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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파일] 의협의 첩약 급여화 반대 집회, 이미 떠난 버스라는 복지부

    "구호만 앞서는 투쟁 아닌 승리를 위한 전략이었는지, 회원들의 공감대가 뒷받침되긴 했는지"

    기사입력시간 2020-07-01 13:02
    최종업데이트 2020-07-01 14:12

    2020년도 의원급 수가 인상률에 유감을 표하며 삭발하고 있는 최대집 회장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지난달 28일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반대하기 위한 대한의사협회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급했으면 의사들이 직접 나섰으랴만은 이번 집회를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지속되면서 2차 대유행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방역의 모범이 돼야 할 의료인들이 직접 집회를 열고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일반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시도의사회장단도 집회를 우려하면서 원래 예상보다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의협은 안전 논란을 의식한 듯 모두 페이스 쉴드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집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현재 집회 등 모임 자제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7월 4일 예정돼있는 민주노총 집회에 대해 서울시 나백주 시민건강국장은 "집회 취지는 공감하나 1000만 시민을 감염병 위험에서 보호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더 큰 쟁점은 집회의 실효성 문제다. 집회가 마무리된 다음 날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정책적 흐름상 이번 시범사업 중단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한마디로 '이미 떠난 버스'라는 것이다. 이미 첩약 급여화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구상이 완료되고 사업 추진에 큰 걸림돌이었던 한의계 내부 반대 문제까지 일단락된 마당에 국가 정책적 대세를 거스르기는 힘들다는 게 복지부의 입장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첩약 급여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정책도 아니고 3년을 끌어온 사업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첩약 급여화가 진행되는 상황을 의협이 몰랐을리 없다. 첩약 급여화는 이미 막을 수 없는 수순에 돌입했는데도 의협이 코로나19 상황을 무릅쓰고 '결사반대'를 외치며 집회까지 강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첩약 급여화 저지를 위해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서 많은 대화들이 오고 갔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로 문제 해결이 어렵게 되자 의협이 최후의 수단으로 '투쟁'이라는 카드를 다시 꺼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쟁 카드가 최근에 힘을 발휘한 기억을 찾아보긴 힘들었다는 현실을 직시해보자. 강경한 투쟁을 거듭하며 복지부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던 의협 최대집 회장에게 남은 것은 '의협 패싱'이라는 꼬리표뿐이었다. 문재인 케어 시행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2018년 당시, 복지부는 의협의 반대 투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의협과 별개로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등과 개별 논의를 진행하며 사업을 추진했다. 사실상 의협의 의사와 관계없이 복지부가 의료계를 각개격파하는 모양새가 된 셈이다.
     
    그러면서 수가협상도 낙제점을 받았다. 의협은 2019년 수가협상 당시 건정심까지 탈퇴하며 적정수가 약속을 이행하라고 주장했지만 2.7% 인상에 그쳤다. 정부와 대화단절을 선언했던 2020년 수가협상 2.9%에 이어 2021년 수가협상도 2.4% 인상에 그치며 최대집 회장 임기 3년 연속 수가협상 결렬이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대화 없는 강경한 투쟁으론 실질적 해결이 어렵다는 것은 이제 현실이 됐다. 최 회장은 매번 극단적 투쟁을 예고하며 단식투쟁과 삭발을 거듭했지만 돌아온 것은 '밥그릇 챙기기'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정부와의 극단적 갈등뿐이었다.

    현 상황에서 강경 투쟁을 통해 문재인 케어, 고질적 저수가 문제 등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며 당선됐던 최대집 회장과 의협 집행부의 당위성이 남아있다고 여기는 회원들의 수도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 보니, 의협이 말로만 투쟁을 외칠 뿐이라는 회원들의 지적도 많다. 심지어 특별한 전략이 있거나 회원들의 공감대조차 형성되지 않은 투쟁의 저의가 궁금하다는 여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제는 잠시 투쟁을 멈추고 투쟁의 당위성부터 다시 곱씹어봐야 할 때다. 삼국지를 대표하는 지략가 제갈량은 절대 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필사의 승리 전략을 모색한다. 반면 사마의는 무조건 이기기 위한 전략을 세우진 않았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기되 힘겹게, 지더라도 이해되게 패배하는 것이 사마의의 지략이었다.

    이번 집회가 필사의 승리를 위한 전략이었는지,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회원들에게 이해받기 위한 꼼수였는지는 베일에 쌓여있다. 다만 의협이 이제는 투쟁 그 자체보다 정부와의 관계 회복과 회원들을 위한 성과를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