기능이 재편될까?
요양병원들은 복지부와 전혀 다른 예측을 내놓고 있다.
노인요양병원협회 손덕현 부회장은 "일부 환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아 요양시설로 갈 수도 있지만 치료가 필요한 대부분의 환자들은 다른 요양병원으로 옮기거나 급성기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어 환자들만 불편하고, 되레 건강보험 재정 부담만 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요양병원들은 일당정액수가에 묶여있다 보니 가급적 검사를 줄이지만 급성기병원은 저수가를 보존하기 위해 이런 저런 검사를 늘릴 수밖에 없어 오히려 환자 부담과 건강보험 재정이 더 들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 중심으로 요양병원 입원환자 분류군을 개편하더라도 장기입원 본인부담금을 높이고,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 복지부가 육성 대상으로 정한 ‘질 높은 요양병원’까지 문 닫는 결과를 초래할 여지도 없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필요인력(의무기록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수가 가산을 폐지하면 이들은 요양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2014년 4분기 기준으로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필요인력을 보면 물리치료사가 5399명, 방사선사가 774명, 의무기록사가 712명, 임상병리사가 481명, 사회복지사가 1322명이다.
요양병원계는 복지부가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인력 수가 가산을 폐지하되 적정성평가 인센티브로 보상하겠다고 하자 수가를 인하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복지부는 2010년부터 요양병원이 내과,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등 8개과 전문의를 채용하면 20% 가산된 입원료를 지급했다.
하지만 이런 전문의 가산과 의료의 질이 상관관계가 없다고 판단, 가산 대상 전문의 제한을 두지 않기로 방향을 정했다. 일정 수의 전문의만 채용하면 가산하겠다는 것이다.
손덕현 부회장은 "복지부가 적정성평가 결과를 근거로 8개 전문의 채용과 의료의 질적 상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적정성평가 평가문항을 보면 의료의 질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어 그는 "요양병원에서 8개 전문의는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필수과목인데 전문의 제한을 없애면 월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전문과목 의사들을 중심으로 채용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하면 의료의 질이 좋아지겠느냐"고 되물었다.
현재 요양병원에 재직중인 의사는 모두 4331명.
요양병원 도산이 늘어나고, 수가 가산 대상 전문의 제한이 사라지면 의사들이 일시에 시장에 나오게 돼 인력수급과 연봉 하락이 불가피하다.
"정부, 수가 인하 위한 임시방편 의심"
정부가 이 같은 요양병원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했지만 의료의 질이 높은 상위 그룹과 원가에 못미치는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책에 대해서는 함구하자 ‘결국 전체 수가를 인하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의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손 부회장은 "복지부는 요양병원답게 기능을 개편하기 위해 행위별 수가 대상을 늘리고, 의료 질이 높은 병원에 대해서는 보상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어 수가 인하용 포석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복지부의 요양병원 개편 방향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우리나라는 급성기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시설 간 기능이 정립되지 않아 이런 정책을 한꺼번에 시행하면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